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투자 등 지표 급속도로 악화…마땅한 대책도 없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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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조선·해운 구조조정에 이어 자동차산업 실적 쇼크까지 더해지면서 대한민국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특히 노사관계에도 긴장감이 흐르는 실정이다.

최근 코스피는 연중 최저점을 경신하며 2000선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야 3당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는 성명을 내놨다.

국내의 경제전문가들은 투자와 고용 부진, 그리고 가계부채 등의 내부 요인이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동연 장하성 동시 교체 검토, 후임 논의도…
혁신성장 통해 어려움 극복해야…‘땜질 정책’ 한계 우려
산업단지 공장 야반도주 속출 ‘하루 매상 1만 원도 힘들다’

정부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해 ‘침체’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투자와 고용이 불안하지만 수출과 소비가 견조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경기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5일 우리나라의 3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0.6% 성장했다고 밝혔다. 2분기(0.6%)에 이어 0%대 성장에 머물렀다. 2009년 3분기(0.9%) 이후 9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2.0% 성장에 그쳤다.

경제지표 외환위기 이후 최악

3분기 성장이 저조한 이유는 투자 부진이다. 건설 투자는 -6.4%로 외환 위기 때인 1998년 2분기(-6.5%) 이후 20년 만에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설비투자도 4.7% 줄었다. 그나마 수출은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3.9% 늘어나 유일한 성장 엔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반도체의 초호황에도 수출 증가율 자체는 작년 3분기(5.6%)보다 크게 무뎌졌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26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6.15포인트(1.75%)가 내린 2027.15로 거래를 마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2일(2026.16) 이후 최저치다. 이날 장중 한때 2008.72까지 내려가면서 심리적 지지선인 2000선마저 위협받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장기화되고,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특성으로 인해 국내 증시의 추가적인 하락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경제에 대해 경고했다.


지난 9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와 내년 성장 전망치를 각각 0.1%포인트 내린 2.9%와 2.8%를 제시했다. 또한 BOA메릴린치, 노무라, 골드만삭스와 같은 외국계 투자은행과 현대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 등 국내 민간 연구기관들도 일제히 전망치를 2%대로 내려 잡았다.


이처럼 각 기관이 일제히 경고음을 내고 있어 향후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 들어 우리 경제는 고용과 투자 등의 지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고용은 지난 8월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9월에 4.5만 명 증가해 한숨을 돌렸지만 여전히 10만 명 아래에 머무르고 있다.

투자 또한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건설투자는 5개월 연속 내림세고, 향후 성장 동력을 가늠할 수 있는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1.4% 낮아져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뒷걸음질 치고 있는 고용 및 설비투자 지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현재의 경제 상황이 외환위기 상황에 버금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현재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 보호무역주의 추세 등 외생적인 변수는 논외로 치더라도,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단도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그 중심에는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은 15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버티고 있다. 가계부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금리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 또한 고용확대와 내수 진작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소득주도성장은 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현장 분위기도 녹록지 못하다. 공장이 밀집한 구미 공단동 전봇대마다 ‘공장 신속처리!’, ‘공장 매매ㆍ임대’ 등이 쓰인 전단지가 붙어 있다. 공단동 대로변의 한 건물에서 30년 동안 소매점을 운영했다는 A씨는 “기업들이 떠나면서 인구도 급감하고 있다”며 “최근엔 손님이 없어 하루 매상 1만 원을 겨우 올릴 때도 많다”고 토로했다. 야반도주하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구미는 베트남이나 파주로 떠난 삼성·LG전자를 따라 하청업체들도 폐업하거나 이전하면서 인구급감, 실업률 급증 등 난제들이 축적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상반기 구미의 실업률은 5.2%로, 지난해 하반기 4.3%보다 1%포인트 가까이 급증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3.5%)을 훨씬 웃돌아 경북 23개 시ㆍ군 가운데도 가장 높은 수치다. 일거리를 찾아 산단을 중심으로 유입됐던 인구도 2012년부터 순감으로 돌아서 지난해까지 6년 동안 1만1020명이 빠져나갔다. 


기업 경영과 현장 분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는 강성 노조 세력의 확대가 지목되기도 한다.  벌써 기업 주변에서는 “민노총의 강성 투쟁 때문에 거덜 난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는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기업 힘들게 하는 강성노조

이는 민노총 소속 노조의 점거 투쟁,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만 요구하는 행태, 고용 세습 의혹, 대규모 총파업 등이 이어지는 한 경제 상황을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2016년 73만 명 수준이던 민노총 조합원이 현 정부 들어 급증했고, 앞으로 200만 명까지 조합원을 늘리겠다고 선언하면서 기업들은 벌써부터 몸살을 앓는 모습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미시건주 최대 도시인 디트로이트는 20세기 세계최대의 자동차공업도시였다. 크라이슬러, GM, 포드 등이 이 곳에서 10개가 넘는 대형공장을 운영하는 등 공장 직원만 30여만 명에 달했다. 


그랬던 디트로이트가 2013년 파산했다. 미 지방자치단체 역사상 최대 규모인 185억 달러(약 21조 원)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까닭이다. 이 여파로 자동차 공장들은 대부분 철수했고 수많은 직원들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디트로이트가 파산한 근본 이유는 강성노조의 부정적 역할에 의한 산업 경쟁력 저하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자동차 산업이 점점 발달하자 노조가 도 넘는 요구를 하기 시작해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경쟁력에 뒤져 하나 둘씩 디트로이트를 떠나갔다. 결국 디트로이트는 파산하기에 이르렀고, 자신들 이익을 위해 불법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던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게 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몰락에 충격을 받은 미국의 여러 강성·귀족 노조들은 이후 달라진 자동차 산업 환경에 맞게 변화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한때 연 4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던 호주는 지금 단 한 대의 자동차도 생산하지 못하는 불모지가 돼버렸다. 강성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에 허덕이던 해외 자동차 업체들이 모조리 철수해버린 공장 폐허 현상이었다.


결국 디트로이트의 예처럼 한국 기업과 경제 시장도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文정부 경제 뒷전’ 경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야 3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각종 경제지표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북 이벤트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들 전체가 수출, 내수, 설비 등 모두 흔들리고 있는데 대통령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규탄했다.


바른미래당은 각종 경제지표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문 정부에 경고했다.


김삼화 수석대변인은 같은날 논평을 내고 “코스닥은 10월에만 마이너스 19%로 세계에서 가장 크게 폭락했다. 특히 금융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르헨티나보다 코스피 및 코스닥 지수 하락 폭이 더 컸다”며 “한국경제 전망이 아르헨티나보다도 어둡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어제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금년 1~9월 동안 실업자 수는 117만여 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5만여 명이 늘었다. 장기 실업자 수도 평균 15만여 명으로 1만 명이 더 늘었다”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로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지표”라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일자리 대책은 졸속 뒷북처방, 금리인상은 이 눈치 저 눈치 보기, 양극화 격차만 벌린다는 유류세 인하, 뭐 하나 믿음직한 구석이 없다”며 “급기야 증시의 연중 최저치 경신, 현대자동차 쇼크 등이 엄습하고 있는 중”이라고 경고했다.


급기야 청와대 내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동시에 교체키로 하고 후임을 논의 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30일 여권 고위 관계자를 인용, 사실상 경제 수장 교체가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을 두고 갈등설이 불거졌다. 이에 두 사람의 역할에 명확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이번에도 청와대는 교체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교체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예측도 많다. 장 실장은 지난 6월 이미 사의설이 불거졌다. 김 부총리의 경우 역대 경제부처 수장의 평균 임기(약 1년 1개월)를 넘겼다.

김동연 “양극화와 혁신·구조개혁이 우선”

결국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은 혁신성장을 통해 현재의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어려움을 극복하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금의 어려움, 특히 일자리 문제는 단기간 해결이 어려우며 정부의 역할은 그 기간과 투입되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 나라의 경제 수장으로서 위기라는 단어를 꼭 꺼내야 하냐”며 “위기는 일종의 자기 예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김 부총리가 가장 먼저 강조하고 나선 것은 양극화와 혁신·구조개혁이다.


이 부분은 현 정부가 이어가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혁신 성장이 함께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게 김 부총리의 이야기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다”며 “소득주도와 혁신성장은 서로를 갉아먹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경제위기론]  악순환에 빠진 한국경제

경제 악화가 계속되면서 시중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줄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한계 기업들의 경영난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고용한파가 계속되면서 기업심리도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산업 불황으로 자동차 부품업체 등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돈줄마저 마르면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기업이 더욱 늘고, 기업들의 투자도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줄도산으로 이어지면서 협력사들의 하소연도 이어지고 있다.

소규모 자동차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경제가 나쁘다고 해도 이정도였던 적은 없다”며 “줄이다 줄이다 이제는 공장을 내놓는 처지가 됐다”고 했다.

지난 1일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기업대출 증가율은 4.74%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기업대출 증가율 전망치가 5.26%임을 고려하면 0.52%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금융연구원 이대기 은행·연구보험실장은 “내년에는 경제성장률 하락과 가계대출 규제 강화, 기업대출 영업기회 축소와 리스크 증대 가능성 등의 영향으로 대출자산 성장률이 명목 경제성장률 내외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서 우리 산업 전반의 미래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기업들은 생산을 늘리기 위한 설비투자를 주저하는 것은 물론 미래경쟁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투자부진에 기업심리도 위축

실적이 부진한 기업은 허리띠를 졸라매 고용을 줄였고, 급기야 지난 7월 취업자 수 증가는 5000명에 불과했다. 2010년 1월 이후 8년 6개월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고용시장이 이정도로 망가지면 내수경기가 분명히 안좋아 질 것이고요. 기업의 이익까지 감소시켜서 소위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의 구조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경기 상황이 좋지않으니 자영업자가 설자리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은 87.9%로 1년새 10%포인트 늘었고, 올해는 사상 처음 폐업하는 자영업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신산업에 투자할 수 있게 정부가 규제완화나 이해관계 조정 등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형적인 불황국면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경기부양책을 강력하게 시행해 먼저 고용시장을 안정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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