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8명의 초선 의원을 당선시켰다. 초선 의원들은 그해 5월 말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중국식 코스요리를 먹으며 의기양양하게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불렀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열풍을 등에 업고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 ‘탄돌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청을 높이는 젊은 초선 앞에 당 지도부는 망연자실할 때가 많았다. 당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노선 싸움을 벌였고 ‘싸가지 없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오죽하면 조기숙 교수는 ‘108번뇌’라고 불렀다.

결국 탄돌이는 검증되지 않은 세력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교훈을 남겼다. 지난 6.13 지방선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회를 사실상 민주당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을 감시할 광역의회 및 기초의회 역시 민주당이 싹쓸이하다시피 해 자칫 ‘짬짜미’나 ‘독선’적으로 흐를 수 있어 지방 정부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위험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11월 초중순부터 14일간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및 기초단체장에 대한 행정감사가 한창인 가운데 이런 우려가 현화하는 분위기다. 서울시의 경우 감시할 서울시의원 110명 중 102명이 민주당 출신 시의원이고 그중 77명이 초선의원이다.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도의원 142명 중 민주당 135명이고 그중 초선 의원이 109명이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시의회 역시 47명 의원 중 초선이 41명으로 90%에 육박한다. 경남도 의회는 58명의 의원 가운데 83%인 48명이 초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선 의원들이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자당 소속 단체장을 공격해 단체장뿐만 아니라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초선 의원들로서는 잘못된 시정·도정에 대해 지적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 서울시 관계자는 “가족적이기보다는 가축적인 분위기”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다.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지방정부나 이를 견제할 지방의회를 여당이 장악해 서로 ‘눈감아 주기식 감사’로 비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 자칫 단체장과 시도의원이 유착돼 토착 비리가 발생할 경우 문 대통령을 등에 업고 당선된 이상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줄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방정부를 민주당이 독식한 게 오히려 부메랑이 돼 ‘양날의 검’처럼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108번뇌’라고 불렸던 초선의원들로 인해 홍역을 치렀던 경험이 친노 인사들 사이에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았다. 열린우리당은 초선 의원들의 오만과 독선이 겹쳐져 창당 3년 9개월 만에 문을 닫았고 정권은 보수 정당으로 넘어갔다.

이를 잘 인식하는 청와대 한 인사가 지방선거 이후 처음으로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에 당선된 ‘문돌이’...”라고 언급해 문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시 발언은 문재인 정부 2기 국정 운영 위험 요인과 대응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왔다.

탄돌이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로선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바람’을 타고 당선된 ‘문돌이’들이 실력보다 의욕이 앞서 당내 분란을 일으킬 경우 닥칠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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