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검찰수사를 믿지 못해 만든 특별검사법(이하 특검)처럼 재판부에도 특별재판부 도입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이뤄진 법원행정처의 사법권 남용의혹 관련 사건을 재판할 특별재판부 도입에 합의했다. 하지만 제1야당인 한국당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위헌소지 논란이 있어 반대하고 있어 특별재판부 도입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한국당 일각에서는 사실상 사법부에 탄핵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흥분하고 있다. 특별재판부 도입을 둘러싼 후폭풍을 가늠해봤다.


- 사실상 사법부 ‘탄핵’ 결의 여야4당 “판사 못믿겠다”
- 김병준, “혁명하자는 것이냐”, 김성태, “6.25 인민재판 연상돼”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사법농단 사건을 재판할 특별재판부 도입에 합의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사법농단 의혹사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영장 기각 등 법원의 미온적 태도가 논란이 되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고강도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특별재판부 설치는 건국 직후 설치됐던 반민특위 이후 처음이다.

민주당 홍 원내대표는 “사법농단 연루자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이라며 “사법농단과 관련 없는 법관들로 이뤄진 특별재판부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검찰 수사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이 더욱 확산되면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거래 의혹 등으로 사법부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판사들이 재판을 맡게 될 경우 공정성과 독립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압수수색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도 한몫했다.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56명의 의원들은 지난 8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사위·본회의 통과
국회선진화법으로 ‘불투명’

판사 3명으로 구성된  1·2심 특별재판부로 두고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 추천에 따라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또 영장심사를 위한 특별영장전담법관을 임명하는 안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대한변호사협회와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각 3명과 비법조인 3명 등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후보추천위를 대법원에 설치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여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라는 점에 합의한 야3당은 추천위원회를 꾸리되 현직 법관 가운데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할 1, 2심 판사와 영장전담판사를 2배수 후보자로 추천하고 대법원장에게 임명권을 주기로 수정했다. 또한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논란이 된 사법농단 관련 법관 탄핵에 대해서는 공동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여야4당의 특별재판부 도입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일단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10월26일 4당이 특별재판부 도입을 추진키로 한 데 김명수 대법원장 선사퇴를 주장하며 “왠지 6·25 전쟁 당시 완장을 찼던 인민재판이 자꾸 생각난다”면서 “채용비리·고용세습으로 일자리를 도둑질한 문재인 정권이 위헌 여지가 다분한 특별재판부 설치로 (채용비리 의혹을) 덮으려 한다"고 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역시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삼권분립의 정신을 지키며 그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면서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당이 반대하면 특별재판부 도입 자체가 불투명하다. 일단 4당 의석을 합치면 전체 300석 중에 178석이다. 일단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만 되면 의결정족수는 확보된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 조항(국회법 85조2) 때문에 여야가 대치하는 법안의 경우, 본회의에 상정하려면 재적 의원의 60%(18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당이 반대할 경우 본회의 상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본회의 상정에 앞서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한국당 소속의 여상규 의원이 법제사법위원장이다. 여 위원장이 특별재판부 도입에 부정적이어서 상임위 상정도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법안 처리 시한도 촉박하다.

이에 여야 4당은 한국당이 계속 반대할 경우 해당 법안을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선 소관 위원회(법제사법위)의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사위원장이 한국당 소속이라 첫 단계부터 벽에 부딪히게 된다. 패스트트랙 지정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본회의 상정까지 최장 240일의 숙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12월 기소를 목표로 하는 만큼 그 전에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헌법학자들뿐만 아니라 사법부 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서울행정법원장을 지낸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10월 25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국회의 특별재판부 추진 관련 “절대주의 국가에서처럼 국왕이 순간의 기분에 따라 담당 법관을 정하거나, 이미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법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리거나, 심지어 사건을 자신이 직접 결정할 때에는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안 통과...최대 복병은
여상규 법사위원장?

국회가 영향력을 행사해 구성한 재판부는 정치권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황 부장판사는 이어 “재판을 요구하는 국민이 자신의 사건이 어떤 법원의 어떤 법관에 의해 처리될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어떤 하나의 사건만을 재판하기 위해 예외 법원을 설치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헌법 110조 1항은 ‘특별법원으로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고만 규정한다는 점을 의식한 지적으로 특별재판부를 사실상 또 하나의 법원으로 본다면 위헌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특별재판부’로 명명했지만 별도의 특별 법원이냐 아니냐는 해석을 두고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황 부장판사는 또 특별재판부가 추천을 받아 법관을 구성하는 방식도 지적했다. 황 부장판사는 N.브리스코른이라는 법철학자가 쓴 ‘법철학’을 들어 “법관으로 하여금 장래에 관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재판의 정의 실현에 도움이 된다…이상적인 법관, 검사 및 변호인을 기대하고 자로 잰 듯 딱 들어맞는 소송 절차를 기획하는 것은, 과도한 시간의 경과로 권리도 상실하고 또한 일련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현재 법원은 접수된 사건을 무작위 전자배당으로 배분하고 있다. 황 부장판사는 책 소개를 마친 뒤 “사람이 잘못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벌도 받아야 한다”며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황 부장판사는 “그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지우고 또 어떤 방법으로 형벌을 가하는가도 중요하다”면서 “재판제도는 우리 법관들의 문제지만, 그 전에 우리 국민의 문제다”라고 했다

헌법학자들도 언론을 통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 주다. 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특별재판부는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부분”이라며 “사법부를 형해화(形骸化, 형태만 남기고 실질적인 권한은 없게 하는 것)하는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지금이 혁명 시기도 아닌데 특별재판부를 만들어 재판부 구성에 입법부가 관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법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특정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 이번 사건을 전담할 경우 오히려 선입견에 따른 결론이 나와 재판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김상겸 동국대 로스쿨 교수도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일고 사법 독립권도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결국 제1야당의 반대에다 법사위원장이 한국당 소속이고 국회선진화법까지 넘으려면 반드시 한국당의 참석 내지 암묵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권에서는 ‘빅딜론’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 채용 비리 관련 국정조사와 반대하는 특별재판부 도입을 서로 ‘빅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즉, 한국당과 미래당과 민평당이 함께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를 연결고리로 특별재판부 도입을 논의하는 테이블에 한국당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여야 4당의 특별재판부 구성 입법 기자회견 이후에 “일의 앞뒤가 맞지 않는 야권 분열 공작”이라면서도 “특별재판부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좀 더 심사숙고하겠다는 말씀드리겠다”고 타협의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런 구상은 정치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점에서 그럴듯하게 여의도내에 퍼지고 있다.

 특재 도입vs 채용비리
‘빅딜’ 가능성은

그러나 ‘빅딜’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당장 여야 지도부는 이런 지적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또한 한국당 제외한 야3당은 강원랜드 채용비리도 넣자는 입장이라 한국당이 주장하는 채용비리 국조와는 결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도 양당 내부적으로는 두 가지를 모두 함께 테이블에 올릴 경우 협상을 최소한 개시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빅딜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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