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금은 경제위기가 아니라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고 한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동연은 현 정권과 합이 맞는 공직자는 아니었다. 김동연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전형적인 기재부 출신 공무원이고 성장주의, 균형재정과 같은 도그마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이었다.

현 정부도 그걸 모르고 기용한 건 아니다. 경제 저변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시대적 과제와 정권의 의도를 꿰뚫어 경제를 운용할 사람을 골랐어야 했다. 현 정권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이 한 말은 애매한 ‘퇴임의 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치하기엔 그의 진퇴자체가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부풀려졌다. 정치권에서는 해석이 제각각이다. 야당은 대통령과 현 정부의 리더십에 대한 작심 비판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당은 김동연이 던진 뾰족한 말의 칼날을 국회로 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5선 중진인 이종걸 의원이 나서서 “경제 분야 개혁법안들이 국회로 왔는데 국회에서 결정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면서 자진해서 김동연이 던진 말의 칼끝 앞에 섰다.

각자 처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국정과제에 딸린 입법과제들이 국회에서 막히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수처 신설, 소득주도 성장, 규제개혁과 같은 과제들은 행정부 독단으로 할 수가 없다. 지난한 여야 협상을 거쳐 법을 개정하고 나서야 개정된 법에 근거해서 실행이 가능해진다.

현 정권은 국회에서 1당의 위치에 있지만 과반의석에 미달하기 때문에 무엇 하나 원하는 대로 처리하기 힘들다. 김동연도 누구보다 이런 국회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기에 이종걸의 말도 일리가 있다.

국회는 원래 그런 곳이다. 느리다.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를 비롯한 사법개혁 문제가 이슈가 되고 정부가 수사권 조정안을 내놓은 때가 지난 6월이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국회에서 막혔기 때문이다. 국회에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올 1월에 설치된 상태였지만 변변하게 회의 한 번 갖지 못했다.

수사권 조정안이 나온 후 9월 정기국회 전까지 여야 간에 설전만 벌이다가 결국 위원장만 정성호 의원에서 박영선 의원으로 바꿔서 11월에야 본격적으로 사법개혁 문제를 다룰 준비를 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대통령이 비준을 요청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도 국회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판문점 선언이 있은 때가 4월 27일이고, 정부비준 동의 요청안이 국회로 넘어 온 때가 9월인데 국회에서는 비준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외통위에 상정은 되었기에 11월 중으로 상임위에서 다뤄지기야 하겠지만 올해 안에 비준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야당의 반대가 주된   이유이지만 절차도 만만치 않게 장애물로 작용한다.

국회에서 사안이 다뤄지는 과정은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른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 예산안 등의 안건은 일단 해당 상임위에 상정해서 상임위 소위원회에서 논의한다.

소위원회에서 의결되면 상임위 전체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서 가결해야 법적인 강제력을 갖는다. 이 과정이 한, 두 달이 걸리기도 하고 일, 2년이 걸리기도 한다. 국회는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느리다. 의회민주주의 자체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론 답답하고 욕이 나오지만 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각계각층의 의견이 나오고 충돌하면서 합의해 가는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법 규정 하나를 바꾸기 위해 총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맘에 안 드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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