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명(明)과 암(暗)이 있기 마련이지만, 지정학적으로 초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는 역사상 수차례 ‘한반도 병합론과 분할론’의 악령(惡靈)에 시달렸다. 삼국 통일기, 고려 원간섭기, 조선 임진왜란, 한국동란 시기가 그렇다.

신라와 당(唐)나라는 648년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나당(羅唐)연합군에 의해 백제 사직이 무너지자(660년), 당은 신라까지 집어삼키려는 마각을 드러냈다. 태종 무열왕이 어전회의에서 대책을 묻자, 김유신은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개의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나라가 어려우면 자구책을 만들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라고 ‘전쟁 불사(不辭)’를 진언했다.

이런 김유신의 결전(決戰) 의지에 기가 꺾인 원정사령관 소정방은 그냥 당으로 돌아갔다. 소정방을 맞이한 당 고종(高宗)이 “어찌하여 내친 김에 신라마저 정벌하지 아니하였는가?”라고 물었다. 소정방은 “신라는 임금이 어질어 백성을 사랑하고, 신하는 충의로써 나라를 받들고,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부형(父兄)과 같이 섬기므로 비록 나라는 작지만 쉽게 도모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자초지종을 답했다.

이윽고 연개소문의 사후 형제간의 내분으로 고구려 사직이 무너지자(668년), 당시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에 불타는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웅진도독부, 계림도독부를 총괄하게 하려했다. 당나라에게 뒤통수를 맞은 신라는 670년 3월 고구려 유민군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세계최강 당을 선제공격함으로써 7년간에 걸친 ‘나당전쟁’이 시작됐다. 신라는 당의 20만 군대를 물리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안동도호부는 요동성 부근으로 옮겨갔다.

고려 역사에는 특이하게 ‘원간섭기(元干涉期)’가 있었다. 한족(송)·거란(요)·여진(금)과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균형을 이루며 강성했던 고려는 13세기 초 몽골의 침략으로 국운이 쇠약해졌다. 고려가 대몽항쟁 끝에 강화를 성립시킨 1259년부터 반원운동에 성공한 1356년까지 97년 동안을 ‘원간섭기’라 부른다.

이 시기에 고려의 명운이 풍전등화처럼 다급해지자, “고려가 원나라의 종속상태로 지낼 바에는 차라리 원나라의 성(省)이 되는 것이 낫다”는 매국적인 주장(입성책동立省策動)이 분출했다. ‘제1차 입성책동(충선왕1년,1309)’은 부원배 홍중희가 충선왕을 모함하던 끝에 제기하였지만, 실각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제2차 입성책동(충숙왕10년,1323년)’은 유청신·오잠이 원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고려를 삼한성(三韓省)으로 원나라 내지(內地, 본국)와 같이 만들어주소서” 했다. 이번에는 원나라에서 행성의 이름을 ‘삼한행성’으로 정할 정도로 상당히 진전되었다. 이에 이제현(李齊賢)은 고려 땅이 원나라에 넘어가면 다시는 한반도에 자주적인 정권이 들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원나라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려 ‘입성책동’을 막아냈다.

1592년 4월 30일, 일본이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운 임진왜란이 발발, 왜군이 평양성까지 진격하자, 7월 명나라가 원병(援兵)을 투입하면서 전쟁은 대리전의 성격을 띠게 된다. 8월 명(明)의 병부상서 석성이 비밀 협상대표로 파견한 심유경(沈惟敬)에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대동강을 기점으로 한반도를 분할하자. 대동강 이남은 일본이 갖고 대동강 이북은 명나라가 갖자.”는 제안을 한다. 소위 ‘한반도 분할론’이다.

물론 고시시 유키나가의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후 명나라 조정 관리들은 아예 선조를 퇴위시키고 광해군을 왕으로 앉히자는 ‘왕위교체론’까지 공공연히 들먹거렸다. 그 중 일부는 “고려 때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다루가치를 파견했던 것처럼 조선의 군신(君臣)을 행성(行省)에 소속시켜 통치해야 이번처럼 출군(出軍)하는 어려움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조선을 명나라의 직할령으로 만들어 직접 통치에 들어가자는 대담한 주장까지 했다.

이처럼 신라가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자주권을 회복하고, 고려가 ‘입성책동’을 막아 자주적인 정권을 유지하고, 조선이 남북으로 분할되지 않고 500년 사직을 지키고, 대한민국이 공산세력의 남침을 물리치고 선진 한국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상하의 굳건한 자주국방 의지 덕분이었다.

대한민국 좌파의 의식구조가 문제다. 북한의 인권탄압에는 침묵하고 한국 내의 인권문제에는 과잉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권력세습에는 입을 닫고 지난 정권의 직권남용은 국정농단의 철퇴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폭압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만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남북군사합의는 북핵은 그대로 두고 우리만 전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김정은의 비핵화 선의만 믿고 평화를 ‘구걸’하면 또 다시 기망당할 수 있으며, 그 사이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평화는 ‘구걸’하는 게 아니고 힘의 균형을 이룰 때 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 자위적 능력을 갖는 수밖에 없다. 북핵 위협에 맞서 ‘공포의 균형’을 이룰 현실적 방안으로 전술핵을 재배치하든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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