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에 없는 건 뭐? ‘기술’


‘보일러업계의 대부’ 최진민(67) 귀뚜라미그룹 명예회장의 추악한 이중생활이 눈길을 끈다. 겉으론 ‘보일러 박사’로 소문나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보일러 업계에 따르면 최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손 뗀 지금까지도 귀뚜라미그룹이 출현한 특허 및 산업재산권을 갖고 있다. 즉 회사 임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모든 ‘영광’을 자신이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오너가(家)의 이중성은 이뿐만 아니다. 장남 최성환 과장(32)도 부친의 뒤를 이어 한몫 단단히 거들고 나섰다. 아버지는 보일러쪽을 아들은 냉방쪽 특허를 사이좋게 나눠 갖은 모양새다. 귀뚜라미그룹의 특허 소유 현황을 짚어 봤다.

우리나라 보일러 역사를 논하는데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귀뚜라미그룹 창업자인 최진민 명예회장이다. 하지만 최 회장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최 회장 본인이 얼굴 내밀기를 극도로 꺼리는 탓이다. 언론 매체와 직접 인터뷰한 적도 없다.

그러나 보일러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한번쯤 ‘최진민’ 이름 석 자를 들어봤을 테다. 업계 입문서로 사용되는 <천직>이 최 회장이 직접 저술한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보일러 기술의 ‘바이블’로 통하는 이 책은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자신의 전문지식을 공개해 설비기술의 저변을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 회장을 국내 최고 보일러 기술자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 회장의 이중생활

이런 최 회장의 ‘명성’에 최근 빨간불이 켜졌다. ‘귀뚜라미보일러 기술 대부분이 최진민 회장 이름으로 특허 등록돼 있다’는 입소문이 업계를 중심으로 나돌고 있는 탓이다.

소문에 따르면 46년 역사를 가진 귀뚜라미보일러의 특허 및 실용신안은 모두 560여개. 그러나 정작 귀뚜라미보일러가 갖고 있는 실용특허는 20여개 안팎이다. 나머지 500여개는 최 회장 명의로 등록돼 있다는 것이다.

귀뚜라미와 함께 보일러 업계 3강으로 꼽히는 경동나비엔과 린나이코리아와 비교해 봐도 최 회장의 ‘특허 욕심’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실제 뒤늦게 보일러 업계에 발을 내딛은 경동나비엔과 린나이코리아가 갖고 있는 실용특허는 각각 150여 개와 180여 개다.

때문에 업계는 최 회장의 유별난 ‘특허 욕심’에 고개를 갸웃댄다. 이런 귀뚜라미의 사업방식이 여타 경쟁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인이 특허를 보유하지 못하면서 이에 대한 특허사용료(로열티)를 지불하는 등의 대가가 따르게 된다. 때문에 경동나비엔과 린나이코리아는 모두 연구소를 통해 자체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개발되는 기술은 법인명으로 출원된다. 오너의 명의가 아니니 기술 이용에 있어 별도의 계약이 필요하지도 않다.

반면 귀뚜라미의 경우는 이와 180도 다르다. 귀뚜라미 그룹을 가리켜 500여 개에 달하는 특허 및 산업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틀린 말이다.

회사가 실용특허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것과 오너가 실용특허에 대해 권리를 가진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회사가 권리를 보유했을 때와 달리 오너의 특허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귀뚜라미는 오너와 별도로 임대(실시권) 및 권리이전 계약을 체결해야만 한다.

즉, 기업에 실용특허 권리가 있지 않다는 것은 해당 기술사용을 위해 최 명예회장과 계약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귀뚜라미 관계자는 “최진민 명예회장은 보일러 업계에서 알아주는 전문가”라며 “정통한 보일러 전문가인 만큼 실용특허가 쌓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귀뚜라미 측 관계자는 “귀뚜라미 측에서는 별도의 연구소를 운용하지 않고 품질개선팀에서 담당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보일러는 최 회장님이 연탄보일러 때 개발한 코일기술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라며 “특허권이 최 명예회장에게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보일러 전문가는 “보일러 업계 당면한 문제는 열효율을 높이는 것부터 전자화 된 보일러의 제어기술 등 과제가 끝이 없다”며 “실용특허 개발을 오너 개인이 모두 담당한다는 것은 이해가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일러가 1990년대 이전처럼 기계식이 아닌 전자공학, 기계공학, 연소공학, 재료공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한데 모여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귀뚜라미는 현 체제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최 명예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과장도 보일러, 에어컨 등에 실용특허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현재 귀뚜라미의 핵심 기술, 제품 디자인의 원천을 오너부자(父子)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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