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시장 ‘투자 주의보’


코스닥 시장에 <쩐의 전쟁> 드라마가 방영중이다. 지난해 최고 히트 드라마였던 <쩐의 전쟁>은 사채시장에 뛰어든 한 남자와 돈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쩐’으로 일컬어지는 사채업자들이 코스닥 시장에 뛰어들었다. 명동과 강남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사채업자들은 자금난을 겪고 있으면서도 제도권 금융권에서 외면당한 기업에 주식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돈을 빌리게 된 기업은 사채업자가 요구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제3자 배정을 통한 유상증자와 4배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이면계약을 체결한다. 그 기간 동안 주가가 오르지 못할 경우 사채업자는 경영권을 위협하며 주가조작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사채업자는 대주주를 협박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챙긴 뒤 사라지는 것이 예사라는 것이다. ‘쩐의 전쟁판’이 된 코스닥 시장의 현주소를 되짚어 본다.

코스닥 시장에 ‘투자 주의보’가 발동됐다.

최근 코스닥 시장에는 대주주의 배임 및 횡령, 주가조작, 부도 등으로 인한 상장폐지가 되는 기업들이 늘면서 소액투자자들에 손실이 커지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는 지난 4월, 청람디지탈, 플래닛 82, 모델라인, 퓨처비젼, UC아이콜스, 엔트리노, 한텔, 시큐리티, 우영 등 9개 기업에 퇴출 선고를 내렸다. 최근 베스트플로우, 세라온 등 2개사에 대해 상장폐지 절차를 통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시킬 예정이다.


제 3자 배정방식은 최악의 선택?

또 KNS홀딩스 등이 상장폐지 우려가 있는 기업으로 분류됐다. 이밖에 케이에스피, 뉴월코프 등은 대주주가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코스닥 시장은 한마디로 혼탁 그 자체이다. 투자자들조차 코스닥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코스닥 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코스닥 시장을 망친 주범이 사채업자와 다단계회사라는 지적이다.

명동과 강남에서 활동하던 사채업자와 금융 다단계회사들이 주식시장 붐을 타고 코스닥 시장에 진출하면서 주가조작, 대주주의 배임 및 횡령 등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채업자들이 개입된 기업들에선 드라마 <쩐의 전쟁>보다 훨씬 리얼한 한판의‘쩐의 전쟁’이 연출됐다.

사채업자들은 자금난이 허덕이는 기업들을 물색해 대주주의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제도권 금융권에서 외면당한 기업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아 경영위기를 모면하과 사채를 사용하면서 사채업자가 요구하는 엄청난 대가를 보장해 준다.

사채업자는 드라마에서의 ‘신체포기각서’대신 대주주의 주식을 담보로 잡고, 이자는 제 3자 배정을 통한 유상증자를 요구하고, 4배 이상의 주가 상승에 따른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이면계약을 체결케 한다.

만약 계약기간 동안 주가가 하락하거나 상승폭이 작을 경우 이면 계약 등을 빌미로 경영권 포기을 요구하거나, 주가 조작을 강요한다.

이렇게 대주주를 협박해 횡령, 주가조작을 하도록 해서 돈을 챙긴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기업은 빈껍데기 회사로 전락하게 된다.

사채업자들은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보통 특정 수익률을 보장받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약속한다.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담보로 잡는다.

이때 맺은 이면 계약에 적시된 특정 수익률은 보통 4배 이상 튀어야 하고, 3개월 수익률이 최소 10% 정도는 나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고금리 주식담보 대출과 어음활인으로 자금융통

만약 약속한 수익률이 나오지 않으면 사채업자는 담보로 잡은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돌려 회사를 부도를 내게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 K씨는 “제3자 배정을 통해 신주를 배정받은 당사자가 기업인 경우 대부분 M&A(인수합병)와 관련됐다”면서 “특히 실체가 불분명한 개인이 배정을 받거나 배정을 받으면서 보호예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는 십중팔구 사채시장 자금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K씨는 “제3자 배정방식은 자본잠식을 당했거나 부도 징후가 나타나는 등 한계상황에 처한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기업이 부실하다 보니 회사채 발행이나 주주 배정, 일반 공모가 어렵다. 그러다보니 사채업자를 끌어들여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참여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사채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방법으로 주식담보 대출과 어음활인이다.

주식담보로 1억 원을 빌릴 경우, 2~3배인 2~3억 원에 주식을 담보로 해야 한다. 제 때 상환하지 못할 경우 반대매매에 따라 물량 부담이 두 세배로 늘어나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채업자 3자와 짜고 경영권 탈취

자금 조달하기 위해 사채시장에서 발행하는 융통어음의 경우, 발행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6~10%이상 금리를 물어야 한다.

어음은 발행 기업의 신용도와 재무상태, 만기에 따라 A,B,C 등급으로 나뉜다. A급 어음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발행한 어음으로 할인율은 0.7%(연 8.4% 내외), B급은 월 1%(연 12% 내외), C급은 월 1.3%(연 15.6% 내외) 정도다. 하지만 일부 기업의 금리는 월 3%~5%가 넘는 걸로 알려진다.

사채업자가 제3자와 짜고 경영권을 탈취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7년 코스닥 기업 B사의 최대주주는 주식을 담보로 사채를 쓴 후 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는 담보로 맡아둔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갑자기 쏟아져 나온 물량의 영향으로 주가는 연중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채업자가 시장에서 매도하는 주식을 제 3자가 모두 매수한다.

결과 제3자는 B사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몰아내고 자신이 사장으로 앉았다.

20년간 사채업에 종사한 L씨는 “대주주 지분 장내 매각 공시가 나간 코스닥기업의 경우, 대부분이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가 담보권을 행사를 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두산그룹의 자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코스닥기업 케이에스피가 사채업자에게 팔려나가 만신창이 빈껍데기 회사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채업자 K씨는 M&A를 전문기업의 뒤에 철저히 숨어 있다가 회사가 인수한 뒤에 앞에 나서 회사자금을 빼돌려 거덜 낸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코스닥 시장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뉴스이다.

사채업자와 전문 기업 사냥꾼이 짜고 기존 대주주가 회사에 지고 있던 개인적 채무를 인수한 뒤 사채업자와 짜고 회사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쉽게 인수한다. 인수 후에는 사채를 갚기 위해 회사자금을 횡령한 다음 회사를 또 다른 기업 사냥꾼에게 팔아넘긴다.

M&A업계 전문가는 “정상적으로 영업활동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던 업체들이 갑자기 부도를 맞는 것은 대부분 기업 사냥꾼들이 손을 대면서 부실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드라마<쩐의 전쟁>에서 보여줬던 사채시장은 단지 드라마일 뿐이다. 실제 사채 시장은 더 험악하고 은밀하다.


M&A기업과 짜고 기업사냥꾼 변신

최악의 상황에서 사채시장을 찾게 된 기업인은 사채업자와의 ‘은밀한 거래’를 선택하게 된다. 이 은밀한 거래는 제3자 배정이나, 주가조작 등으로 확대되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된다. 결국 그 기업인은 경영권마저도 잃게 되고 경제사범으로 전락하게 된다.

금융전문가들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사채시장을 찾은 경영자는 이미 파멸의 길로 접어들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단순한 위기모면이 아닌 미래 사업에 대한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컨설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경영컨설팅 결과 사업의 비전이 있다면 제도권 금융권에서도 지원이 가능하다. 자금난을 겪는 기업은 무조건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계 기업이 늘면서 사채시장을 기웃거리는 코스닥 CEO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부분 사채업자의 과도한 빚 상환요구를 못 이겨 횡령 사고나 주가조작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코스닥 기업이 횡령 사고의 주체는 대부분 대표이사나 최대주주다. 횡령 사고가 늘어나는 것은 한계 기업이 늘면서 한탕주의 유혹에 빠지는 경영진도 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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