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0일 이해찬 총리지명자가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총리 내정 파동 이후 6·5 재보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해찬 의원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이를 두고 또 다시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서 찬반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김혁규 카드 이상으로 이해찬 카드는 호불호가 분명하다.지난 6·5 재보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참패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과 열린우리당의 상당수 소장파 의원이 반대했던 김혁규 카드를 밀어붙인 것도 한 요인이었다.

이 사건 이후 노 대통령은 ‘청와대와 당 따로’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도 했다. 국가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기 위해 정부·여당이 원활하게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정치권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추풍낙엽 식으로 떨어지고 있다. 항간에서는 이런 시점에서 만두파동이 나온 것도 고도의 ‘정치공학’이 아닌가 하는 유언비어도 나돌고 있다. 즉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쏟아지는 비난을 정권 측에서 만두를 희생양으로 삼아 희석시키려는 공작이 아니냐는 것이다. 무려 3개월 동안 만두파동의 엠바고가 묶여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유언비어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어쨌든 노 대통령은 이해찬 총리 카드를 제시했고, “책임감과 소신, 추진력을 갖추고 당정 관계를 긴밀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고 그 지명 이유를 설명했다. 노 대통령 인사 스타일이 남들의 평가보다는 자신이 직접 겪어서 ‘검증된’ 인사를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책임감, 소신, 추진력 측면은 이해찬 지명자의 분명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교육부 장관을 맡아 이해찬 지명자가 추진했던 교육개혁은 지금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카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현재 이해찬 지명자에 대해 전교조와 한국교총 등 양대교육단체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화합과 계층갈등 해소를 바란다면 시장주의 개혁의 선봉장인 이해찬 의원을 국무총리로 임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더 구체적으로 “이해찬 후보는 교육부 장관 시절인 98년 교원정년단축 등 이른바 시장주의 구조조정을 교육계에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실정에 맞지 않는 특기적성교육을 도입하면서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허황된 발언으로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린 장본인”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전교조의 공식 논평과 달리 일선 전교조 교사 사이에서는 이해찬 후보에 대한 찬성도 많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전교조 소속 교사는 “이해찬 후보가 비록 현실감이 떨어져 교육개혁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한 가지만 잘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교육 철학이나 교원정년단축 같은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국민 절대 다수가 찬성한 정책이다.

게다가 이해찬 후보가 앞장서서 전교조를 합법화시키지 않았는가. 따라서 전교조가 이해찬 후보를 반대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처사이다”라고 이해찬 후보를 지지했다. 이같은 반응이 일선 전교조 교사 사이에서는 광범위하게 도출되고 있다고 한다.실제로 학부모 단체도 이해찬 후보의 교원정년단축 정책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하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 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 이상의 철밥통을 자랑했던 교사들의 정년을 단축했던 것은 이해찬 후보의 업적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적격 교사 퇴출 시스템까지 구축해야 한다”고 전교조의 이해찬 후보 반대 ‘각론’을 비판했다. 교원의 정년을 단축한 것만큼은 이해찬 후보가 잘 한 업적이라는 것이다. 전교조 측에서 수뇌부와 일선 교사들간의 입장 차이가 노출됨에 비해 한국교총 측은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반대 일색이다.

한국교총의 공식 입장은 “교육 황폐화 장본인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국무총리가 되는 것을 저지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총 소속 한 교사는 “이해찬 식 시장주의 교육개혁은 문제가 컸기 때문에 그의 입각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교총이 교사 서명을 받는 식으로 해괴한 공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이처럼 교육계에선 이해찬 의원의 총리 지명에 대해 찬반논쟁이 팽배하지만, 이해찬 지명자 지역구인 관악을 선거구에서는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이다.

길거리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한 중년 상인은 “우리 지역구 의원이 총리가 된다는 데 좋은 것 아닌가”라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시장 상인이나 일반 상점 상인들도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네티즌들의 찬반논쟁도 뜨겁기는 만찬가지.소위 ‘이해찬 세대’로 불리는 젊은 네티즌들의 반발은 매우 거셌다. 한 네티즌은 “우리는 이해찬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마루타였다. 교육을 망친 사람이 어떻게 총리직을 잘 할 수 있겠는가”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해찬 때문에 두 번이나 수능을 치러야 했다”며 감정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같은 네티즌 사이에서도 논리적으로 이해찬 후보를 찬성하는 반응도 많다.

한 네티즌은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창의력 있는 인재들은 이해찬 세대에서 나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수능에서 점수를 더 받고 덜 받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이큐가 가장 높고 수능점수가 가장 높다는 서울대가 전 세계에서 100위권에도 못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따라서 한가지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다던 이해찬 세대가 나중에 주목받게 된다. 이해찬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런 찬반 양론을 염두에 둔 듯, 이해찬 총리 지명자는 “그 동안 설계된 국정과제 로드맵을 이제부터는 내실있게 실행하는 역할을 해달라는 뜻에서 노 대통령이 나를 지명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국회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크게는 일하는 정부, 신뢰받는 정부, 세계 일류 국가의 국정목표 아래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에서 말씀한 부패 청산, 정부 혁신, 민생 경제 3가지를 안정감 있게 실행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당장 국회 청문회에서 이해찬 지명자가 쉽게 통과될 지는 의문이다. 물론 앞서 김혁규 카드보다는 쉽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분위기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일하는 총리상’을 부각시킨다는 방침이고, 야당에서는 주로 교육 장관 시절의 정책 결정의 문제점과 자질론을 들어 확실히 따진다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의 관계자는”이해찬 지명자가 5선 의원에 정책위의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을 지낸 경륜이 풍부한 인사라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또한 교육부장관을 지내면서 교육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교육개혁을 이끌어 낸 추진력과 돌파력 등을 내세워 일하는 총리에 딱 맞는 인사라는 점을 강조할 방침”이라고 인사청문회 전략을 밝혔다.한나라당은 이해찬 지명자의 교육 정책을 가장 큰 쟁점으로 삼고, 총리로서의 자질과 능력 검증에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검사 출신의 김재원 의원은 “제보가 쏟아지고 있고, 일부 증인에 대한 실명 확인까지 마쳤다. 이 지명자의 독선적 성격과 정책관리 능력 부재에 초점을 맞춘 청문회를 준비 중”이라고 한나라당의 전략을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조어능력과 순발력이 뛰어난 노회찬 의원을 내세우고, 이 총리 지명이 업무나 능력보다는 당청관계를 고려한 인사로 보고 이 지명자의 자질을 집중적으로 파헤칠 계획이다. 총리 인사 청문회가 국회의원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찬성이면 통과이기에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이해찬 지명자는 총리로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지명자에 대한 우려섞인 반응이 혼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당의 한 의원도 “이 지명자의 개혁 의지와 추진력은 분명 탁월하다. 그러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추진력 외에도 수많은 자질이 필요하다. 때로는 반대자를 설득시키고 타협하고 조화시키는 것도 필수이다. 그런데 우리가 옆에서 지켜본 이 지명자의 모습에서 그런 자질은 보기 힘들었다. 솔직히 총리 임명 후에 얼마나 개혁 작업을 잘 이끌어 나갈지 걱정이다”고 또 다른 시각을 보여 주었다.

정가, 이해찬 ‘관리형 총리’능력에 주목

김혁규 의원이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을 때 그는 잠재적 대선 후보였고, 노 대통령은 김근태-정동영 동반 입각 후 김혁규 총리로 모든 대선 후보를 관리하겠다는 구상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해찬 총리 지명자는 대권 후보와는 거리가 멀다. 그 역시 순수 관리형 총리로서 만족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력이나 성향으로 보아 과연 반대 세력까지 아울러가며 총리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것인가 논란의 여지가 있다.이 지명자는 52년 충남 청양 출생이다. 서울 용산고를 거쳐 71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적성이 맞지 않아 다음 해에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입학했다. 72학번 동기로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 있고, 이들은 그 때부터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

이후 학생 운동권에 뛰어들어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1개월 감옥살이했다. 78년 광장서적 사장이 되었고, 79년 돌베게 출판사 대표에 취임했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이후 계속 재야 운동을 하다가 88년 당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이후 5선 의원이 되었다. 88년 국회 노동위 위원으로서 당시 노무현, 이인제, 이상수 의원들과 함께 맹활약했다. 그 해 광주민주화운동특위 간사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 이후 96년 조순 전 서울시장 밑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초대 교육부 장관에 취임하여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그의 이력을 살펴볼 때 그는 일종의 ‘참모형’에 가깝다. 과연 그가 모든 장차관을 감독 관리하는 총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해찬 세대는 83·84년생

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이해찬 의원이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중 3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능력고사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이 장관의 말을 믿고 자율학습이나 모의고사 진학지도 등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시 방침이 바뀌어서 결국 그 때 학교 공부를 충실하게 하지 못한 학생들(주로 83~84년생)이 어렵게 출제된 수능에서 고전하고, 또 이들의 기초학력이 너무 부실하여 이후 대학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이해찬 세대’라고 한다. 그러나 이해찬 전장관의 ‘특기 적성 교육’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채 막무가내로 추진되어 실패하긴 했지만 그 방향과 철학만큼은 옳다고 하는 지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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