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후보 경쟁은 생사의 결판과 같다.” 정치권 인사들의 말이다. 그만큼 대권경쟁이 뜨겁다는 말이다. “대권경쟁에 뛰어들면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과 같다.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공개될 뿐 아니라,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일이 수면위로 부상하기도 한다. 일부 정치인은 대권 경쟁에 명함을 내밀다 망신만 당하고 물러난 경우도 많았다.”지금 한나라당의 대권경쟁도 뜨겁기는 마찬가지. 수면위로 본격 부상은 하지 않았지만, 물밑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대권후보군은 잘 알려진 것처럼, 박근혜-이명박-손학규 세 사람이다.

한나라당 대표인 박근혜 의원과, 소대통령으로 불리는 이명박 서울시장, 대권의 징검다리로 부상한 경기지사직을 맡고 있는 손학규 지사. 이 세 사람의 대권 물밑 경쟁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상대 진영의 정보 수집은 물론, 대권 후보 경쟁자의 과거 행적까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대권경쟁이 수면위로 부상할 경우, 언제든지 상대진영에 카운터펀치를 날릴 ‘1급 파일’을 준비 중이다. 이 파일에는 상대 진영의 사생활뿐 아니라, 과거의 정치적 발언까지 모두 담겨 있다. ‘1급 파일’ 준비와 함께 대권 후보군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세확대’ 부분이다. 당내뿐 아니라, 지역적 측면에서도 세확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당내 세력 확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랫동안 조직을 관리해야 한다”며 “당내 대권 후보군들도 이런 측면에서 나름대로 세확대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대권 후보군들이 세확대 측면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곳은 부산·경남지역.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인 부산·경남을 잡아야 대권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곳을 선점하기 위한 첫 전쟁이 6·5 재보선 후보 당내 경선 때 벌어졌다. 대선 후보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였던 것이 부산시장 후보 경선이었다.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사실상 이명박 서울시장이 박근혜 대표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최재범씨가 나선데 관심을 기울였던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씨의 과거 이력을 보면, 이 시장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최재범씨는 서울시 행정2부장 출신으로 전통적인 관료출신이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호흡을 맞춰 부시장직을 수행한 사람이 최씨다.

제9회 기능고시에 합격, 줄곧 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서울시 행정부시장 출신이 부산시장 경선후보로 나서자 당내 관계자들은 나름대로 해석을 내놓았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PK 잠식전략’의 일환으로 최씨를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나가도록 했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시각.하지만 이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최씨는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부산지역 한나라당 의원들간의 미묘한 계파간 갈등 때문이란 게 중론이다. 부산지역은 ‘김무성파’와 ‘권철현파’의 양대 산맥으로 나뉜다는 게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나라당 부산시장 경선 당시, ‘김무성파’에선 최재범씨를, ‘권철현파’에선 부산시장에 당선된 허남식씨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최씨가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서 낙선해 이명박 시장의 ‘PK 잠식전략’에 차질이 생겼지만, 경선 이후에도 나름대로 PK 공략 포인트를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낙선한 최재범씨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분석한다. 이번 부산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시장의 우군으로 분류될 의원이 부상한 점은 나름대로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가 바로 김무성 의원이다. 이 시장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최씨를 전폭 지원한데서 김 의원의 향후 역할을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여기다 김 의원은 현대그룹과 별난 인연을 갖고 있다. 김 의원의 고모가 바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어머니다. 현정은 회장과 김 의원은 고종사촌간이 되는 셈이다.

이명박 시장이 현대그룹을 통해 성장한 점을 감안하면, 김 의원과 ‘현대인연’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이런 인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김 의원이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계기로 이 시장과 상당한 교감을 가졌다는데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 한나라당 대권 후보 경쟁에서 김 의원의 역할론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이 시장이 ‘PK 잠식전략’에 나선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른바 삼각거점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한나라당 본거지라고 볼 수 있는 TK(대구·경북)가 바로 이 시장의 고향이다. 박근혜 대표가 TK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당내 본거지가 고향인 대권후보군임에는 분명하다. ‘삼각거점 전략’의 한축이 TK가 된다.

‘삼각거점 전략’의 또 다른 축은 PK다. 서울시 행정부시장 출신인 최재범씨가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것도 바로 PK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마지막 한 축은 서울과 수도권이다. 서울 종로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을 뿐 아니라, 현재도 서울시장을 맡고 있어 자연스럽게 ‘삼각거점 전략’의 한축인 서울 수도권에 이 시장의 정치적 뿌리가 자생하게 됐다는 분석도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여기다 이 시장은 이춘식씨를 부시장에 임명했다. 이 부시장은 한나라당 재정국장을 역임하는 등 당과도 긴밀하게 내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같이 이 시장은 대권을 향한 발걸음을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무엇보다 이 시장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 조직력이다.

삼각거점 전략의 일환이든, ‘PK 잠식 전략’의 일환이든, 이 시장은 자신의 정치적 조직을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표가 한나라당 지지층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어, 이 시장의 대권 행보는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 시장의 대권행보의 타깃이 박 대표에 맞춰졌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박근혜 대표의 인기가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이 시장의 대권행보에 ‘적신호’가 켜 질 수밖에 없다”며 “부산거점 확보를 위해 노력한 것도 박 대표에 대한 견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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