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 추모’ 지덕사 부지 아파트건설 논란

상도동 지덕사 부지에 건설된 아파트

문화재 관리소홀로 숭례문이 잿더미가 돼 나라전체가 들썩이고 전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양녕대군의 묘가 있는 지덕사의 부지 매매와 관련해 의혹과 커넥션이 끊임없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동작구 상도동 159-212번지 외42필지 2만1494평 부지가 B건설사에 불법 매매됐다는 주장이다. 제보자 정덕영씨에 따르면 재단법인 지덕사와 당시 서울시 문화과, B건설사 사이에 검은 커넥션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수십건의 민형사 소송이 서울중앙지검, 고검, 대검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됐다. 그러나 정씨는 이 과정에서 법조계에도 지덕사와 건설사의 뒤를 봐줬던 정치인과 합세해 전방위적 로비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억울함을 주장하며 현재 대법원에 재심청구 소송을 해놓은 상태다.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그동안 제기했던 모든 의혹의 진실공방이 밝혀질 것이다.

국보1호의 현판을 쓴 양녕대군의 사당과 관계된 재단의 땅이라면 매매 이전에 문화재 당국의 까다로운 심사와 관계기관 사이의 철저한 다단계 검증이 이뤄져야한다. 그러나 재단법인 이사장과 이사진의 판단에 따라 쉽사리 토지가 매매된다면 우리의 문화유산은 앞날이 불투명하다.

서울시는 비영리재단인 재단법인 지덕사의 정관을 변경시켜 줘 이 재단은 토지매각 수익으로 수천억원을 챙겼다. 이 정관변경은 재단의 신청이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당일치기로 서둘러 처리돼 의혹은 더욱 깊어간다.

일반적인 정관변경 신청도 심의기간이 짧게는 수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데 이 건의 경우 영구보존재산을 매각, 수천억 원의 수익을 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행정심사라는 점 등을 미뤄볼 때 여러 가지 의혹의 소지가 있다.


지덕사와 서울시 검은 커넥션 있었나?

게다가 서울시는 제보자 정덕영씨가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처음 공문서를 통해 ‘지덕사와 관련된 그 어떠한 정관변경신청을 받은 적도 없고, 허가를 해주지도 않았다’는 상반된 공문을 내려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지덕사 L이사장은 양녕대군의 토지를 매각하기 위해 2004년 당시 주무관청이던 서울시에 여러 번 기본재산처분승인서를 제출했지만 서울시는 매번 반려했다. 이에 그는 기본재산으로 돼있던 양녕대군의 토지를 보통재산으로 정관변경 신청하면 매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4월23일 정관 변경신청을 했다.

의혹은 여기서 시작된다. 현재 지덕사의 주무관청인 당시 동작구청 관계자는 “정관변경은 하루 만에 처리될 사항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L이사장이 정관변경 신청을 낸 날짜는 2004년 4월23일, 승인 날짜도 같은 23일이다. 이에 상도동 주민들이 서울시에 항의하자 서울시는 2004년 5월13일자로 공문을 보내왔다. 그 문서에 따르면 “지난 2004년 4월23일 재단법인 지덕사에서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재산처분 추인요청서는 재단법인 지덕사의 자체 사정에 따라 2004년 4월20일 우리시에 취하원을 접수해 취하 처리가 됐으며, 이후 현재까지 재단법인 지덕사에서 추가로 서울시에 기본재산 처분추인신청서(정관변경허가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음을 알려 드립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 당시 주무관청이던 서울시에서 4월23일 접수하고 승인해줬던 정관변경은 5월13일의 문서에 의해 공문서가 위조 됐다는 것이 제보자 정덕영씨와 ‘지덕사 토지 권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토지를 매입했던 건설사와도 유착의혹

이와 관련해 지덕사 L이사장은 본지 기자에게 “제보자의 말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사건이 오래돼 기억이 나지 않고, 자신을 모함하는 것뿐이며 이런 사실을 보도한다면 고문변호사를 통해 어떤 법적 대응도 불사하고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해당법인 이사장이 사건내용도 모르는 게 의아하고 답변을 할 수 있을만한 재단의 직원이라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직원이 하나밖에 없고 대소사가 많아 일일이 대응할 수 없으며 보도를 늦추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반복했다.

그러나 지덕사 직원과의 전화통화에서 확인한바 직원은 3명이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취재 당시 신문사 연락처와 기자의 핸드폰 번호까지 모두 통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가 끝난 후 일방적으로 팩스를 보내고 전화도 없이 본인의 송부서류를 무시했다고 내용증명을 신문사로 보내왔다. 내용증명에는 30분에 걸쳐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과 신문사와 기자 모두 법적송사에 휘말리기 싫으면 조심하란식의 말만 계속해서 반복했다. 심지어 자신을 대변하는 고문변호사 사무장을 시켜 전화로 법적대응을 염두에 두고 기사를 쓰라고 협박조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의 묘와 사당이 모셔진 지덕사 일대 토지가 대형건설업체 B사와 서울시, 그리고 당시 DJ정권 실세 의원의 비서에 의해 훼손됐다는 것이 ‘지덕사 토지 권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모 건설사가 지덕사 일대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실세 의원의 비서였던 이 모 씨를 건설회사 회장으로 취임시킨 후 3개월 만에 1250억원을 융자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보자 정씨는 한빛은행 장부를 제시하며 추가로 두 차례에 걸쳐 400억원을 더 대출받았고 이 가운데 일부가 대가성 정치비자금으로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B건설사는 모 시행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불법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서줬고 이 대가로 지덕사 토지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현재 상도동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 담당자도 관여했다고 전언했다. 지덕사 토지의 경우 지덕사의 기본재산으로 돼 있기 때문에 서울시의 토지처분승인 없이는 매각할 수 없는데도, 토지의 소유권이 매각에 의해 이전됐기 때문이다.


문광부와 서울시 모두 지덕사 기본재산 목록 없어?

제보자 정씨는 서울시에 지덕사의 기본재산 목록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지난 2004년 6월15일 요청했다. 2004년 6월22일 서울시가 보내온 공문에 따르면 ‘(재)지덕사의 최초 법인 설립 허가 시 기본재산 목록에 대해서는 정부조직개편으로 인한 업무인수인계시 1980년도 이전 문서철이 멸실된 것으로 보여 확인이 불가하고, 2001년 10월 문화관광부에서 우리시로 이관된 문서철에도 역시 기본재산 목록이 없었다’라고 회신했다.

이에 대해 정씨는 “3살 먹은 애도 안 믿을 이야기로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재단을 설립할 때 기본재산 목록을 받지 않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문광부와 서울시가 받아서 관리 소홀로 유실됐다면 국민에게 지탄받아 마땅하며 아예 관리에서 손을 때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어 “여러 가지 정황상 서울시 관계자가 개입돼 중간에 장난을 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공무원들이 이렇게 관리하니 문화재가 유실되는 것도 웃지 못할 현실이다”고 말했다.


#지덕사 토지 권리를 지키는 사람들 대표 정덕영씨 인터뷰

수년간 투쟁, 남는 건 빚

정덕영씨는 7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재단법인 지덕사와 건설사를 상대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정씨는 심신이 몹시 지쳐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동안의 심경을 털어놨다. “그동안 모든 삶을 포기하고 이 소송사건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정작 돌아오는 것은 늘어나는 빚과 가정 파탄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동안 KBS, MBC는 물론 메이저 신문사에서도 모두 취재를 끝내고 돌아갔지만 한 번도 기사화 된 적이 없다.”

정씨는 지덕사 L이사장으로 협박과 회유도 수차례 받아왔다고 전언했다. “흥신소 직원을 따라 붙여 내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신변에 위협을 가한 것은 물론 때로는 돈다발을 들고 와 본인만 조용히 물러나면 거액을 챙겨줄 것이니 뒤로 물러나라는 식의 제안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최소한의 기본권인 주거권만 인정받고 싶었는데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덕사 이사장에 도덕성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현 L모 이사장은 현재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공금횡령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며 이사장 연임을 위해 이사들을 협박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덕영씨 측 송승준 변호사 인터뷰

국가관련 소송은 시효가 없다

“이 사건은 재판의 승소와 패소를 떠나서 문화재가 너무나 쉽게 매매될 수 있고 이로 인한 피해가 누군가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지덕사 토지권리를 지키는 사람들’변호인인 송승준 변호사(다원 종합법률사무소)는 “시효가 지났더라도 국가가 했던 것은 시효가 없다. 변론주의 대원칙 차원에서 동작구청, 서울시는 시민들의 최후보루 기본권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사회정의와 양녕대군의 정신을 기리는 차원에서도 지덕사 L모 이사장에게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 신청했을 당시 고건 서울시장은 선승인 기본재산처리법이 아니라고 이미 반려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런 문화재를 관리하는 재단의 기본재산 목록이 당시 문광부와 현 주무관서에 기본재산 목록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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