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펀드… 천안방송 지분 시장가격 6%대로 헐값 매각 ‘주장’

본지는 지난 12월 14일 763호 경제 24쪽 지면을 통해 <태광일가 천안방송 지분편취 의혹>을 다룬바 있다. 취재는 한 제보자의 양심선언에서부터 출발했다. 제보자의 주장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2006년 9월 ‘태광그룹과 홈쇼핑 3사간’ 편법거래가 오갔다”는 내용이다. 기자는 곧 취재에 들어갔고 그 때 모은 자료와 증언은 곧 기사화됐다. 이후 잇따른 제보전화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제보 내용은 향후 확인절차를 통해 취재를 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호에선 태광 일가의 천안방송 지분 매각과 관련 헐값매각을 지적했던 장하성 교수를 통해 주식매매와 얽힌 이면을 추적해 본다.

2001년 8월, ‘태광그룹과 홈쇼핑 3사간’에 아주 이상한 거래가 오갔다.

당시 태광산업은 천안방송 지분 100%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당시 방송법은 이를 허용치 않았다. 대기업의 종합유선방송(SO) 소유에 제재를 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태광산업은 ‘눈물을 머금고’ 천안방송 지분 67%를 홈쇼핑 3곳에 골고루 내다 팔았다. 이 때 천안방송 지분을 산 곳은 GS홈쇼핑을 비롯 CJ홈쇼핑과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이다.

그로부터 약 4년 후 방송법 규제가 완화됐다. 그러자 태광그룹은 기다렸다는 듯 계열사 전주방송을 내세워 홈쇼핑 3사에 매각한 천안방송 지분 전량을 되사왔다. 그것도 4년 전과 동일한 주당 2만원(총 66억원)에 말이다.


홈쇼핑 관계자 양심선언

천안방송 매각을 둘러싼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태광그룹과 홈쇼핑 3사 간 편법적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다. 2001년 태광산업이 천안방송 지분을 팔 당시와 2005년 11월 홈쇼핑 3사로부터 지분을 다시 사올 때까지 케이블TV 시장은 급성장했다.

실제 2004~2005년 사이 인수합병(M&A) 된 SO의 평균 가입자당 가치는 6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 기준에 따르면 천안방송의 가치는 적어도 1710억원에 달한다. 그런 천안방송을 어떻게 4년 전과 같은 가격(66억원)에 사올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두 번째는 홈쇼핑 3사로부터 지분을 산 주체가 태광산업이 아닌 계열사 전주방송이라는 점이다. 전주방송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과 그의 아들 현준(14)군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회사다. 사실상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천안방송의 지배권이 4년여만에 한 차례 손바꿈 과정을 거쳐 태광산업에서 이 회장의 개인 회사로 넘어간 것이다.

이에 당시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홈쇼핑 3사가 동일한 시점과 동일한 가격에 태광산업과 거래한 점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고, 시장 추정가격의 6%에 불과한 헐값에 매도한 점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태광을 맹공했다.

이어 장 교수는 “SO사업자가 홈쇼핑의 채널권을 결정하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을 고려해도 이는 태광산업과 태광산업의 대표이사이자 전주방송 소유주인 이 회장, 홈쇼핑사들간에 밝혀지지 않은 편법적 관계가 존재했음을 의심케 한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장하성 교수 입 다문 이유

하지만 이 이상했던 거래는 며칠 후 그대로 묻혔고, 단연 대중의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혀져갔다.

이런 와중에 3년이 지난 지금 장하성 고려대학교 교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장하성 교수는 당시 태광그룹과 홈쇼핑 3사간 편법거래를 심도 있게 추궁한 바 있다.

장하성 교수는 지난 12월 1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태광그룹과 홈쇼핑 3사간 대출사건과 관련) 당시 일련의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의심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건의(확인)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어쨌든 난 당시 투자사 고문 입장이었다. 입장에 따라 해야할 일이 따로 있었다.”고 지난 일을 회상했다.

‘고문 입장이 아닌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그 때 일에 대해 할 얘기가 있느냐’는 물음에 장 교수는 “그것(태광과 홈쇼핑 3사간 거래)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도 많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지난 12월 2일 당시 태광산업과 홈쇼핑 3사간 거래에 참여했던 핵심 관계자 A씨를 어렵게 접촉할 수 있었다. A씨의 진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1년 천안방송 지분을 매각할 당시 태광산업과 홈쇼핑 3사간 약정을 한 게 있었다. 바이백옵션으로 나중에 동일가로 지분을 도로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지분 파킹을 한 것이다. 홈쇼핑사들이 천안방송을 매입한 자금도 흥국생명에서 태광이 대출받은 것이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태광 그룹 계열사다.) 4년 3개월간의 대출 이자도 태광에서 지불했다. 홈쇼핑사는 금전적 부담이 없었다. 또 홈쇼핑 3사는 태광으로부터 홈쇼핑송출수수료(10억원 이상)를 깍아주는 대가를 받았다. 일종의 프리미엄인 셈이다.”

A씨의 증언을 정리하면 정부 규제로 인해 SO 계열사를 팔게 된 태광산업은 ‘을’의 위치에 있는 홈쇼핑 3사에 지분을 파킹하고, 이후 태광산업이 아닌 오너일가에게 천안방송을 넘겼다. 하지만 이는 태광산업이나 홈쇼핑 3사 주주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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