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재벌 정부기관 오가다 핀 ‘굴곡인생’

국내 첫 컴퓨터 해커 김재열(39)씨가 KB국민은행의 ‘싱크탱크’로 돌아왔다. 김씨는 지난 9월 19일 KB국민은행 연구소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이에 각 신문은 김 소장의 근황을 앞 다퉈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보다 수 십 년 전의 일이다. 1993년 김재열 소장의 이름 석 자가 각 신문을 도배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 장안은 ‘청와대 해커’ 얘기로 연일 화제였다. 어떤 ‘간 큰’ 청년이 청와대 PC통신 아이디(ID)를 도용해 은행 전산망에 접속, 기백억대의 돈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려다 걸린 희대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 청년이 바로 김재열 소장이다. ‘청와대 해커’란 독특한 별칭을 가진 김재열 소장의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굴곡 인생을 되짚어 봤다.

고졸 출신 ‘컴퓨터 해커’가 KB국민은행의 ‘싱크탱크’ 수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1969년 10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김재열 소장은 유년시절 자주 몸이 아파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김 소장은 혼자 책 읽기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 이미 사마천의 ‘사기’와 ‘삼국지’를 뗐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아이큐 140’으로 알려진 김 소장은 마을에서 ‘천재소년’으로 통했다. 하지만 김 소장은 전남 순천고를 졸업한 뒤 두 차례나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만다. 대학진학에 실패한 그는 이후 컴퓨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년 6개월 만에 20여 권이 넘는 컴퓨터 서적을 독파하기도 했다.


죽을 고비 넘긴 시골 천재소년

그런 김 소장이 세상에 알려진 건 이른바 ‘청와대 해킹사건’ 때문이다. 당시 시카고대 입학 허가를 받아 놓은 그는 유학자금이 절실했다. 이 때 은행 ‘휴면계좌’서 자고 있을 기백억대 돈이 김 소장의 뇌리에 스쳤다. 김 소장은 곧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일명 ‘청와대 해킹사건’은 한편의 007영화와도 같았다. 김 소장은 먼저 청와대 비서실을 사칭하기 위해 청와대 PC통신 비밀번호를 알아내기로 했다. 그러나 청와대를 해킹하기 위해선 다른 정부기관의 PC통신 비밀번호가 필요했다.

이에 김 소장은 인터넷 이용도가 가장 높은 국제심판소를 타깃으로 잡았다. 또 인터넷 활용이 빈번한 만큼 비밀번호가 외우기 쉬운 숫자로 구성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김 소장은 여러 가지 숫자를 이리저리 짜 맞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숫자를 짜 맞춘 지 얼마 안 돼 그는 국제심판소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국제심판소의 비밀번호는 아주 단순하게 ‘12345’로 돼 있었다.

비밀번호를 알아낸 그는 국제심판소 명의로 ‘비밀번호가 12345인데 번호를 바꿔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데이콤에 보냈다. 또 같은 날 ‘청와대비서실 업무인수점검팀’ 이름으로 데이콤에 ‘비밀번호를 분실했으니 번호를 BH0303으로 바꿔주기 바람’이란 내용의 공문을 잇달아 보냈다. 국제심판소와 함께 청와대 비밀번호를 바꿔 의심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김 소장의 이 같은 꼼수는 맞아떨어졌다. 데이콤 측은 아무런 확인 절차도 없이 청와대 비밀번호를 ‘BH0303’으로 바꿨다.

이후 김 소장의 행보는 탄력을 받았다. 청와대 PC통신 비밀번호를 손에 넣은 김 소장은 각 금융기관 전산실장 앞으로 “전산망 운영현황과 구조, 일반 전화선과의 연결방법 등 전산정보망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그는 이 자료를 이용해 휴면계좌에 남아있을 기백억대 돈을 인출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김 소장의 이 같은 꿈은 한 금융기관 관계자의 제지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농협 측 관계자가 청와대 비서실에 직접 확인전화를 건 것이다.


청와대 해킹 사건 전모

희대의 ‘청와대 사칭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렸고, 김 소장은 청와대 사칭이란 괘씸죄에 걸려 6개월간 구치소 신세를 지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의 이름 뒤에 언제나 ‘국내 1호 해커 범죄자’란 타이틀이 따라다니게 된 이유도 이러한 까닭이다.

출소 직후 김 소장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기업들은 고졸 출신인 그를 서로 데려가기 위해 안달했다. 이런 김 소장을 ‘낚은 곳’은 다름 아닌 당시 굴지의 재벌기업이었던 대우그룹. 김 소장은 1994년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 특채로 입사해 그룹 사업전략 등을 다루는 ‘기획통’으로 거듭났다.

이후에도 김 소장의 변신은 계속됐다. 그는 1998년 기획예산처 민간계약직 사무관으로 특채되면서 정부개혁 전사로 탈바꿈했다. 2000년엔 그가 소속된 팀이 제시한 문건이 국가채권 관리와 국유지 활용도 제고 방안으로 선정돼 ‘신지식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중 국가채권 관리방안이 김 소장 작품이다.

김 소장의 승승장구는 거듭된다. 2001년에는 딜로이트 컨설팅에 입사해 4년 뒤 상무이사 자리에 올랐고, 2005년엔 국민경제자문회의 전문위원, 2006년에는 금융허브추진위원회 의원 등을 거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건설·조선·금융·미디어 부문 등에 진출한 대주그룹 경영전략실장으로 전격 발탁돼 투자 유치와 인수합병 업무의 주축이 됐다.


#김재열 소장 프로필

▶생년월일 : 1969년 10월 16 (양력)
▶출생지 : 전남 보성
▶학력 : 순천고등학교 (전남)
▶경력 :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회장비서실 인사·기획·전략담당 대리
기획예산위원회 전부개혁실 사무관·정보화담당보좌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이사
딜로이트컨설팅 이사
맥쿼리-IMM자산운용 비상임 감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정책보좌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전략기획본부 상무
(현) 국민경제자문회의 금융허브회의 위원
재경경제부 금융허브추진위원회 금융인력분과 위원
대한민국 금융혁신대상 심사위원
(현) 한국정보통신대(ICU) 발전자문위원회 위원
(현) 제주대학교 초빙교수
대주그룹 경영전략실 실장
(현) 국민은행 연구소 소장
▶상훈 : 2002년 신지식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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