청와대 국민청원 ‘100만 명’ 넘어서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강서 PC방 살인사건피의자 김성수(29)씨가 심신미약으로 감형 받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해당 청원이 등장한 지 6일 만에 돌파한 것. 지난해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개설된 이후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청원에 참여한 것은 최초다.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이다.

심신미약자에 대한 엄격한 판단사후관리 필요

발단은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PC방에서 발생한 아르바이트생 살인 사건이다.

김 씨는 이날 오전 813분경 아르바이트생 신모(20)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테이블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불친절하다며 실랑이를 벌인 게 이유였다.

당시 경찰이 출동해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김 씨는 현장을 떠났다가 흉기를 챙겨 돌아와 PC방이 있는 건물 에스컬레이터에서 신 씨에게 수차례 칼을 휘둘렀다.

지난 21일 심의위원회를 개최한 경찰은 범행수법의 잔인함과 공개 요건 합치를 이유로 김 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요건은 잔인하고 중대한 범죄 수단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의 존재 국민의 알 권리,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이다.

이후 김 씨 가족은 경찰에 수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어 약을 먹었다는 진단서를 제출했다. 법원은 지난 19일 김 씨에 대해 감정유치 영장을 발부했다. 감정유치란 피의자가 전문 의료시설에 머물면서 전문가로부터 정신 감정을 받는 등 일종의 강제처분을 말한다.

김 씨는 정신 감정을 받기위해 충남 공주 반포면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이송됐다. 국립법무병원은 김 씨에 대해 정신의학적 개인 면담 및 각종 검사, 간호 기록, 병실 생활 등 감정을 실시한다. 결과를 종합한 뒤 정신과 전문의가 감정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통상 1개월 정도 기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심신미약으로 감형 받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과 공분이 이어졌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화면 캡처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화면 캡처

사법부 불신 팽배

청원자는 심신미약의 이유로 감형될 수 있기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으면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면서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안 되겠냐고 촉구했다.

여론이 이렇게 초기부터 가열된 것은 흉악범죄 후 심신미약 주장솜방망이 처벌 혹은 감형이라는 과거 논란이 됐던 판례들로 인한 우려와 사법부 불신 등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나영이 사건의 가해자 조두순이 꼽힌다. 그는 지난 20088세 아동을 잔혹하게 성폭행했으나 만취 상태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돼 15년에서 12년으로 형이 줄었다. 징역 10년이 넘는 중형이긴 했지만 죄질에 비하면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비난이 잇따랐고, 조두순을 예로 들며 주취 감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은 약 21만 명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환각 상태로 어머니와 이모를 살해한 20세 남성이 2심에서 마약 복용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를 이유로 감형을 받기도 했다. 당시 대전고법 형사1부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 남성에 대해 존속살해살인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무죄로 보고 마약류 관리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렇지만 피고인이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관련 치료 등의 전력이 있다고 해서 법정에서 모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형법은 103항을 통해 의도적으로 만든 책임 무능력 상황에 대해서는 감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해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지난 4월 서울 방배초등학교에 몰래 들어가 10세 여자아이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 혐의(인질강요미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25)씨에 대해 지난달 선고공판에서 징역 4년을 내렸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환청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하지만 구청에서 나름 직장생활을 했다. 조현병이 범행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범죄 경위 및 정상참작 조건을 판단할 때 심신미약 사유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법적으로 심신미약 개념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이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

형법 제10조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고, 이 같은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에 대한 처벌은 줄이도록 하고 있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는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행위자의 책임 능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형사상 만 14세 미만은 처벌하지 않듯이, 사리 분별 능력이 없고 행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취지는 약자로 보이는 자가 아닌 진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결국 심신미약이 객관적으로 인정돼 무죄 판결 또는 감형 등을 하는 경우에는 실정법에 따라 합당한 판단이 된다.

학습효과작용했나

전문가들은 이번 강서 PC방 살인사건을 둘러싼 여론의 반응에 대해 일종의 학습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범인 쪽에 유리하게 반영되는 사례가 많이 알려지다 보니 죄질에 걸맞은 처벌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 진단과 법적 판결 사이의 공조가 긴밀하게 진행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관련 규정도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아 더욱 그런 것 같다면서 앞으로 정신장애가 더욱 많고 다양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범죄도 마찬가지다. 제도를 재정비한다면 불신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의 상태가 안 좋음을 과장해서 책임을 모면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불안이나 걱정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심신미약자들의 감형 사유는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엄격한 진단을 토대로 해야 한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합리적인 기준과 대응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씨에 대한 엄중 처벌을 바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25일 국회 범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번 기회에 심신미약 판단 사유를 더 구체화단계화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강서 PC방 살인사건을 계기로 심신미약자에 대한 엄격한 판단사후 관리 등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