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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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친구의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30대 남성의 사건에서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단했다. 이 재판은 1심 무죄 판결 후 친구 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강간 및 특수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A(38)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성폭행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유죄로 인정했다.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 심리를 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개별적·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사후적으로 피해자가 당시 관계 이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서의 피해자 진술은 구체적이고 일관적이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비합리적이라거나 모순되는 부분을 찾기 어려운 반면 피고인의 진술은 일관되지 않고 진술 자체로 모순된다"며 "원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사정들은 구체적 상황이나 둘의 관계 등에 비춰 그 진술과 배치된다거나 양립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4월 충남 계룡시의 한 모텔에서 친구의 아내인 B씨에게 그 남편과 자녀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 B씨를 폭행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B씨를 폭행한 혐의만을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B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성폭행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2심도 다른 혐의로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성폭행 혐의는 1심과 같이 무죄로 봤다. 실제 폭행·협박이 이뤄졌다거나 항거가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해 성폭행에 이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B씨의 진술만으로는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B씨 부부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죽어서라도 복수하겠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을 이해해달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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