劍 징역 5년 구형 vs 禹 “검찰, 추측과 상상으로 이 사건 공소 제기”
‘만신창이’됐다지만…재판장에선 꼿꼿한 20년 이상 경력 지닌 ‘법조인’

우병우(51) 전 청와대 민정수석 [뉴시스]
우병우(51) 전 청와대 민정수석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을 동원해 공직자 등을 불법 사찰한 혐의로 재판장에 선 우병우(51)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결심공판은 지난 30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연학)의 심리로 같은 장소 506호에서 개최됐다.

재판은 피고인신문으로 진행돼 우 전 민정수석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진술했다. 이날 검사는 우 전 민정수석에 대해 ▲이석수(55) 전 특별감찰관(현 국정원 기조실장) 불법 사찰 혐의 ▲교육·과학·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에 대한 불법 사찰 관여 혐의 등을 주로 다뤘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우 전 민정수석의 태도였다. 그는 검사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동요하지 않고 외려 “직권 남용에 대한 법리를 말씀하시는데, 법리 부분은 재판부가 판단할 일이다. (또 나는) 법리를 떠나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

우 전 민정수석의 담담한 태도에는 그의 이력이 한몫했다. 그는 서울대 법학과 출신으로 2009년 대검 중수부 중앙수사1과장, 2011년 제18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지청장을 맡은 ‘법조계’ 출신 인사다. 아울러 2009년 당시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건으로 검찰 소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우 전 민정수석은 해박한 법적 지식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재판장 분위기에도 익숙한 인물이다. 때문에 결심 공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과학·문화예술 등 각계 지원기관들의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중 먼저 다뤄진 것은 교육계 블랙리스트였다.

검사는 “(국정원을 통해) 시·도 교육감 관련 여러 문건을 받아본 적 있느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지난 2016년) 누리과정 예산 편성 관련 감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당시 ‘이례적인 감사’ ‘표적 감사’란 말이 있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이 실현된 것 아니냐”면서 교육계 블랙리스트 실존 여부와 여기에 우 전 민정수석의 입김이 미쳤는지 등을 확인해보고자 했다. 

이에 대해 우 전 민정수석은 “(해당) 보고서를 가지고 대통령께 보고한 바 없다”고 말했다. 

검사는 블랙리스트, 불법 사찰 등에 우 전 민정수석의 개입 여부와 관여 정도를 살피기 위해 “피고인(우 전 민정수석)의 지시가 국정원에 그대로 전달된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국정원을 통해) 관련 자료를 받아보라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국정 관련 민심 동향 파악 지시가 있었느냐” “왜 문화예술진흥회의 분위기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실태를 파악하고자 했느냐”는 검사의 질의에 “대통령 지시였다”고 말했다.

과학계 블랙리스트 관련해 검사는 “(보고서 감찰 사항이) 정부 및 정부 전력 반대, 야권지지 여부, 노무현 정부 주요 요직 등으로 작성돼 있는데 사실이 맞나” “정부 지원 자금 등을 수단으로 (지원단체들을) 관리하려 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우 전 민정수석은 “(과학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실제로 (그 단체를) 배제(한다는) 문서 등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면서 자신이 과학계 블랙리스트에 관해 인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관여한 적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검사도 겨눈 칼을 거두지 않았다. 검사는 “(이전에 다른 증인은 우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복도에서 ‘정부를 비판하면서 왜 정부 지원을 받으려 하지?’라 말한 적 있다고 증언했다”고 물으며 정부 비판 단체에 대해 우 전 민정수석이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를 가진 것 아니냐고 따졌다.

우 전 민정수석은 “(증인이) 9월 들은 것과 6월은 다른 일이라고 증언했다”고 방어하면서 “민정수석이 복도에서 행정관에게 말을 했다는 건 (의아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관련해 우 전 민정수석은 “복무실태, 복무사항 정도를 파악하려 한 것”이라며 “건전심사위원, 비판 성향 등은 전형적인 국정원 단어다. 우리(청와대)는 이런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검사 측은 이 단어의 용례를 청와대에서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봤다. 검사는 “2014년 정부 출범 이후 블랙리스트 사업을 진행하면서 국정원 문건 단어 등을 보면 청와대에서 (해당 단어들의 쓰임을) 청와대에서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관해 우 전 민정수석은 “(청와대 근무 특성상 다른 부서에서) 무엇을 하는지 말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며 “들어 본 적 없다. 들어봤다면 (블랙리스트 수사가 진행될 당시 나도) 벌써 조사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대해 굳건히 ‘모르쇠’라는 입장을 취했다. 우 전 민정수석은 블랙리스트 관련 질문이 계속되자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나는 모른다”고 확언했다.

재판은 검사 측의 피고인 신문 이후 15분 간 휴정 시간을 가졌다. 이때 기자는 한 방청객에게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게 됐는지를 물었다. 

방청객은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알고 싶어서 왔다”면서 “언론에서는 (우 전 민정수석 사건을 두고) 편향적인 이야기만 나가는 것 같다”며 비판했다. 우 전 민정수석 재판에 정치적 목적이 함의돼 있다는 시각이었다. 

개정 이후 검사는 “피고인은 민정수석이라는 막중한 지위를 이용해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고, 사적 이익을 위해 국정원 조직을 이용했을 뿐 아니라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의 동향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23년간 검사로 재직한 법률전문가이자 민정수석으로서 불법 행위를 견제해야 하는데도 대통령의 지시를 그대로 하달했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징역 5년 구형 이유를 밝혔다.

우 전 민정수석은 최후 진술을 통해 “그동안 나와 가족은 언론 보도와 수사, 각종 악의적 댓글 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다”면서 “그런데도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돼 검찰이 추측과 상상으로 이 사건 공소를 제기했다”고 반발했다.

또한 “국정원에서 세평 자료를 받아보는 것은 청와대나 국정원에서도 당연한 관행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라며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업무 관행이 범죄로 돌변했다”고 쓴 소리를 건넸다.

우 전 민정수석은 자신이 법조인이라는 사실을 제시하며 “(그러한 일들이) 범죄라고 생각했다면 20년 이상 법조인으로 일한 내가 왜 이 일을 했겠느냐”면서 “일상적으로 하는 일에 언제든 직권남용죄가 적용돼 수사권이 발동된다면 어느 공무원이 안심하고 일하겠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진실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지 검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며 “젊음을 바쳐 공무원으로 일한 시간이 후회와 자괴감으로 기억되지 않게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읍소했다.

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은 12월 7일 오후로 예정됐다.

한편 우 전 민정수석은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박근혜(66) 전 대통령과 최순실(62)씨의 ‘국정 농단’을 방조하고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에 연루돼 국민에게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앞서 해당 혐의로 기소된 우 전 민정수석은 올해 2월 열린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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