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 오가다 ‘절치부심’ 인생역전 승부수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재계에선 이 말이 ‘한번 회장은 영원한 회장’으로 통용된다.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던 주요 최고경영자들이 다시 경영일선으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전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해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등 산업계를 주름잡던 주역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재기에 나섰다. 이들의 발 빠른 행보를 뒤쫓았다.


김우중·정몽원 회장 고맙다 ‘사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말 사면된 김 전 회장이 최근 들어 부쩍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 재계에 따르면 그동안 지병 치료에 전념하던 김 전 회장은 최근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사장, 장병주 대우 전 사장, 김욱한 대우재단 이사장,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 등 최측근 인사들을 빈번하게 만난다고 한다. 게다가 베트남·중국·미국 등 과거 자신이 세계경영을 펼치던 나라를 종종 다닌다는 게 재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과거에 주창했던 ‘세계경영’ 꿈 재개에는 장애물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다. 검찰이 “사면은 됐지만 김 전 회장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17조9000억원의 추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고 2005년 귀국할 때까지 6년 가까이 해외 도피한 전력을 감안해 출금조치”를 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은 사면 이후 지난 2월 그룹 모기업인 만도를 되찾았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재계 12위의 위상을 확보한 한라그룹은 이후 유동성 위기에 몰려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한라시멘트 등 주력 기업들의 경영권을 내놓고 한라건설만 보유하는 상태가 됐다.

정몽원 회장은 이후 과거 만도기계를 JP모건이 주축이 된 투자회사 선세이지에 매각한 뒤 줄기차게 다시 사들이기 위한 공을 수년째 해오다 사면과 함께 만도 인수를 확정지었다.

재계는 이번 만도 인수를 발판 삼아 정 회장이 한라그룹 부활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태수 회장 에너지 프로젝트 올인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키르기스스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을 오가며 자원·건설 관련 프로젝트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 회장은 카자흐스탄에서 그의 움직임이 공개되자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법무부가 카자흐스탄에 정 회장의 신병을 확보, 인도해줄 것을 요청하자 이를 눈치 채고 서둘러 이웃 나라인 키르기스스탄으로 간 것이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2003년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정 회장은 오랜 외국생활에 지친 데다 한국음식이 그립다며 귀국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수감생활을 경험한 정 회장은 귀국 즉시 재판을 받아야 할 상황에다 법정에서 구속될 것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선뜻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주변인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은 정부와의 타협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와 CIS 국가를 상대로 인맥을 최대한 동원, 대규모 에너지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뒤 정부와 ‘빅딜’할 생각이라는 것.

그렇다면 정 회장이 중앙아시아를 마지막 활동 공간으로 삼은 이윤 뭘까. 이곳에서 최근 자신의 장기인 에너지와 건설 프로젝트 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앙아시아는 우리 자원 외교의 대상지이기도 하다. 한편 정 회장은 국적기를 이용할 때는 휠체어와 마스크, 모자, 목도리 차림으로 위장하고 다닌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 항공기를 이용할 때나 한국 사람이 없는 곳에서 활동할 때는 건강한 노인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동도 오전과 점심 오후 각 1시간씩 하루에 3시간을 하며 수프도 두 그릇 이상 비우고 말고기를 즐겨 먹는 등 식사도 곧 잘하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최원석·김석원 전 회장 재기 꿈 물거품

호시탐탐 재기를 노려온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최근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대한통운 국제물류의 소유권을 주장했으나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최 전 회장이 “대한통운 국제물류는 내 소유인데 허락 없이 대한통운과 합병하려 한다”며 대한통운 국제물류와 대표이사를 상대로 낸 주주총회 개최 및 결의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특별사면 된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도 재기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지만 최근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임직원의 경조사가 있을 때에만 과거 참모들을 만나 근황을 확인하는 정도로 바깥 활동을 했던 김 전 회장은 최근 친인척, 과거 참모들과 접촉을 늘리며 미래 사업에 대한 구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한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신정아 게이트’에 김 전 회장의 연루가 포착됐고, 그의 집에서 발견된 67억원의 괴자금과 맞물려 10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압수수색과 자금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곧 김 전 회장이 지방의 한 레미콘회사와 장남 명의 건설사 등 4~5개 차명회사를 통해 1000억 이상의 비자금을 만든 정황을 잡았다.

파란만장했던 김 전 회장은 결국 위장 계열사 4곳에 1271억원을 부당지원한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일단락 됐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이날 열린 선고 공판에서 계열사 부당지원한 혐의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던 김 전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김 전 회장은 지금까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지만, 법원이 실형을 선고함에 따라 법정 구속돼 영등포 구치소로 수감되게 됐다.



김철호 전 회장 서화에 푹, 여수서 재기 노려

김철호 명성그룹 전 회장은 요즘 서화에 ‘푹’빠져 산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1980년대 초 한국에 콘도미니엄이란 개념을 처음 도입, 불과 3년 만에 기업 23개를 거느리는 ‘신화’를 창조한 인물.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이른바 ‘명성 사건’이 터지면서 탈세 혐의로 9년7개월간 복역했고 1993년 3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후 지금까지 재기의 꿈을 다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또 여수 앞바다에 지상 26층ㆍ해저 2~3층 규모의 바다호텔(오션판타지아)을 짓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지인에 따르면 스위스 금융사인 제네바파운데이션그룹이 총 공사비 1조6000억원 중 70%를 투자하기로 1차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라고 한다.

김 전 회장이 추진 중인 바다호텔은 여수엑스포 개최에 앞서 2011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성철 회장 개성공단 통해 재기성공

지난 2007년은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에겐 잊지 못할 한해다.

차입금을 완전히 상환하면서 신원을 명실상부한 우량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실 신원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승승장구했던 대기업이었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97년, 신원그룹은 계열사 16개, 해외 계열사 8개 등 총매출 2조원을 기록하며 재계 순위 31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는 고속 성장하는 와중에 내실을 미처 다지지 못했던 신원그룹을 워크아웃이라는 구렁텅이로 몰아세웠다. 1억5000만 달러가 넘는 외화 부채를 안고 있던 신원으로서는, 환율 상승과 이자율 급등이라는 이중고를 넘기 힘들었다. 세간에서는 신원그룹이 재기하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연이어 쏟아졌다.

그러나 박 회장은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2003년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하며 경제계를 놀라게 했다. 박 회장은 워크아웃 돌입 이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원 정상화를 이뤄냈다. 선택과 집중은 다름 아닌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것. 박 회장은 골프장, 건설, 전기전자 등 비핵심 계열사를 모두 매각해 빚을 갚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점은 모기업인 신원의 제품 시장 지배력이나 수익성이 양호했다는 점이다. 계열사 간 자금 거래 단절과 상호 지급 보증을 해소할 경우 충분히 독자 생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 같은 박 회장의 판단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신원은 2003년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

박 회장이 다시 한 번 세간에 화제가 된 건 개성공단에 진출하면서다. 박 회장은 2005년, 북한 개성공단에 생산 공장을 신설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제2, 3공장도 연이어 준공했다. 신원의 개성공장 월평균 생산량은 6만 피스로 늘어 남북경협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박 회장은 해외 투자도 부지런히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베트남 신규 공장 완공과 함께 베트남 생산 라인은 20개에서 40개로 2배 증설됐다. 올해도 30개 라인을 추가로 증설한다는 방침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박 회장은 기업을 통해 사회를 복되게 하는 것을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다. 사명인 신원(信元) 역시 ‘최고의 믿음’에서 따왔다.

워크아웃 당시 박 회장 보유 주식 전부를 회사에 헌납하고, 재기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믿음이 바탕에 있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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