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토막 ‘베트남’놓고 상호비방 위험수위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베트남펀드를 놓고 한국투자금융지주와 미래에셋이 뜨거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 자신들의 예측과 투자방식이 옳다”며 전쟁도 불사할 태세다. 게다가 증권가의 ‘나 몰라라’식 반응도 눈길을 끈다. 실제 증권가는 “곪을 대로 곪은 종기가 이번 기회에 터져버린 것”이라며 두 기업간 다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증권가의 이러한 태도에는 두 회사의 수장인 김남구(45) 한국금융지주 사장과 박현주(50)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간의 뿌리 깊은 라이벌의식이 한몫하고 있다. 김남구 사장이 이끄는 한국금융지주의 전신은 동원금융지주로 박현주 회장을 비롯해 미래에셋 최고경영진이 한때 몸담았던 곳이다. 따라서 양사 경영진 사이에는 묘한 경쟁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증권가 관계자의 전언이다. 닮은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두 총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알아봤다.

‘한국금융지주와 미래에셋금융그룹’.

증권업계에서도 비슷한 사업구조를 가진 두 회사는 같은 듯 다르다.

큰 그림에서 보면 두 회사는 공통점이 많아 보이지만 그림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오히려 차이가 더 크다.

그래서 두 그룹은 자주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또 비교 하다보면 그림이 완전히 달라 보이기까지 한다.

우선 가장 큰 공통점은 두 기업의 총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5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옛 동원증권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을 갖고 있다.

고려대 경영대 83학번인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사장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1987년 동원그룹 계열사인 동원산업에 입사했다. 이후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91년 동원증권 대리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에 비해 김 사장보다 다섯 살 많은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78학번)은 1986년 동양증권을 거쳐 88년 과장 직급으로 동원증권에 입사했다. 박 회장은 1991년 동원증권 중앙지점장에 당시 국내 최연소(33세)로 임명돼 화제를 뿌렸다.


박현주 vs 김남구

동원증권에서의 두 사람의 궤적을 보면 김 사장이 대리일 때 박 회장은 지점장을 했다.

박 회장은 이후에도 최연소 부장, 이사로 승승장구했지만, 김 사장도 ‘재벌2세’로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두 사람의 직위는 1997년 ‘이사’로 같아졌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해 박 회장이 독립을 선언하며 동원증권을 떠나 그들의 경쟁은 일단락 됐다. 당시 김재철 회장은 박 회장을 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은 아직도 박 회장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박 회장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컸던 만큼 그가 회사를 떠날 때 실망도 컸기 때문이다.

사실 김 사장이나 박 회장은 김재철 회장의 수제자라 할 수 있다.

김 사장은 아버지인 김 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았고, 이에 비해 박 회장은 비록 월급쟁이였지만 김 회장이 친아들처럼 아껴 지근거리에서 경영수완을 사사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이 김 회장의 그늘에서 독립한 후로부터 11년 후인 지금, 박 회장과 김 사장의 경영 능력은 현재까지는 박 회장의 완승에 가깝다.

미래에셋증권은 주가가 10만원을 돌파하며 시가총액이 5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한국투자증권의 모기업인 한국금융지주는 미래에셋의 절반 수준인 2조원을 조금 넘는다. 그러나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시가총액은 한국금융지주가 앞섰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상당한 라이벌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재계·증권가 주변의 관측이다.

그런 두 사람이 베트남펀드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베트남펀드를 주력상품으로 할 정도로 힘을 쏟은 반면, 미래에셋은 베트남펀드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투자증권에서 베트남펀드에 한참 열을 올리던 지난해 2월, 미래에셋이 베트남 증시가 ‘과열’이라며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 당시 베트남을 다녀왔던 박 회장의 지시로 미래에셋은 베트남 단독펀드 출시 보류와 함께 편입비중 축소에 나섰다.


곪은 상처 드디어 터져

또 베트남증시를 문의해오는 국내 투자자들에겐 “베트남증시에 투자할 경우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베트남 단독펀드를 출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박 회장의 예상대로 베트남펀드는 지난해 10월부터 폭락을 거듭해 최근에는 최고점 대비해 반 토막이 넘게 나 있는 상태다. 당연히 펀드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30%이상으로 참담하다. 박 회장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9일 미래에셋이 한국투자증권의 속을 또 다시 뒤집었다. “앞으로도 베트남 증시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며, 계속해서 펀드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미래에셋의 이 같은 언급은 누가 봐도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베트남 펀드를 운용 중인 한국금융지주를 직접 자극할 만한 내용이었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국내 부문에는 크게 간여하고 있지 않지만 해외 부문만큼은 직접 챙기고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 시장에 대한 이번 언급은 박 회장의 의중이 상당히 반영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런 미래에셋의 행보에 한국투자증권측이 발끈하는 것은 당연한 일.

미래에셋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한국투자증권은 “우리는 (미래에셋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길게 보고 투자하기에 오히려 지금 더 투자해야 할 시점”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실 미래에셋도 중국에 집중 투자한 인사이트펀드의 수익률이 한 때 마이너스 30% 이상이었지만, 중국 증시가 반등하면서 현재는 마이너스 15% 정도로 수익률이 많이 회복됐다.

한국투자증권이 미래에셋을 야속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베트남 증시도 폭락이 진정되면 중국 증시처럼 급반등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베트남펀드의 수익률도 차이나펀드처럼 다시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데, 왜 투자비중도 높지 않은 미래에셋이 나서서 베트남펀드의 비중을 축소하겠다며 목청을 높이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과 미래는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에서도 모두 유사해 전면적인 경쟁은 불가피하다”면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향후 어느 회사가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간판 IB로 더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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