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정치’는 이번 17대 총선의 최대 화두였다. 4·15 총선에서 각 정당은 정강 정책 보다는 이미지 정치, 즉 ‘감성정치’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열린우리당은 2억원 불법 유입에 대한 비판이 일자마자 국민일보 당사를 버리고 영등포 공판장으로 이사갔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비판이 일자 여의도 당사를 떠나 천막당사로 이사갔다. 민주당은 온갖 추태 끝에 추미애 전의원이 또다시 광주에서 삼보일배 이미지 정치에 올인했다. 하지만 선거 기간 중에 운동화신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순대국밥 집에서 식사하던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창고당사와 천막당사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차로 출퇴근하기 시작했고, 순대국밥집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과거에도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 정동영 전의장과 김근태 전원내대표도 바로 이 이미지 정치의 파괴력을 알고 있고, 충분히 그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한 이미지 전략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내실’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비판을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정동영 김근태 두 후보가 통일부 장관을 맡으려 하는 것도 결국 이미지 전략 차원이다. 통일부는 대권 이미지에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 어려운 난제가 산적해 있는 보건복지부보다 통일부에 집착하는 두 후보를 비판했다.

‘통일부 장관 자리를 놓고 싸운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두 사람은 “우리 사이에 갈등은 없다. 함께 제주도에서 선거 유세를 하기로 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문제 자체를 반성하고 새로운 관계 설정 모색을 하기보다는 섣부른 미봉책으로 사태를 진화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두 후보만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관측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정강 정책보다는 후보의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당락을 좌우하고 있기에 둘 다 이런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 이런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군사정권은 과격, 공산주의, 거짓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 씌웠다. 그리고 이 이미지 전략은 수 십 년 동안 위력을 발휘했다.

그렇다면 이 두 후보가 궁극적으로 보완하거나 이념적으로 추구하는 이미지 구축 목표는 무엇일까?정동영 전의장의 한 측근은 “우선 깔끔한 대변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다. 정 전의장의 달변과 임기응변 능력은 장점이자 동시에 최대의 약점이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도회적 이미지나 잘난 사람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어딘가 촌스런 이미지, 어딘가 모자라고 보호하고 싶은 이미지를 좋아한다. 따라서 우리가 구축해야 할 이미지 전략은 그런 것에 있다”고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전략을 밝혔다.

김근태 전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우리는 하루빨리 김 전 대표의 투사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한다. 김 전대표가 오랫동안의 재야 생활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웠고, 또 제도권에 들어와서도 깨끗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지만, 지금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게 유권자들을 움직이는데 결정적 한계가 있다. 우리 유권자들은 말로는 ‘원칙’을 따지지만 실제 그런 원칙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 깨끗한 이미지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너만 깨끗하냐?’며 묘한 반발감을 느낀다. 따라서 우리는 좀 불투명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며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다. <봉>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