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도 걸렸다(?)

지난달 2일 오후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프라임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 관계자들이 압수된 물품을 가지고 서울 광진동 본사 현관을 나서고 있다.

재계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사정 칼날이 갈수록 예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열병합발전 설비 전문업체 ‘케너텍’는 지난달 말 전방위 금품로비 혐의로 업체 대표들이 줄줄이 소환돼 검찰조사를 받았다. 강원랜드 비자금 수사의 불똥이 케너텍으로 옮겨 붙는 형국인 셈이다. 여기에 재벌그룹 4~5곳도 검찰의 사정권 내에 들어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 재계 분위기는 더욱 찹찹하다. 이와 관련 한 그룹 홍보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바닥인데 하필이면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기업을 대상으로 전방위 수사가 이뤄지고 있어 못내 아쉽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검찰이 ‘케너텍’이라는 에너지 절약 기업을 놓고 고구마 줄기 캐기에 나섰다.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케너텍의 비자금 규모는 68억원. 검찰은 이 비자금의 ‘출구’(사용처) 조사에 온힘을 쏟고 있다.

수확도 만만치 않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용석 검사장)는 케너텍이 국내외 에너지 사업 공동 추진 등의 청탁과 함께 한수양 포스코건설 사장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을 포착, 한 사장을 상대로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연루포착

대검은 또 케너텍에 발전설비 공사를 맡기는 대가로 케너텍으로부터 1억1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정장섭 전 한국중부발전 사장을 지난 10월 2일 구속했다.

검찰은 포스코건설의 한 사장이 해외 자원개발사업 공동 추진과 에너지 사업 개발비용 투자 등의 청탁과 함께 케너텍 이상선(구속) 회장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억대의 금품을 받은 정황을 파악했다.

포스코건설은 작년 4월 케너텍에 100억원을 투자하는 공동사업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2005년에는 대전열병합발전소 인수를 위해 케너텍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도 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8월 케너텍 압수수색 때 이 회사 재무책임자가 관리하던 비자금 장부를 압수해 문제의 장부에 기록된 비자금 지출 명세서 등을 토대로 케너텍의 금품 로비 의혹을 수사해왔다. 특히 케너텍이 2004년부터 최근까지 68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자금의 용처 확인 수사를 확대해왔다.

검찰은 이를 통해 강원랜드 시설개발팀장 김모씨와 지경부 사무관 이모씨가 케너텍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확인, 구속했으며 김승광 군인공제회 이사장도 케너텍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의 전방위 ‘기업사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케너텍의 검찰 수사는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업을 상대로 한 검찰의 수사는 동시다발적으로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검찰은 “구조적 비리를 파헤치겠다”며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공기업에 메스를 댔다.

이어 검찰의 칼날은 프라임그룹·애경백화점 등 전 정권에서 고속성장한 기업들과 ‘낙하산인사’로 말이 많았던 KTF,전 정권실세 연루기업 등에 맞춰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달 19일 KTF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한 뒤 조영주 사장을 체포해 주말인 20일에도 비자금 조성 혐의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다음 재벌그룹 어디?

검찰은 조 사장이 납품업체 B사 대표 전모씨로부터 처남 이모씨의 계좌를 통해 7억 4000만원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달 21일 오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협력업체가 4곳 더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KTF에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 비자금 조성이 수사의 초점”이라며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상황을 야구에 비유해 “1루쯤에 와있다”고 말했다.

KTF 수사에 탄력을 받은 검찰은 곧바로 사정 칼날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맞췄다. 검찰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7∼8월 두 달여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수십개 계열사를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잡고 내사를 진행했다.

중수부는 대검 범죄정보과가 자체 수집한 첩보를 바탕으로 회계분석팀을 동원해 공시 및 회계자료 등에 대해 정밀 검증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범죄정보과가 확보한 첩보에는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특혜나 비리가 있었을 가능성도 언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호그룹 오너 집안과 사돈관계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인수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수부는 올 초 김 전 회장의 ‘대우그룹 구명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 내사는 중수1과가 전담하다 한국석유공사 비리 의혹 수사가 장기화되고 강원랜드 임직원 비리 의혹 수사가 진행되면서 중수2과로 이첩됐다. 그러나 본격 수사를 벌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따라 일단 보류된 상태다.

현재 중수2과는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와 전대월 케이씨오에너지 대표의 횡령·배임 혐의 등을 수사하고 있다.


구 정권 표적수사 논란

한편 검찰이 손대고 있는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같은 표적을 겨누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강원랜드와 최규선ㆍ전대월씨에 대한 대검 중수부 수사 ▲서울중앙지검의 부산자원 부당대출 및 KTF 납품비리 의혹 수사 ▲서울서부지검과 남부지검의 프라임그룹 및 애경백화점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 등의 궁극적 표적이 참여정부 핵심 실세들이라는 얘기다.

완성도도 논란거리다. 노태우 정부는 ‘5공 비리’, 문민정부는 ‘12ㆍ12’ ‘5ㆍ18’, 국민의 정부는 ‘총풍’ ‘북풍’ ‘세풍’ 등 명확한 주제와 범죄 근거가 있는 사건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반면 최근 수사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저인망식 싹쓸이 수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인가 잡아내기 위해 일단 수사부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2006년 무혐의 처분됐던 부산자원 사건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이 바로 검찰의 ‘급한 처지’를 대변한다는 분석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이미 새 정부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 측과 관련이 있는 제주 제피로스 골프장 탈세 사건, 한국석유공사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정의 부활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 독립이 훼손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정 수사 이전에 진행됐던 대대적 공기업 수사, 촛불시위 엄정 대처, 광고 중단 운동 수사, 정연주 전 KBS 사장과 MBC PD수첩에 대한 수사도 공교롭게 새 정부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내용들이었다.

‘검찰 독립성 훼손'과 ‘구태의연한 보복성 사정의 부활'이라는 우려와 비판을 감수한 상황에서 참여정부 비리 입증에도 실패할 경우 검찰이 입게 될 타격은 심대할 것으로 보인다.


#MB 재벌수사는 ‘1석2조’?

검찰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전방위 사정 작업에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최근 검찰은 프라임그룹, 강원랜드, 휴캠스, 부산자원 등의 기업 비리 의혹에 대해 고강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 애경백화점, KTF, ㅇ기업, ㅎ기업 등도 수사 중이거나 내사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이번 수사에는 국세청과 경찰까지 동원된 데다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눈에 띈다. 또한 이들 기업의 비리에는 하나같이 전 정권 시절 청와대나 정부 요직에 있던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재계 안팎에서 이번 사정작업의 배경에 대해 의혹을 보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청와대, 재계, 증권가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번 기업 사정은 두 가지를 포석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가 비록 ‘비즈니스 프렌들리’이지만 범법 행위나 비리는 그 책임을 묻는 ‘법대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들이 전 정권에서 특혜의혹을 받으며 ‘잘 나갔던’ 기업들이란 점에서 자연스럽게 구 정권 인사들 손보기도 노렸다는 얘기다. 이 추정대로라면 결국 이명박 정부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 양수겸장인 셈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