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도로공사 ‘짜고 친 고스톱’

현대산업개발 본사

올 초 논란이 됐던 동남권 유통단지 억대뇌물 비리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지난 3월 9일 서울동부지법 형사1단독 권혁중 판사 심리로 열렸다.

2010년 완공 예정인 동남권 유통단지는 공사비만도 1조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유통단지 개발사업으로 청계천 개발로 일터를 잃은 상인 6000명이 입주할 예정이다. 검찰에 따르면 동남권 유통단지 입찰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한국도로공사 지모(50·구속기소)기술심사실장은 현대산업개발로부터 3차례 해외골프접대를 받고 별도로 금품까지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공사비 1조 국내 최대 유통단지

지난해 3월 지 실장은 현대산업개발에 높은 점수를 주는 대가로 이곳 임원 안모(53)씨와 동료 2명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2박 3일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경비만 772만원. 물론 안씨가 냈다. 이러한 해외골프여행은 2차례 더 됐고, 모두 1000만원 상당의 비용이 들었다.

지 실장의 ‘골프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씨는 또 고속도로 토목건설업체인 T사 대표와 일본 후쿠오카로 3박 4일 골프여행을 다녀오면서 비용 일체를 T사가 내도록 했다. 이때 동료 2명과 함께 사용한 경비는 모두 400만원이다.

이보다 앞선 2006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지 실장은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해 업체로부터 골프접대와 금품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지씨는 경기 성남시 자택 앞에서 고속도로 방음벽 공사업체 관계자로부터 현금 100만원을 받는 등 고속도로 설계업체 관계자 등에게서 740만원어치 금품을 받아 챙겼다. 이러한 갈취는 2006년 7월부터 최근까지 9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서울대 이모(43·불구속 기소) 교수는 2006년 11월 설계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주는 대가로 같은 해 11월 포스코건설로부터 연구용역비 5000만원을 지원 받았다.


건설업체들 ‘묻지 마 로비’

검찰 조사결과 이 교수는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건설·환경 관련 학회에 연구용역비를 지원받고 금품수수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이 돈을 2차례에 걸쳐 전달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업체는 ‘하나마나’ 한 연구용역비 수천만원을 건네고, 교수는 해당 건설사에 점수를 밀어준 셈이다. 검찰 관계
자는 “이 교수가 점수를 주기 전에 이미 기업체 관계자와 접촉했던 정황까지 확인됐다”며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어 불구속 기소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가 외부 활동과 관련한 불법 행위로 기소되는 것은 드문 일로, 2005년 환경대학원 교수였던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청계천 개발 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뒤 처음이다.

평가위원들을 매수하기 위한 건설사들의 로비도 집요했다. 사업에 참여한 업체 대부분이 1800여명에 이르는 평가위원 후보군 전원을 관리했다. 학술대회에 후원자로 참여해 교수들과 친분을 쌓는가 하면 평가위원과 학연·지연이 있는 직원을 찾아 로비를 전담하게 했다. 보험을 들 듯 평가위원이 될 만한 사람들을 골라 사전에 로비를 벌인 셈이다.

심지어 평가위원이 공개되는 심사 당일 새벽에는 해당 위원을 심사 장소까지 ‘실어 나르기’ 경쟁이 업체간에 벌어지기도 했다. 차 안에서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로비가 횡행하다 보니 심사결과도 공정성이 떨어졌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어떤 평가위원은 특정업체에 대해 만점 가까지 준 반면 어떤 사람은 2점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러한 업체간 로비전쟁 이유에 대해 입찰방식의 문제점을 꼽았다. 평가위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점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금품 제공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쪽 입장이다.


“평가위원 되면 로또 당첨”

검찰 관계자는 “입찰에 실패하면 수십억원의 설계비용을 날리는 ‘턴키’ 입찰방식 때문에 비리가 계속 생긴다”며 “평가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낙찰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업체들은 평가위원에 대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 또한 “큰 공사의 평가위원이 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말이 있다”며 “평가위원에게 2~3년에 걸쳐 월급식으로 통장에 돈을 넣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귀띔했다.


# 건설업체 입찰 로비 실태

·교수로만 구성된 기술위원은 심의 때 업체들 상대로 질문만 하고 평가는 하지 않음.
·평가위원은 박사급 연구원(4명), 기술사자격증 가진 공무원(4명), 교수(2명)로 구성.

▲평상시
건설업체 들 기존 대형 공사 평가위원명단 입수해 관리
-관리전담반서 연구·개발 프로젝트 용역 맡기고 금품과 향응 제공

▲공사발주
공사 참가 여부 결정

▲2~3달 뒤 설계도 납품
입찰 전까지 해당 공사 평가위원 명단 확보 전쟁

▲기술위원 명단발표
기술위원 찾아가 금품과 향응 제공
-자기 업체에게 유리한 질문하도록 유도하고 경쟁업체 약점 알려줘

▲심의 당일 새벽
평가위원 집 앞에서 대기하다 마지막 금품 로비
-자신의 업체에게는 고득점을 다른 업체에는 낮은 점수를 달라고 로비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