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재산 분할’ 시동 걸었나?


재계가 어수선하다. 각 그룹사는 어떻게 하면 관련세금을 덜 내고 총수일가의 이익을 극대화 하느냐에 골머리를 쓰고 있다. 롯데그룹이 그 대표적인 예다. 조세포괄주의가 도입되면서 상속증여 관련 과세요건이 비슷하면 세무당국은 사후에라도 세금을 물릴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재벌그룹들이 후계구도 과정에서 탈세하기가 더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롯데그룹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새롭고 다양한 방법을 개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롯데그룹의 후계작업 뒷면을 들춰봤다.

롯데그룹은 ‘사회적 노출’을 꺼리는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공개적인 이벤트는 거의 하지 않는다. 심지어 기업설명회(IR)를 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경제담당 기자들은 취재하기 가장 힘든 곳으로 롯데를 꼽는다.


부동산 매수과정 ‘갸우뚱’

롯데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다뤄지는 경우는 주로 총수가문을 둘러싼 스캔들이 터질 때다. 1996년 6월 신격호 회장과 막내동생 신준호 부회장(현 롯데우유 회장) 사이에서 벌어진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를 둘러싼 법정비화나, 1960년대 초 신 회장과 둘째 남동생 신춘호(현 농심그룹 회장)씨 사이서 일어난 부동산소유권 다툼이 그런 예다.

이런 롯데가 또 다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됐다. 그룹 총수가 얽힌 편법증여의혹 때문이다. 사단은 지난해 11월 9일 롯데쇼핑이 금융감독원에 낸 공시에서 비롯됐다. 롯데쇼핑은 공시를 통해 롯데장학재단이 소유한 땅을 전부 사들였다고 밝혔다.

문제는 땅을 사들인 과정이 의심쩍다는 데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지난해 11월 9일 그룹 산하 비영리법인인 롯데장학재단으로부터 경기도 오산시 부산동 2번지와 4-1번지 일대 밭 10만2399㎡(34만여평)을 부지확보 목적으로 모두 사들였다. 땅값은 다 합쳐 약 1030억원이었다.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본래 이 땅의 주인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었다. 1973년 3월 문제의 밭을 사들인 신 회장은 수십 년 간 얌전히 그 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17일 느닷없이 이 땅을 롯데장학재단에 공짜로 넘겨줬다. 등기부등본에는 신 회장이 장학재단에 무상증여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의심을 낳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현재 개발이 한창인 이곳은 값이 천청부지로 치솟아 그야말로 금싸라기 땅이다. 이러한 금덩어리를 공익재단에 그것도 무상으로 넘겨줬다는 데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신 회장이 롯데장학재단에 땅을 기부한 지 불과 20여일 만에 풀렸다. 같은 해 11월 9일 롯데쇼핑이 문제의 토지를 고스란히 재매입한 탓이다. 신 회장이 롯데장학재단에 증여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롯데쇼핑이 사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밑그림은 예전부터 그려져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쇼핑이 금감원에 낸 최대주주등과의 부동산매수 공시를 보면 관련공시일이 땅을 산 날보다 훨씬 전인 10월 18일로 돼 있다.

이는 신 회장이 롯데장학재단에 땅을 준 날과 하루차이다.

그렇다면 롯데가 하루 차이로 땅 소유주를 신격호 회장에서 롯데장학재단으로, 장학재단에서 롯데쇼핑으로 변경한 건 왜 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신 회장은 장학재단에 거액의 부동산을 별도의 세금 없이 무상으로 증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롯데쇼핑이 1000억원을 지불해 롯데장학재단의 몸집을 불려준 셈.


증여세 한 푼도 안내

일각에선 ‘공익’을 위한 장학재단을 튼실하게 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여기에도 깊은 뜻이 숨겨있다.

롯데장학재단은 △롯데삼강(4.46%) △롯데제과(6.81%) △롯데칠성(6.28%) △롯데정보통신(0.94%) △롯데역사(5.33%) △롯데캐피탈(0.51%) △대홍기획(21%)의 지분을 골고루 확보해 이미 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때문에 땅을 판 돈으로 계열사 지분을 더 사들여 기반을 튼실히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최근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에 따라 공익재단에 대한 대기업 계열사의 무과세 지분증여한도가 10%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장학재단에 대한 신 회장의 부동산증여를 ‘삐딱한’ 시각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여러 가지 증여 건으로 구설수에 휩싸인 신 회장이 롯데장학재단 같은 공익재단을 적절히 활용할 가능성이 고개를 드는 대목이다.

특히 신 회장의 경우 ‘편법증여 논란’에 휩싸인 이력이 있어 장학재단을 적절히 이용했다는 의견에 힘을 더한다.

올 초 신 회장은 ‘편법증여 논란’에 휩싸여 여론의 뭇매를 호되게 맞았다. 지난해 마지막 날 오후 느닷없이 ‘결손기업’ 딱지를 달고 있는 계열사 4곳에 수 천 억원 상당의 주식을 몰아준 게 화근이 된 것. 현행법에 따르면 계열사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자회사를 도와줄 경우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해당 회사 4곳 모두 공교롭게도 신 회장 자녀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편법증여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자란’ 회사를 통해 ‘돈 한 푼’ 내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러한 일련의 의혹과 관련 롯데그룹 쪽은 “단지 장학재단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그룹 관계자는 “장학사업을 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지 않느냐. 그래서 땅을 판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땅을 판 이후 장학사업에 사용된 돈이 얼마나 되느냐는 물음에 관계자는 “예산이 유동적이라 정확하게 파악하긴 힘들다. 최근엔 기초과학전공 학생 장학금과 건물 기증 등 약 15억원이 지급됐다”고 답했다. 그룹 관계자 말대로 땅을 처분한 이후 15억원의 장학금을 지급됐다손 치더라도 현재 남아있는 자금은 무려 1015억원 가량이다.

1000억대 잔금으로 롯데지분을 사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예의 관계자는 “장학재단도 돈이 필요하니까 회사 주식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계획돼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해명했다.

그룹 쪽 입장대로 신격호 회장이 장학재단 살찌우기가 지배구조와 관련 없는 ‘진짜 선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각의 삐딱한 시선이 가시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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