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평균 10만건… 얼굴 없는 ‘온라인 경제대통령’


한 네티즌의 필명 뒤에 ‘효과’라는 말이 붙었다. 최근 다음 아고라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가운데 하나인 ‘미네르바’가 그 주인공. 미네르바는 아고라 경제토론방에서 활동 중인 한 네티즌의 필명이다. 리먼 브라더스 부실사태를 예측하면서 인기 논객으로 급부상했다. 이후에도 환율 급등과 주가폭락 등을 예견하자 그를 따르는 네티즌들은 점차 늘어났다. ‘온라인 경제대통령’ 미네르바의 행적을 뒤쫓았다.

《“…긴말 안하겠다. 내가 예전부터 제2금융권 포지션 최대한 정리하라고 분명하게 얘기 했지? 지금 금융 안정화 어쩌고 …하는데 웃기지 좀 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파생부터 시작해서 금융 부실 연계상품까지 관련 액수만 40조야. 40조원도 아니고 40조 달러. 한국 정도는 한 방에 끝장 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리스크 관리 하라는 소리야…. 난 애시당초 한국 경제 펀더멘탈 따위는 X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2008년 10월 20일 다음아고라 경제방)》

‘온라인 경제대통령’으로 떠오른 ‘미네르바(필명)’가 쓴 글이다. 독설도 이만한 독설이 없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열광한다.

술에 취한 듯, 일기를 쓰듯 내뱉는 그의 한숨은 단순한 푸념이 아닌 단단한 경제 이론으로 꽉 차 있다. 한국의 부동산 거품 경고에서 시작한 그의 경제논평은 세계경제의 모순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위기를 정확하게 경고하면서 온라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미네르바는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 8월말. 산업은행이 인수하려던 미국 리먼브라더스의 부실화를 정확히 예견하며 깜짝 등장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미 올 봄부터 미국 판 서브프라임 불똥이 한국에 튄다는 것을 예고했고, 환율이 미동도 않던 8월엔 한국경제의 대풍랑을 점쳤다. 또 9월엔 환율 1400원대를 정확히 예고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에 대한 누리꾼들의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다. 미네르바의 게시물을 따로 모아 놓은 팬 카페가 생기는 것은 물론 아예 인쇄해서 따로 돌려볼 정도다. 그를 ‘온라인 대통령’ ‘미네르바 교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음 아고라 토론 게시물 1,2위는 미네르바의 게시물이 나란히 차지할 정도고 200건에 달하는 그의 글은 평균 1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다.

인기가 올라가면서 그의 글 속에 숨겨진 진의를 찾아내려는 시도까지 생겨났다. 그가 쓰는 단어들 이면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시도다.

미네르바가 사용한 ‘노란 토끼’라는 단어가 그 대표적인 예. 미네르바는 10월 29일 “이제 노란 토끼가 시작됐다”며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내년 봄이 오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28일 ‘노란 토끼’라는 제목의 글에서 달러 수급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단어하나도 놓치지 마라?

이후 네티즌들은 ‘노란 토끼’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한 네티즌은 “노란 토끼는 한국을 의미한다”며 “노란 토끼가 시작됐다는 것은 국제 투기자본이 한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또 “노란 토끼는 엔화를 의미하고, 미네르바는 앞으로 엔화 가치가 급등해 한국 경제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중”이라는 분석도 등장했다.

미네르바가 지난 10월 25일 이후 수차례 언급했던 ‘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미네르바는 미자가 39세 여성의 이름이라고 밝혔지만, 네티즌들은 이 설명조차 해석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미자’는 미국 자본을 의미하는데, 미자가 39세라는 것은 설립된 지 39년이 지난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등장했다. ‘미자’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었다.

이외에도 ‘빨대’, ‘코카콜라’, ‘소주’ 등 미네르바가 언급한 단어 뒤에 숨어있는 상징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미네르바의 글이 점점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그에 대한 지나친 맹신을 경계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다.

미네르바의 예측 가운데 틀린 것도 많았던 만큼 그의 주장을 가려서 들어야 하는데,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맹신하고 그와 다른 의견을 모조리 묵살하는 분위기는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미네르바가 10월 29일 저녁에 쓴 ‘IMF 달러 스와프는 곤란하다’는 글도 논란이 됐다. 미네르바는 이 글에서 한국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러 스와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IMF 스와프를 한다면 한국 경제는 앞으로 5년간 그 후유증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네르바, 넌 누구냐?

하지만 30일 새벽 한국은행은 IMF가 아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달러 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이에 대해 미네르바를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한국 정부가 FRB와 달러 스와프를 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자체가 미네르바의 설명이 맞았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네르바의 예측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미네르바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도 날로 커지고 있다. 물론 미네르바 본인은 자신을 ‘늙은이’ ‘시장통 고구마’ ‘천민’ 등으로 표현하며 애써 존재를 감추려 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근거로 그의 정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미네르바 스스로 ‘고구마를 파는 노인’이라고 밝힌 것이 그 첫 번째다. 고구마란 노란 황금색으로 인해 ‘외환 시장’을 일컫는 속어로 통용된다.

또한 그는 수차례 “한국 경제에서 중요성은 ‘외환>채권>주식’”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게다가 그의 통계자료는 대개 일본 외환 시장을 통해 나온 자료들이 태반이다. 때문에 그의 글을 읽어본 업계 전문가들은 “일본 엔화를 거래하는 환 딜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경제논평에서 엿보이는 ‘내공’에 근거할 때 경제 쪽에 꽤 지식이 있거나 금융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가 공개하는 정보는 현직에 있지 않고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민감한 내용이 적지 않다. 이는 일각에서 그를 전직 경제 관료 출신 외환 시장 종사자로 추측하는 근거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이 같은 추측에 대해 “자신은 고구마를 파는 노인일 뿐이다”고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이에 다음 아고라에선 ‘미네르바 직업 찾기’가 한창이다. 한 네티즌은 미네르바의 논리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비슷하다는 주장까지 펴는 일이 벌어졌다.

아고라의 아이디 ‘시월창’은 “뛰어난 경제지식을 너무나 쉽게 풀어낸다는 점, 자신의 존재를 극히 감추려 한다는 점, 무엇보다 현 실물 경제와 재정을 연결시킬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이 유 전 장관과 닮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유 전 장관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응이다. 한 측근은 “고마운 말이긴 하나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미네르바의 한마디 한마디가 누리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반증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네르바는 지난 10월 29일 밤에 올린 글을 통해 “환율:주가 변동 모델링 하는데 일한 죄라면 죄 밖에는 없는 늙은이니까”라며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다.


#미네르바 암시한 ‘노란 토끼’란?

《이제 ‘노란 토끼’가 시작된 거야, 그것만 알고 있으면 이게 뭔 말인지는 내년 꽃 피는 봄이 되면 알 거야. 지금은 ‘노란 토끼’가 시작 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 노란 토끼에 대해서 말하면 난 비자 싸그리 다 긁어모아서 외국 나가야 해, 나도 장사는 해야지! 그리고 몸 조심 하고!》(2008년 10월 29일)

지난달 29일 절필을 선언한 미네르바는 이전에도 몇 번 네티즌들에게 몇 가지 충고를 남겼다. 무엇보다 “2010년 전까지 주식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 두 번째가 바로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는 10월 초 “정부가 금리를 인하하면 농담이 아니라 무조건 이민을 가라”고 권장(?)한 바 있다. 그 때가 되면 중장기 적으로 일본 물가의 1.4배~1.7배로 폭등할 것이라 예견한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네르바는 “국제유가가 안정되니까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X소리를 믿으면 안 된다”며 “이미 이 나라는 물가가 국제 유가로 핸들링 되는 나라가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실제 10월 27일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경기 회복을 위해 기준 금리를 0.75% 인하 한다”고 밝혔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어디까지 맞을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노란 토끼’라는 알듯 말듯 한 힌트를 남긴 것이 온라인에서 최고 화두로 급부상했다.

혹자는 지난 1997년 IMF 구제금융 당시 해외 헤지펀드들의 작전명이 ‘여우 사냥’이었음을 상기하며 ‘노란 토끼’라는 용어를 외국계 자본,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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