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선권 위원장 ‘냉면발언’ 남북지도자 뒷목 잡는 일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평양정상회담 당시‘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고 한 발언으로 시끄럽다.

리선권의 막말이 사실이라면 손님으로 온 남한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무례한 발언이고, 어렵게 평양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남북의 지도자들로서는 뒷목을 잡을 일이다. 서훈 국정원장이 ‘사실이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는데, 마음 상했을 국민들로서는 그나마 남쪽 당국자는 제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다.

리선권만 막말을 한 것은 아니다. 여의도 정치에도 최근 막말로 논란이 되는 정치인들이 몇 등장했다. 민주당 주장대로라면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국정농단의 가장 큰 수혜자라거나 대통령 유럽순방을 외교 사고라고 했다는데, 이런 정도를 막말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만나서 개망신 당했다”정도는 되어야 막말일 터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입에도 담기 싫어서 그나마 순화된 말을 골라 논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막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정치권을 겨눈 막말과 정치권 밖으로 던져진 막말이 있다. 정치권 내부를 겨냥한 막말은 주로 옹색한 입장에서 나온다. 정치권 밖으로 던져진 막말은 무심코 내면을 드러내는 실언인 경우가 많다.

이언주 의원의 ‘독재시대’라는 발언은 상대하기 버거운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기에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한 것은 유권자인 급식노동자를 겨냥했기에 비난의 강도가 다르다.

말은 가슴에 품은 생각을 드러내고 듣는 상대방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 그 중에서도 유력한 정치인의 경우 말은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말은 그 말을 쏟아 낸 정치인에게 돌아와 호, 불호 이미지를 쌓고 정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정치인이 스스로 ‘들개’를 자처한다고 들개가 될 수는 없다. 들개처럼 굴어야 들개가 된다. 들개처럼 짖고 물어뜯어야 들개로 봐준다.

최근 정치권에서 막말 빈도가 높아진 것은 트럼프 영향이 짙어 보인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트럼프, 필리핀의 두테르테, 터키의 아르도안, 브라질의 보우소나와 같은 정치인들의 성공은 막말을 동반한 포퓰리즘의 영향이 컸다.

이제 지구촌 어느 대륙도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 자유로운 땅은 없다. 이들 정치인들은 복잡한 문제를 쉽게 말하고, 자신이 간단하게 해결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믿고 권력을 준다. 정치인들은 이 싸이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막말을 쏟아낸다.

한때 자유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치세력은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고 대선주자, 국회의원들도 쟁쟁하고 당직자, 보좌진들도 민주개혁 진영보다 실력이 낫다는 평을 들었다.

민주연구원은 여의도연구원을 따라잡는 게 영영 불가능해 보였다. 야권 당직자들은 공무원조직처럼 탄탄한 한나라당, 새누리당 당조직을 부러워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모래성처럼 과거의 영화가 허물어진 자리에 막말정치만 남았다.

과거 한국정치에 막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이고 의도적이지는 않았다. 막말 뒤에는 대부분 사과가 뒤따랐다. 한국정치에 막말이 과거에 비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한국정치도 포퓰리즘 자장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상징한다.

유권자들은 사는 문제만으로 버겁고 팍팍해 현실의 진짜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인 여성, 노약자에 대한 공격성, 예멘 난민 문제를 대하는 배타성은 막말정치, 포퓰리즘 정치가 꽃 피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막말을 경계해야 할 때이다.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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