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간 사람은 비도덕적인가”

김명수 대법원장 [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대법원은 개인의 양심이나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기피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에 관해 지난 1일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판결에 대해 각계에서 열띤 찬반 의견이 펼쳐진다.

 

김성태 “김명수 대법원장, 대표적 文 코드인사”…‘코드 판결’ 의혹
병역기피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두고 정부 대응책 촉구


대법관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선 오승헌(34)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다수 의견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환송했다.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8명의 대법관(조재연·민유숙·박정화·김선수·노정희·이동원·권순일·김재형)은 개인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 등을 바탕으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9:4로 판가름나면서 이것이 다수 의견으로 채택됐다.


이 판결이 갖는 의미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 88조 1항(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 불응할 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에 속한다고 본 첫 판례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병역법의 목적과 기능, 병역 의무의 이행이 헌법을 비롯한 전체 법질서에서 가지는 위치, 사회적 현실과 시대적 상황의 변화 등은 물론 피고인이 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도 고려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양심의 자유는 개인의 소신에 따른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고 그 형성과 변경에 외부적 개입과 억압에 의한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되는 윤리적 내심영역”이라며 “국가가 개인의 양심에 반하는 의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그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4년 대법원은 이에 대해 양심적 병역 거부를 부정한 사례가 있다.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이날 선고에서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모두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항소심 주인공이었던 오 씨 측 오두진 변호사는 이를 두고 “지금까지 100여 건이 넘는 무죄판결이 나온 것이 전원합의체 판례 변경을 가져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그동안 감옥밖에 갈 곳이 없었던 청년들이 이제 범죄자 신분이 아닌 상태로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된 데 대법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관용과 포용, 중요한 가치”
수감자 71명 처우 어떻게 되나

 

대법원 판결 다음날인 지난 2일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은 “종교적 신념 등에 기초한 병역거부자에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변협은 논평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형사처벌 등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며 “자유민주주의에서도 다수결 원칙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도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정부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맞게 사면 등을 통해 지난 유죄 판결로 인한 불이익 구제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대응을 촉구했다.


실제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대법원에 계류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227건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수많은 하급심 판결들이 대기된 상태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는 여호와의 증인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 거부 재판 건수를 지난 8월 말 기준 1심 423건, 항소심 304건, 상고심 206건 등으로 보고 있다.


지난 1일 대검과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검찰청에서 수사 받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총 22명이며 이 중 유죄가 확정돼 수감 중인 이들은 약 71명으로 전해졌다.


전원합의체 판단이 기존 유죄 판결이 확정된 병역 거부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석방, 특별 사면 등 구제 방책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관해 법무부 관계자는 “형평성 문제가 있어 전부 풀어줄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양심’ ‘자유’ 범위 두고
의견 엇갈리는 형국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는 여러 가지 쟁점이 교차되는 만큼 일각에서 우려하는 입장도 대두됐다. 그중 가장 중점 사안은 이러한 판결이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협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의무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으므로 공정하게 심사해 성실한 병역 의무 이행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며 “그럼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다 비양심적인가? 이제 다 군대 못가겠다고 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라고 반문하며 반발 의사를 표명했다. 


아울러 “몇 달 뒤면 우리 아들도 군대 간다. 이 녀석 심사가 복잡할 것 같다”며 “그래도 어쩌겠느냐. 이런 암울한 나라에 태어난 걸 탓하라”고 자조 섞인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같은 날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이와 비슷한 소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그런 판결을 했는지 의아스럽다”고 일갈했다.


홍 전 대표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라며 “그 양심과 표현이 외부에 나타날 때는 일정한 제한을 받는 내재적 한계가 있는 자유”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럼에도 세계 유일의 냉전지대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의 성향이 급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고 짚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면서 “군 복무는 국민의 신성한 헌법적 의무다. 정부는 합리적인 대체 복무 방안을 찾아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정교한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 복무 중인 국군 장병들의 사기 증진 및 처우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며 “종교와 양심의 자유란 헌법적 기본권은 국가 존립과 사회의 안전이 바탕이 되지 않고선 절대 보장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 대변인은 “군복무를 마쳤거나 군대에 간 사람들이 비양심적 병역이행자가 아니지 않느냐”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코드 판결’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 중 권순일, 김재형 대법관을 제외한 7명이 모두 문재인 정부 인사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적인 코드인사로 김명수 대법원장을 앉혀 놓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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