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남북정상회담 소문이 정가에 나돈데 이어 다시 김대중 전대통령 대북 특사설이 나오고 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고, 또 김 전대통령으로서도 통일 과업에 전념하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복병은 남아있지만 점점 상황은 김 전대통령의 역할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지난 4·15 총선이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끝난 후 정치권에서는 6월 남북 정상회담설이 떠돌았다. 당시 탄핵 상태에 있었던 노 대통령이 탄핵에서 풀리자마자 일거에 잃었던 권위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 남북정상회담에 있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갑자기 중국 방문길에 나선 것으로 보아, 과거 2000년 상황과 비슷하다며 이런 관측이 떠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용천 참사 사건으로 이런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됐다. 그리고 예상대로 탄핵이 풀렸으나 느닷없는 김혁규 총리 내정 파동으로 다시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김혁규 총리 내정 파동은 노 대통령의 자존심 문제로까지 비화되어 지금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민주당까지 반대하고 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처지를 일거에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 정상회담 카드가 모색되고 있다고 한다. 그 매개 변수로 김대중 전대통령 특사설이 무르익고 있다.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김 전대통령 특사설에 대해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불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김 전대통령의 역사적 과업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북 사업에 대해 노 대통령 측에서 특검을 실시했고, 그 결과 김 전대통령 측근이 대부분 사법 처리 당하고, 지금 박지원씨는 여전히 구속 상태에 있는데 어떻게 김 전대통령이 나서겠는가”라고 말해,’특사설’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그런 상황이 지금 조금씩 바뀌고 있다. 노 대통령 측과 김 전대통령 측 사이에 알게 모르게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두 전현직 대통령 관계와 별개로 김 전대통령의 대북 특사 자격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반문하지 못할 정도의 필요충분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김 전대통령은 수 십 년 동안의 민주화 투쟁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더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성사시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기에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하기에는 최적의 카드라는 것이다.

이런 전후 사정에 대해 우리당의 대북 관계 전문가는 “남북 관계 긴장해소에 김 전대통령만한 카드도 없다. 당장 현안인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이 다시 열릴 예정이지만 부시와 김정일 두 사람 사이가 너무 멀어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중량감있는 인사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김대중 전대통령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분석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김정일은 의심이 많은 인물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평양에 가서 찬 밥 대접을 받고 돌아온 것만 봐도 김정일이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일이 미국에 대한 의심과 경계를 늦추고 핵 협상 테이블에 진지하게 임하기 위해서는 김정일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 본 경험이 있는 김 전대통령만한 적임자가 없다. 김정일은 중국 후진타오 당 총서기와 함께 김 전대통령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문제는 김 전대통령의 건강이다. 김 전대통령의 나이가 팔순을 넘었고, 평생 고문과 투옥, 연금 등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가 동교동 측근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김 전대통령 자신은 본인이 대북 햇볕 정책을 만들어 낸 창시자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게 동교동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북한과의 막후 협상을 통해 자신을 대북 특사로 파견해 준다면 언제든지 이에 응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 및 다른 주변 국가들과의 6자 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내지 못한다면 그 때에는 김 전대통령이 직접 나서 김정일을 다시 만나 협상 내용을 조율하고, 이를 다시 미국 부시와 유엔에 알려 주면서 조율을 통해 대북 협상에 큰 역할을 하게 한다는 관측이다.그러나 이런 김 전대통령 역할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노 대통령이 김 전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명분’을 줘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박지원 문제가 걸림돌이다”고 예측했고, 북한도 대북 특검과 박지원씨 구속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을 퍼부어온 터라 김 전대통령 특사 문제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상황이 무르익자 김대중 전대통령 역할론은 이제 단순한 시나리오 차원을 넘어서 대북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카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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