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는 투명성 확보, 실제는 오너 방패막이

무골호인(無骨好人), 지극히 순하고 남의 비위를 두루 맞추는 사람을 말한다. 최근 입안의 혀처럼 착 달라붙는 사람들을 스카우트하기위한 기업들의 쟁탈전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제도. 소위 잘나간다는 법조인들의 품귀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한 비난 여론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방패막이용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기업들마다 자신들의 핵심사업, 그룹의 향배와 관련된 소송을 위한 로비스트 역할을 위해 전략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어제의 적이었던 눈엣가시들을 오늘의 동지로 맞이하는 경우도 있으며 지배주주의 학교 동창, 심지어는 다니던 목사, 할아버지까지 선임되는 경우도 있다. 기업들의 요지경 속 사외이사. 천태만상 속 기업들의 그 얇은 꿍꿍이를 들춰본다.

현대증권 노조는 지난 해 김중웅 회장, 김지완 사장, 강연재 부사장, 박문근 이사 등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내용인 즉 주주총회가 불공정하게 진행돼 자신들의 주주권이 심각하게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두산그룹 총수
비자금 변론자가 사외이사

소송의 핵심은 노조와 회사가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는 사외이사자리 때문이다. 노조 측은 하승수 제주대학 교수를, 사측은 이철송 한양대 법대 교수를 각각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결과 이 교수는 96%라는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선임됐으며 하 교수는 18.3%의 찬성으로 4년 연임에 실패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교수가 예금보험공사 산하의 부실책임위원회 위원장이기 때문에 커졌다. 최근 부실책임위원회가 현대건설 부실 책임과 관련,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등에게 총 520억원대의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을 신한은행 등 채권금융기관에 지시했기 때문이다. 즉 현대그룹의 부실추궁을 해야 하는 책임자가 현대그룹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이다.

소송을 지시한 원고와 피고인 현대가 한솥밥을 먹게 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 교수는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본지에서 확인결과 노사측이 지난 26일 법원에 남상철 변호사를 임시이사청구신청을 한 상태다.

두산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김회선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출신이자 국내 최고 로펌인 김&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 두산그룹 총수일가 비자금 사건의 변론을 담당하고 있다. 즉 기업 활동에 날카로운 이견을 제시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총수의 대변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구설수에 휘말렸다.

이처럼 각 기업에서는 안전한 방패막이를 해줄 수 있는 인맥을 구축하는 것에 사외이사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재계순위를 다투고 있는 삼성, 현대, 두산, SK는 모두 지배구조와 분식회계, 비자금문제로 현재 법정에 계류 중이거나 한차례 뜨거운 공방전을 가졌다.

이에 이들 기업들은 모두 법조계 사외이사가 많은 그룹이다. 두산이 16명, 현대자동차가 10명, 삼성은 9명, SK 5명이다. 총 법조계 출신 사외이사 93명중 이들 그룹이 차지하는 있는 법조출신 사외이사는 총 40명으로 43%에 달한다.

또한 법조계 사외인사 중 판검사 출신의 사외이사는 두산 13명(81.25%), 삼성 7명 (77.78%), 현대차 7명(70%), SK 3명( 60%)인 것으로 드러났다. 실로 법원을 통째로 옮겼다는 비아냥을 사고 있다. 특히 삼성의 경우 법조인뿐 아니라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X파일 문제로 인한 국세청과의 관계로 때문에 국세청 관계자들을 적극 고용하고 있다.

황재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최병윤 · 서상주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이제홍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박인주 전 인천세무서장, 박석환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박병일 전 마포세무서장 등 국세청 관계 인사들이 무려 13명이다.

박용성 회장의 횡령과 분식회계로 한차례 큰 위기를 겪은 두산도 만만치 않다. 이건웅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종상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신명균 전 사법연수원장, 신희택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박태종 전 대구지검장 등 법조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삼성과 두산의 사외이사가 선택과 집중이라면 현대는 전방위 부대다.

김영수 전 대통령 민정수석, 이재광 광주지방국세청장, 전형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홍성웅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등이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SK는 정통한 학식을 갖고 있는 교수를 선호한다. 33명중 13명이 교수로 신황호 전 서울사이버대 총장, 현진해 고려대 의과대학 의무부총장, 박상수 전 뉴욕주립대,양승택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석좌교수 등이다.


분석대상 649명 중
대부분 지배주주와 이해관계

지배주주 또는 경영진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도 파다하다. 분석대상 649명중 123명(18.95%)가 지배주주와 이해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이중 독립성이 의심 가는 과거 계열사 임원은 총 70명이다.

특히 하이트 맥주(75%), 한화, 한진그룹(66.67%), LS, 한전, 현대건설 50%로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학연관계에 얽힌 경우도 있다. 649명중 107명(16.49%)이다.

효성그룹의 경우 사외이사 6명중 5명이 경기고, 서울대 출신이며, 사내이사 5명중 3명이 경기고. 2명이 서울대출신이다. 또한 조석래 회장의 동생인 조양래 회장이 있는 한국타이어 그룹도 사외이사 4명이 모두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같은 해에 졸업한 동창생들이며 3명은 재경부 출신이고 신규 선임된 1명도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조양래 회장의 고등학교 동문이다.

한국타이어의 자회사인 아트라스비엑스의 경우도 2명의 사외이사 모두가 효성그룹 출신이며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더 특별한 케이스도 있다. 대성그룹의 경우 계열사인 대구도시가스는 지배주주가 다니는 목사를 사외이사를 임명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도 사외이사로 한국투자금융지주 김남구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그러나 한국운용은 한국증권의 100% 자회사이며, 한국금융지주인 김 대표의 손자인 김범석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다. 즉 그룹의 오너인 김 대표가 손자의 회사에 사외이사로 등재됐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총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 “회사 측에서 임명된 사외이사가 회사의 안건에 반대할 수 없는 미묘한 모순에 싸여 그 기능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들은 이들을 영입함으로써 충실한 대변인이자 로비리스트로 적극 활용해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을 위해 촘촘한 인맥 망을 구축하고 업무 효율성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견제와 상생의 두 가지의 목적으로 고용되고 있는 사외이사. 이들은 기업의 독일수도 약일수도 있다.

“반대합니다” 사외이사의 반대이견에 기업은 선진 경영이라는 홍보효과로 쓰이고 있다. 이는 그만큼 사외이사의 반대로 인한 부결된 사례가 극히 적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난해만 총 5263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의견은 15건으로 반대율은 0.29%에 불과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있었던 SKT의 에이디칩스 인수철회안과 2004년 하이닉스반도체의 마이크론 매각 양해각서 반대의견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이처럼 반대의견을 내지 못한 고분고분한 사외이사들의 연봉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기준 사외이사의 평균 연봉은 2370만원. 특히 SK텔레콤 8100만원, LG전자·KTF 각 6000만원, 삼성전자 5800만원 KT 5700만원의 순이다.

벤처기업의 경우 엔씨소프트 1억2900만원, 다음커뮤니케이션 3900만원. CJ인터넷·에이스디지텍 각 2400만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로 개인최고 연봉을 받은 사람은 엔씨 소프트의 사외이사였던 윤송이(32) SK텔레콤 상무다. 연봉이 1억2922만원이다.


사외이사는 부업
억대 연봉에 스톡옵션까지

윤 전 사외이사는 지난해 10번의 이사회에 참석했으므로 1회 참석 당 1292만을 받아간 셈이다. 또 지난해 7월에는 엔씨소프트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4000주(행사가격 5만1900원)을 받았다. 그러나 윤 상무는 얼마 전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결혼했다.

또한 사외이사의 수입은 가욋돈으로 챙겨가는 경우도 많다.

복수상장사 사외이사의 겸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196명이다.

이 가운데 15명이 동일업종 내 사외이사이다. 동시에 2군데 사외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어 홍원표 중앙대 교수는 남광토건과 삼부토건, 전계목 삼두 DNS회장은 동부제강과 세아제강, 김형준 서울대 교수는 동부일렉트로닉스, 하이닉스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쟁업체로 옮겨가는 사외이사도 많다. 유관희 고려대 교수는 대우증권에서 서울증권으로, 최명수 예금보험공사 기금관리부장은 신한지주에서 우리금융으로 김각영 변호사는 신한에서 계룡건설로 이동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김주연 연구원은 “이해관계로 얽혀 독립적이지 못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외이사를 놓고 기업과 사외 이사간의 검은 결탁이 들어나는 경우가 많다” 며 “사외이사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임명직인 사외이사의 선임방법을 엄격히 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견제와 상생의 두 가지의 목적으로 고용되고 있는 사외이사. 이들은 기업의 독일수도 약일수도 있다.


#“사외이사가 기가 막혀”

실현 차익만 무려 150억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주가조작 사건을 일어났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강찬우 부장검사)는 지난해 회사 돈을 동원해 자사 주식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34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증권거래법 위반 등)로 코스닥 상장사 UC아이콜스 박모(38) 대표를 구속했다. 그러나 박 대표의 배후에는 김모(37)씨라는 사외이사가 있었다.

박 대표는 김씨 등과 공모해 2006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 사이 140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8천회에 걸쳐 자기들끼리 시세보다 높은 값으로 주식을 사고팔거나 허위로 고가 매수 주문을 넣는 등 방법으로 주식을 끌어 올린 것이다.

실제로 2천400원이던 UC아이콜스 주식이 최고 2만8천800원까지 뛰어 올랐다. 그러나 주식이 상한가를 치자 이들은 다시 대표 등이 UC아이콜스 주가가 상승세를 타자 보유 주식을 몰래 팔아치우기 시작해 150억원의 차익을 이미 실현했다. 주식 형태로 보유한 미실현 차익 190억원까지 합치면 부당 이득액이 무려 340억으로 119억원의 차액을 챙긴 기어 및 동력전달장치 제조업을 하는 코스닥 상장업체인 (주)루-보 조작사건 이후 역대 최대액이다.

이에 증권가에 이로 인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지배주주와 사외이사가 검은 결탁을 했을 경우 파생되는 엄청난 파워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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