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네트워크 ‘한 집 건너 사돈관계’

과거 혼맥 형성이 주로 정·관계 위주였다면 오늘날 재계 2·3세 혼맥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자유롭다. 권력에 치우쳤던 혼맥이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혼맥의 다양화는 정치·사회적인 변화를 겪으며 사회 주도세력이 경제인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재벌가(家)도 이제 서로 환경이 비슷하고 기업 간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쪽으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또 이들은 사회의 경제 권력으로 자리를 잡았기에 이를 지키는 데도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이제는 자신의 세력을 두텁게 만드는 파트너로서 비슷한 재벌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 집 건너 사돈관계’인 거미줄 네트워크, 재벌가 드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혼맥도를 정밀 분석했다.


삼성-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삼성의 혼맥은 최고재벌 규모답지 않게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전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3남 5녀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장남 맹희씨는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아 장남 역할을 다했지만 회장의 눈 밖에 나면서 조기에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그의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의 한은 어느 정도 풀렸다.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전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와 고 이병철 회장이 미리 약조해 19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삼성은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다. 차녀인 숙희는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 간 것이 눈에 띈다. 삼성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삼성그룹을 물려받은 이건희 전 회장은 홍 여사와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전무), 부진(호텔신라 상무), 서현(제일모직 상무보), 윤형(2005년 사망)씨를 낳았다.

이 상무는 19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는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전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현대-낭만 즐기는 소박한 연애 혼맥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한 편이다. 낭만파 고 정주영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다.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고 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2명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큰아들 몽필씨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큰 형의 죽음으로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몽구씨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외아들인 기아차 대표이사 의선씨는 정도원 강원산업 회장의 큰딸 지선씨와 결혼했다.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는 셋째 아들 몽근씨는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와 결혼했다. 슬하의 두 아들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넷째아들 몽우씨는 40대에 요절했다. 슬하에 3명의 자녀 중 장남은 일선씨는 구자엽 가온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와 결혼했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다섯째 아들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으나 2003년 8월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부인 현정은씨는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울산에 내려갔다 인연이 돼 1976년 몽헌씨와 결혼했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유엔아이 전무로 근무 중이다. 외아들 영선씨는 아직 학생이다.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한 여섯 째 아들 몽준씨는 현재중공업을 일류기업으로 이끌고 있다.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결혼한 뒤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일곱째 아들 몽윤씨는 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회장. 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 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LG-6남 4녀가 뻗친 방대한 혼맥

재계에서 가장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는 LG그룹을 ‘흔히 재벌 혼맥의 본류’로 분류한다. 혼맥을 따라가 보면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재벌가 집안과 연결이 되지 않는 데가 없을 정도다. LG그룹이 직접적인 혼맥 관계를 맺고 있는 곳만도 삼성·SK·두산·금호·한진·대림그룹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구인회 회장은 허을수씨와 사이에 6남4녀를 뒀다. 자손이 워낙 많다 보니 LG가를 ‘재벌 혼맥의 주축’이라고 부른다.

장남 구자경 명예회장은 17세 때인 42년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과 가까운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정임씨와 혼례를 올렸다.

2남 자승(74년 작고)씨는 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로 있던 고 홍재선씨의 딸 승해씨와 선을 본 뒤 4개월 만에 결혼했다. 홍씨는 훗날 전경련 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숙희씨와 57년 결혼했다. 4남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고 이흥배씨의 딸 의숙씨와 결혼했다.

5남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부인 고 김청자씨는 사업가인 김진수씨의 딸이다.

차녀 자혜씨는 대림산업 이규덕 창업주의 장남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 이재연 아시안스타(현 아들 이선용) 회장에게 시집갔다. 이재연씨는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한 뒤 희성산업 사장,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롯데-일본까지 연결된 화려한 혼맥

롯데그룹 신격호 가문은 가계도가 비교적 조촐하지만 재계 혼맥은 막강 파워를 지니고 있다. 특히 9명이나 되는 신 회장의 동생들과 그로 파생되는 수많은 조카들의 혼인을 통해 정계 고위층과 혼맥을 맺고 있다. 신 회장은 일제시대 때인 지난 1921년 11월3일 경남 울주군 삼남면에서 중농의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 회장은 두 차례 결혼했다. 18세 때인 1939년 같은 마을에 살던 노순화씨를 아내로 맞아 딸 영자씨(롯데쇼핑 총괄 부사장)를 낳았다.

그는 청운의 꿈을 품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간다. 신 회장은 1945년 일본여자인 하츠코씨와 결혼 후 두 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과 신동빈 한국 롯데 부회장이 그들이다.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은 38살의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지난 1992년 미국 시카고에서 사업을 하는 재미교포 조덕만씨의 딸 은주씨를 아내로 맞이한 것.

차남 신동빈 한국 롯데 부회장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조차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의 일본 명문가문과 혼맥을 형성했다. 지난 1985년 일본의 귀족 가문으로 대형건설회사인 다이세이건설의 오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사위가 된 것이다.

아내 미나미씨는 한때 일본 황실의 며느리 물망에까지 올랐을 정도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재원이다. 결혼식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가 직접 참석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의 롯데 위상을 새삼 확인시켰다.

신 회장의 둘째 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사돈들은 정말 하려하다. 그는 5명의 자녀를 모두 동부·태평양·조양상선 등 굴지의 재계 가문에 장가·시집을 보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신 회장은 부인 김낙양 여사와의 사이에 3남2녀를 뒀다. 장녀 현주씨는 지난 1979년 박남규 전 조양상선 회장의 차남 재준씨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김치열 전 내무·법무장관과 사돈사이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은 서봉균 전 재무장관, 오석락 전 청주지법 원장, 김기홍 전 대법원 판사와 사돈관계에 있다.



SK-대통령과 연결된 권력 혼맥

SK그룹은 현 최태원 회장이 3대 회장이다.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은 2대 회장이었고 SK그룹의 창업주는 최종현 전 회장의 맏형이었던 최종건씨다.

1973년 지병으로 최종건씨가 타계하자 최종현 전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당시 자녀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최 전 회장의 형제는 4남4녀.

이들은 30여 국내 권문재가와 직간접적으로 사돈관계를 맺고 있어 SK그룹의 혼맥도를 풍성하게 한다.

맏형인 최 창업주가 이후락 전 중앙정보장과, 동생 종욱씨가 조효원 전 서울대 교수와, 종관씨가 김연준 한양대 전 이사장과 각각 사돈관계다.

최 창업주는 슬하에 3남4녀의 자녀를 두었다. 윤원, 신원, 정원, 혜원, 지원, 예정, 창원의 자녀가 그들이다.

이 가운데 두드러진 통혼은 여섯 째인 막내딸 예정씨의 결혼으로 맺어진 사돈이다. 예정씨의 시아버지가 바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것이다. 최 창업주와 이후락씨는 5.16 이후부터 친형제 같은 우애를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 창업주가 딸 예정씨를, 또 이후락씨가 막내아들 동욱씨를 낳은 후 양가 부모 간에 일찌감치 정혼 약속이 이뤄져 결혼이 성사된 것이다.

최 창업주의 장남인 윤원씨는 조달청 국장 출신의 김이건씨의 딸 채헌씨와 결혼했다.

SK그룹의 혼맥 자체는 정략결혼이 아닌 연애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한 다리 건너면 전직 대통령이 2명, 전직 국무총리가 1명, 전직 장관급이 7명, 대기업 오너가 15명이나 등장하는 방대한 혼맥도가 그려진다.

대표적으로 최 회장의 부인인 소영씨의 오빠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가 신덕균 동방유량 창업주의 손녀인 정화씨와 혼인함에 따라 최종현→노태우→신덕균→김종대→김치열→서봉균→조효원→최종욱가에 이르는 순환혼맥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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