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경신년(1320, 충숙왕7) 5월 5일. 단옷날이 돌아왔다. 원나라 연경에서는 연꽃이나 대나무 잎에 싼 찹쌀밥 쭝쯔(子)를 먹으며, 굴원을 배로 구한다는 뜻에서 용선(龍船) 경기를 하며 부산을 떨었지만, 주인을 잃어버린 만권당에는 절간 같은 정적만 감돌 뿐이었다. 이는 충선왕이 티베트로 유배당한 뒤부터 나타난 현상이었다.

만권당은 점점 쇠락해져 갔다. 정원의 꽃들은 시름시름 시들어 버렸고, 어은에 피어난 연꽃은 진흙에 더럽혀졌으며, 지붕의 기와는 키 큰 잡초로 무성해졌다.

만권당의 설립 취지는 점점 퇴색해져 갔다. 원나라에 볼모로 와 있는 왕자들의 숙소와 두 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의 거소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현은 한동안 삶의 목적을 상실하고 고독과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허전하고 등이 시렸다. 텅 비어 있는 그의 마음을 위안해 주고 채워 줄 그 어떤 것도 만권당에는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이제현은 창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을 떴다. 그리곤 지금까지 자신을 억눌러 왔던 고독한 상념에서 탈피하여 침상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나는 젊음과 건강, 조국과 충선왕을 향한 충절을 가지고 있다. 충선왕이 다시 연경의 만권당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자. 내 비록 몸은 떨어져 있으나 상왕의 은혜를 어찌 저버릴 수 있으랴…….

그리운 고국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꿈을 꾸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었지만, 이렇게 서글픈 귀향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제현이었다. 그러나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고 물은 이미 쏟아진 후가 아니던가. 후일을 도모할 수밖에.

이렇게 마음 정리를 끝낸 이제현은 해월이와 함께 만권당 정원을 산책했다. 이제현은 저만치 황홀한 자태를 한껏 뽐내며 피어있는 모란꽃 한 송이를 꺾어 해월이의 가슴 저고리에 꽂아 주며 말했다.

“이 꽃은 꽃 중의 꽃인 ‘꽃의 왕(花王화왕)’이니, 나에게는 해월이와 같소.”

이제현의 미안한 마음을 읽고 있는 해월이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선생님, 저에게 미안한 마음 가지지 마세요.”

“해월이와 만난 지 일 년 만에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 미안하오.”

“아니에요. 제가 살아가는 가장 큰 보람은 바로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후일 또 만나 뵐 수 있으니까요.”

“고맙소, 해월이.”

“선생님에 대한 저의 마음은 숲속의 나뭇잎처럼 계절에 따라 자연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땅 속의 천년 묵은 바위처럼 영생토록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헤어진다는 말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세요.”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저는 선생님과 영원히 함께할 거예요.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를 맺어준 상왕 전하께 어떤 사람이 될 거예요?”

“나는 상왕 전하의 칠흑 같은 밤을 지키는 한 줄기 불빛이 되고 싶소.”

“상왕 전하께서 귀양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고려 조정의 역할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바로 그 점이 내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이유요.”

“선생님이 애타게 보고 싶으면 가슴속 가득한 정을 붓끝으로 전하겠어요.”

“내가 없는 동안 만권당의 일을 잘 살펴주기 바라오.”

“네, 만권당은 잊고 떠나세요. 제가 있잖아요.”

“곧 돌아올 테니 걱정 마오…….”

“더 기쁜 재회의 날을 기다리겠어요.”

해월이는 고구려 주몽의 두 번째 부인 소서노(召西奴)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나이는 어렸지만 명석한 두뇌와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15살 연상인 이제현을 목숨보다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임을 보내야만 하는 해월이의 흉중이 과연 어떠했을까.

그날 밤. 빛줄기가 그친 탓일까. 검은 상포(喪布)처럼 펄럭이는 어둠을 헤치고 개구리 우는 소리가 두 사람의 이별을 서러워하는 듯 들려왔다. 해월이는 팔선(八仙)교자에 술상을 차렸다. 두 사람은 이별의 잔을 함께 마셨다.

이슬 머금은 배꽃처럼 화월용태(花月容態)의 소담하고 탐스러운 해월이의 육체는 초여름 밤을 소리 없이 달구었다. 달은 기울어 삼경(三更)인데 두 사람은 바람에 흩날리는 새털처럼 가벼운 몸짓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희열을 이기지 못해 활처럼 휘어지는 해월의 몸에서 거친 숨소리와 비명이 새어나왔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몸에서 거센 화산의 분출이 일어나고 태초의 아담과 이브가 되어 절정을 넘어 열반을 향해서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해월이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정인, 이제현의 등과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가 날이 밝으면 연경을 떠나 고려로 간다고 했다.

‘아아, 선생님이 떠나면 나는 누구를 의지하고 긴긴 세월을 지새워야 한단 말인가. 야속한 내님…….’

해월은 자신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베개에 적셨다. 정인을 만나서 꿈결 같은 짧은 사랑을 한 것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정녕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요.”

해월이는 몸부림을 치면서 이제현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나도 해월이와 헤어지기 싫소. 곧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오.”

이제현도 안타까워 해월이의 등을 꼬옥 껴안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들은 새벽까지 정담을 나누었고, 오랜 시간 행복했다.

7년 간의 만권당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지공거가 되다

다음 날 아침.

이제현은 여명이 트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곤 짐을 꾸려 해월이와 만권당 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릴없이 귀국길에 올랐다. 장남 서종(瑞種)과 여덟 살로 부쩍 자란 차남 달존(達尊)의 두 뺨을 어루만지며 아쉬워하는 해월이의 새까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제현과 해월이는 이렇게 헤어진 후 2년 반 동안이나 만나지 못한다.

“몸 성히 다녀오세요…….”

“잘 있으시오. 이럇, 이럇!”

이제현이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지르는 분노에 찬 소리가 대륙의 맑은 하늘로 울려 퍼지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이제현과 권씨 부인, 그리고 서종·달존 두 아들을 실은 마차는 무인광야를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가족을 태운 외로운 준마들은 주인의 외로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드넓은 요동 벌판과 태산준령(泰山峻嶺)을 거침없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터져오를 듯한 답답한 마음을 바람에 나부끼는 말갈기가 달래주고 있었다.

한 달 후. 이제현은 마침내 압록강 강안(江岸)에 도착하여 충선왕이 있는 원나라 땅을 뒤돌아보며 깊은 애상에 잠겼다.

‘마음을 비우면 그 마음속에 길이 난다. 이제 지나간 인생을 모두 비우고 새롭게 채우자. 상왕 전하,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반드시 다시 찾아뵙겠사옵니다…….’

고려시대에는 과거를 관장한 고시관을 지공거(知貢擧), 부고시관을 동지공거(同知貢擧)라고 하였다. 지공거와 동지공거를 좌주(座主)라 하고, 좌주가 실시한 과거에서 급제한 자를 문생(門生), 같은 해의 급제자들은 동년(同年)이라고 불렀다. 좌주와 문생은 혈연으로 맺어진 부자에 비교될 만큼 동질적인 집단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귀국한 지 석 달 후인 1320년(충숙왕7) 9월. 약관 34세의 이제현은 지공거로 뽑혔다. 지공거는 임시직이었으나 관직에 있는 자의 가장 명예스러운 직책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있던 이제현에게 과거를 주관하는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고려 후기에는 재추(宰樞, 재상. 2품 이상) 가운데서 지공거를 임명하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에 종2품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의 지공거 발탁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는 원나라에서 7년 동안 선진 학문을 연마하고 돌아온 인재에 대한 보답과 기대감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조정의 관원들을 비롯한 백성들은 이제현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34세의 지공거는 과거에 유례가 없었던 파격적인 발탁이다.”

“젊은 지공거가 나왔으니 이는 필시 고려가 훌륭한 인재를 얻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야.”

“원나라 연경에서 익힌 학문이 고려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왔어.”

지공거를 제수받은 며칠 후, 이제현은 소연(小宴)을 열어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장수를 빌었다.

소연이 끝나자 이제현은 문득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이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그리하여 더욱 자신을 분발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다행히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땅을 굽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앞으로는 꿈과 열정 있는 인재들을 선발·양성하여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得天下英才而敎育之 득천하영재이교육지)’ 삶을 살아가자.

며칠 후, 결발동문의 모임이 개경 남대가 시전거리 단골 술청에서 열렸다. 이제현의 귀국을 환영하고 지공거가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박충좌가 마련한 자리였다. 주모가 술과 안주를 부지런히 날랐다. 이어 권커니 잣거니 순식간에 술이 몇 순배 돌았다. 이날 마지막 화제는 과거제도의 개혁이었다.

거나해진 박충좌가 과거제도의 현실을 개탄하는 말을 꺼냈다.

“익재, 자네는 연경에 오래 머물러 있어서 고려의 국내 사정에 다소 어두울 것 같아서 내 미리 일러두네. 요즈음 과거는 개국 초의 관리의 등용문하고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고 있네. 예상 답안지를 미리 만들어 가는 일, 시험지를 바꾸는 일, 합격자의 이름을 바꿔치는 일, 채점자를 매수하는 일, 대리시험을 치루는 일 등 부정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네.”

옆에서 듣고 있던 안축이 거들고 나섰다.

“뿐만 아니네. 과거 시험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답안지를 빨리 내기 위해서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인데, 여기에는 전문 몸싸움 꾼인 ‘선접꾼’이 동원된다네. 이쯤 되면 과거 시험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난장판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최해도 그냥 있지 않았다.

“심한 경우에는 문에서 횡액을 당하기도 하고, 남을 살상하는 일까지 발생한다네. 이 참상을 어찌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결발동문들이 전한 과거제도의 폐단은 정말 심각했다. 마침내 듣고 있던 이제현이 말문을 열었다.

“자네들이 걱정하는 과거시험의 잘못된 관행들을 이번 과거부터 기필코 바로잡아 나가겠네. 그러나 문제는 불법뿐만 아니라 제도개선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네. 어린아이 때부터 과거문장을 공부하여 머리가 허옇게 된 때에 과거에 급제하게 되면 그날로 그 문장을 팽개쳐버리게 되네. 본인의 개성은 아랑곳없이 천하의 영재들을 일률적으로 과거라는 격식에 집어넣으면 정작 국가에서는 그 재주를 쓸 곳이 없게 되네.”

최해가 특유의 호기심을 발동하여 이제현을 다그쳤다.

“익재, 과거제도는 ‘신분상승용’일 뿐 현실 행정에서 그다지 쓸모없게 되어 버렸네. 그동안 타성에 젖어온 과거제도의 획기적인 개선방안이라도 마련했는가?”

이제현은 담담한 어조로 평소 자신의 과거 관을 소상하게 피력하였다.

“응, 7년 전(1313년)에 원나라에서는 충선왕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도를 개혁했네. 시험과목에는 성리학 경전인 ‘사서(四書)’와 과제를 주어 논술하게 하는 방식인 ‘책문(策問)’이 포함되어 있네. 나는 고려의 국운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상·방법론·철학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굳게 믿고 있네. 따라서 과거시험에서 시를 짓는 글짓기 능력으로 사람을 뽑던 관행을 폐지하고 책문의 비중을 크게 높일 생각이네.”

결발동문들은 한결같이 이제현의 새로운 과거 구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역시 익재의 경륜과 시대를 관통하는 직관은 남다른 데가 있어.”

“암. 그렇고말고. 연경에서 익힌 새로운 학문이 고려의 과거에 크게 도움이 될 거야.”

“이번 기회에 반드시 과거시험의 폐단을 바로잡아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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