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권력 농협회장 ‘경영자질’ 논란

이 입수한 농협개혁위원회 제6차 회의자료에 따르면 농협은 최원병 회장 1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기획 중이다.

“농협은 그 자체가 파워다. 전국 각지에 조직이 있어 농협이 힘이 센지, (대통령인)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 거대공룡 농협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 현재 농협은 설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심지어 정부의 주무부처인 농림부마저 “농협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졌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이에 본지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온갖 비리로 뒤엉킨 농협중앙회의 문제점을 시리즈로 집중 조명한다.

지난 1999년 9월, 각 신문에 “농정사 50년 만에 협동조합이 농업인의 품으로 돌아옵니다”라는 전면 광고가 실렸다. 농림부가 내보낸 광고였다.

IMF 이후 당시 국민의 정부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시류에 맞춰 축협을 농협에 강제로 편입시켰다. 이 같은 결정에 축협중앙회 신구범 전 회장은 국회에서 ‘할복’ 자해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전국 각지의 축협은 끝내 농협에 흡수, 통합되고 말았다.


농협 회장의 ‘비대권한’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농협이 과연 농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금융 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 “농협의 몸집이 비대해 지면서 선출직 농협중앙회 회장의 영향력과 권한이 막강해 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농협은 전국 5025개 지점(중앙회·조합 포함)과 6만8000여명에 이르는 직원, 여기에 287조원의 자산까지 자금력으로나 규모면에서 국내 굴지의 어느 재벌그룹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러한 농협을 총 지휘하는 농협중앙회장의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은 한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대통령과 맞먹을 정도다.

하지만 운영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다. 특히 중앙회장직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는 자리로 사실상 부패의 위험이 상존해 있다는 분석이다.

중앙회장이 명예직인 비상근이면서도 각 부문 대표와 자회사 사장 인사권을 쥐락펴락하고 예산권을 사실상 장악한 ‘기형적 구조’가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 전문가들은 농협중앙회장의 ‘막강파워’에 대해 “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의 선출직에 문제가 있다”며 “농협은 선출직인 회장이 당선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돼 사실상 부패의 위험이 상존해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비대공룡’ 농협을 총 지휘하는 농협중앙회장의 권한과 영향력에 대해 지역 농협의 한 관계자는 “한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대통령과 맞먹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주무부처인 농림부 또한 농협에 대해 “농협은 농업인들의 단체라는 가면을 쓰고 기업화 내지는 기관화된 특수 조직”이라며 “오죽하면 농업인 단체들이 농협을 ‘농협 마피아’라고 부르겠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이에 반해 감시시스템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중앙회장을 견제할 장치도 미흡하다. 당국의 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농협은 금융기관이 아닌 ‘생산자 단체’라는 게 금융감독원 등의 감시·감독을 받지 않는 이유다.

때문일까. 농협중앙회장의 비대권력에 대한 잡음은 예전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돼 왔다. 역대 농협중앙회장 모두가 하나같이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점도 ‘회장의 비대권력’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좋은 텃밭(권력)’에 ‘훌륭한 작물(결과)’이 나온 것도 아니다. 최원병 회장의 경영성과는 그야말로 낙제점에 가깝다.

실제 농협은 최근 들어 하는 일 마다 번번이 물을 먹고 있다. 심지어 농협 내에서 조차 “목표 수정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푸념까지 새어나오고 있다.

농협이 사활을 걸고 준비했던 기업 인수합병(M&A) 성과만 봐도 최원병 회장의 경영능력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손만 대면 줄줄이 ‘낭패’

대부분의 수익이 금융분야에서 나오는 만큼 농협은 그동안 금융사가 매물로 나온 인수전엔 어김없이 뛰어들었다. 농협 신용부분의 한해 순이익은 1조원에 이른다.

농협이 군침을 흘린 곳은 한누리증권을 비롯 외환은행, 대한통운, 그린화재, 기보캐피탈, 한국캐피탈, LG카드.

하지만 농협은 올 3월 기보캐피탈 인수전에서 아주그룹에 밀린 것을 시작으로 한국캐피탈 인수전에선 아예 본선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또 물류업계 최대어로 꼽힌 대한통운 인수전 땐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허를 찔렸다.

잇따른 농협의 M&A 실패원인에 대해 금융업계는 최원병 회장의 경영능력을 이유로 들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느 기업보다 충분한 실탄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농협이 기업 인수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이키는 것은 최원병 회장의 경영능력 부재와 무관치 않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최원병 회장의 경영능력 부재 논란과 관련 농협중앙회는 “경영능력 부재라니 말도 안 된다”며 “최 회장을 모함하려는 세력들의 얼토당토않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농협중앙회 문화홍보부 언론홍보팀 관계자는 “기보캐피탈을 비롯해 한국캐피탈과 외환은행, 대한통운, 그린화재, 한누리증권 인수는 모두 최원병 회장 이전부터 추진했던 사업”이라며 “그중 전 회장 대에서 증권사와 캐피탈은 다른 곳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원병 회장의 경영능력 부재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농협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신사업 진출이 최근 잇따라 실패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농민은 지금 어디에 있나?

실제 농협은 오랜 기간 추진해왔던 자동차보험시장 진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관련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가 불가 방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예의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우리가 인수합병이나 신사업 진출에 실패했다고 해서 이를 최 회장의 경영능력에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러한 기사를 내보냈을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지난해 12월 말 농협중앙회 4대 회장에 선임된 최원병 회장은 역대 어느 회장보다 농업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농협개혁을 공약사항으로 들고 나왔던 만큼 역대 회장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농민들은 “그럼 그렇지, 콩 나는 데 콩 나지 팥 날 리가 있느냐”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농업인위해 태어난 농협중앙회가 언제쯤에야 비로소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협이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경북도의회 의장 및 4선 도의원… 정치적 성향 강해

1946년 7월 1일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경북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위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동지상고 5년 후배다.

최 회장과 농협이 처음 연을 맺은 것은 1970년. 최 회장은 경주농협을 시작으로 안강농협 등에서 13년간 외길을 걸어왔다.

그러던 1986년 최 회장은 지역 유지들의 권유로 안강농협 조합장을 맡아 2001년까지 무려 여섯 번이나 연임했다.

최 회장의 화려한 이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합장 출신으론 드물게 4선 도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시절인 1989년 정치에 발을 담근 최 회장은 민자당 경주군지구당 부위원장을 시작으로 경북도의회 4선 의원과 7대 의장을 지냈다.



##‘콩밥’ 먹는 농협회장, 이번엔?

3대째 중앙회장 줄줄이 철창신세 ‘진기록’

농협중앙회가 또 하나의 ‘진기록’을 세웠다. 역대 직선제 회장 모두가 횡령과 공금유용 및 뇌물수수 혐의로 줄줄이 철창신세를 진 것. 이런 탓에 지역농협 사이에서는 “다음은 누구냐”는 식의 말까지 나돌고 있다.

스타트는 초대 농협회장인 한호선 전 회장이 끊었다. 한 전 회장은 1994년 3월 19일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 기소됐다. 당시 그는 농협 예산 가운데 4억8000만원을 비자금으로 조성, 이중 4억1000만원을 개인적인 데 사용했다.
바통을 이어 받은 원철희 전 회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원 전 회장은 1999년 재임기간 중 6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그중 3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농협중앙회장을 2번이나 연임했던 정대근 전 회장 또한 ‘농협회장 구속 징크스’를 피해갈 순 없었다. 정대근 전 회장은 서울 양재동 농협중앙회 사옥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700억원 싸게 판 대가로 수억원의 대가성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다.

이에 따라 농협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내부 견제·감시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농협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전국농협노동조합 관계자는 “역대 회장들의 비리는 단지 개인의 비리사건이 아닌 농협의 구조적 비리”라며 “신임 회장은 도덕성과 개혁정신을 바탕으로 그동안 금간 신뢰와 도덕성을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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