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남통’의 ‘文정부 길들이기’ 일환? “치밀히 계획됐다” 의혹 ‘일파만파’
정부‧여당 ‘北 대변인’ 자처하며 해명만 급급… 北 의도대로 흘러가나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가운데 정부‧여당은 ‘센 농담’일 뿐이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대남통’으로 꼽히는 리 위원장의 이력 및 직위를 고려하면, 북한 정부에 의해 ‘의도’된 발언일 공산이 크다. 즉 ‘대남 길들이기’의 일환이라는 해석이다. 리 위원장은 10월 말 ‘냉면 발언’이 우리 측에서 논란이 된 후에도 공식석상에서 ‘지속적’인 막말을 일삼았고, 현재까지도 북한 정권의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이 없는 것이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 대변’에만 급급한 정부‧여당의 안일한 조치는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리 위원장이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는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에게는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을 맡겨선 안 된다”고 막말한 것으로 알려지며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리 위원장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회담 장소에 2~3분 늦으며 “시계가 고장 났다”고 하자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며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에서는 이 위원장의 거침없는 성격과 말투에서 비롯된 ‘센 농담일 뿐’이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남북 화합의 장에서 ‘우스갯소리’로 이뤄진 농담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북측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 요청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정부는 북한 측에 리 위원장의 발언이 우리 측에서 문제화됐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지난 11월 8일 알려졌다.
‘박영수 서울 불바다’ 발언 땐
형식적이나마 ‘경질’ 조치
하지만 리 위원장의 직위를 고려할 때 이를 ‘개인적’이며 ‘우발적’인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크다. 통일전선부에서 잔뼈 굵은 인사가 경솔하게 이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리 위원장은 군 출신으로, 대남 공작 기구인 정찰총국을 거쳤다. 2016년 6월 조평통이 노동당 외곽 사회단체에서 국가기구로 승격되면서 군복을 벗고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특히 2006년부터 남북 장성급 회담 또는 군사실무회담의 북측 대표로 나서며, 우리 측 인사들과 만날 때 어깨에 힘을 주고 큰 목소리를 내곤 했다. 대남 관계 인력풀이 좁은 북한 내에서는 ‘남한통’으로 꼽히는 셈.
결국 남북 교류가 활발한 최근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곧 북한 정권의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한 정권에 의해 계획된 ‘대남 길들이기 전술’이라는 것. 만약 리 위원장의 발언으로 반북 감정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를 방증하는 처사라는 해석이다.
앞서 비슷한 사례로 1994년 3월 19일 박영수 조평통 부국장의 ‘서울 불바다’ 발언에 남측 반발이 크자 당시 김일성 주석은 형식적으로나마 박영수를 경질한 바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북한 체제 특성상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재가 없이 리 위원장의 그런 발언이 나오기는 어렵다”며 “한 차례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거친 발언을 쏟아낸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리 위원장의 발언이 일종의 ‘김정은 보여주기용’이라는 관측도 있다. 탈북 관계자에 따르면 리 위원장은 평소 상부에는 아첨하고, 아랫사람은 하대하는 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최고 권력자에 대한 ‘충성 맹세’ 의미로 막말을 자행한 것이라는 추론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월 3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우리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말이 아니라 상부에 보고되기를 기대하고 했다고 생각한다”고 추측했다. “북한은 앞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얘기하지만 사실은 뒤에 있는 최고 권력자에게 충성의 맹세로 강한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게 정 전 장관의 설명이다.
‘뻔한’ 대남 길들이기 전술
野 “두둔할 걸 두둔해야”
게다가 이 같은 리 위원장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북한 퍼주기식’ 대북 정책 논란 속에 나온 것이라 더욱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북한 측의 ‘막말’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닌 점에 비춰볼 때 ‘대남 길들이기 전술’이라는 게 뻔한 상황에서 ‘공식 사과 촉구’ 대신 ‘대변’에 급급한 정부‧여당의 모습이 ‘대북 저자세’라는 비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을 필두로 야권에서는 ‘방어막’을 펼치는 여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냉면 먹듯’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지탄이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두둔할 걸 두둔하고 낄 데 안 낄 데 가리기 바란다”며 “국민들은 대통령이 환대를 받았으면 재벌 총수들은 홀대를 당해도 좋다는 건지 되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당 원내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들의 감정과 심기를 더욱 불편하고 불쾌하게 하고 있다”며 “북한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겠으면 차라리 잠자코 있는 게 나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변호하느라고 국민들을 두 번 실망시키지는 말기 바란다”고 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까지 나왔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해당 논평을 통해 지난 11월 5일 그는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야 하며, 일련의 사태에 책임이 있는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경질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