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공주들의 소리 없는 호텔 전쟁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 ·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

지난해 재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제는 바로 재벌가의 여풍(女風)이었다. 재벌가의 딸들이 재계 곳곳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호텔부문이다. 재벌총수의 후광때문이었을까. 이들은 초고속 승진이라는 준비된 계단을 밟고 호텔부문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호텔 경영 성적표를 들여다봤다.

‘재계 우먼파워’로 대변되는 사람들은 적잖게 꼽을 수 있다. 신세계 이명희 명예회장부터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 등이다. 하지만 최근 ‘재벌가 우먼’은 세대교체를 이루는 듯하다. 재벌 3세 여성들이 경영일선에 대거 진출해 이름을 날리고 있다.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업종은 바로 호텔경영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를 필두로 신격호 회장의 손녀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 이명희 신세계 명예회장의 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 등이 호텔경영에 뛰어들었다.


호텔경영 이탈한 장선윤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둘째딸인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는 지난해부터 대대적으로 기대를 모아왔지만 경영능력 차원에서 마땅한 소득을 얻지 못했다. 구체적 성과도 보기 전에 호텔사업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그녀는 해외명품의 전문가로 지난해 7월부터 롯데쇼핑에서 호텔사업부 마케팅부문장으로 옮겼지만 새 직장에서 1년도 채우지 못했다.

롯데그룹 측은 “장 상무가 장 상무가 개인적인 문제로 쉬고 싶다고 해 지난 5월 호텔롯데 마케팅부문장에서 비상근 자문직으로 보직 변경 발령됐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장 상무가 중도 하차한 것에 대해 업계에선 의외라는 반응이다. 지난해 10월 재혼 이후 결혼 생활 등 개인 사정으로 잠시 쉬는 것 아니냐는 해석부터 롯데그룹 승계구도와 무관치 않다는 말 등 추측만 무성한 상황이다.


이부진 신라면세점에 고전

장 상무와 다르게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는 호텔경영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상무는 2001년 8월, 기획부장으로 호텔신라에 들어가, 현재 호텔부문 외에도 면세점, 외식사업 등 회사의 중장기 경영전략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무의 경영능력은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이 상무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 공항 면세점의 수익이 기대치를 크게 밑돌면서 호텔신라 재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면세점의 임대료가 신라호텔 전체 매출의 37%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한 것이 알려지면서 내년도 손익분기를 맞추기도 힘들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일까. 이 상무는 난국의 돌파구를 외식업에서 찾는 듯하다.

신라호텔은 지난 10일 '최고급 카페 브랜드'를 표방하는 ‘아티제’를 압구정동에 개장한다고 밝혔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총 3층 규모로 카페치고는 규모가 크다.

호텔신라는 최근 면세점 임대비와 재고비용 등이 급증한 가운데 빚을 갚기 위한 용도로 1000억원 사채까지 발행한 상황이다. 외식업이 ‘불황’과 밀접한 것을 감안했을 때, 현시점의 이 같은 사업 확대가 수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디자인 승부하는 정유경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는 이 상무와 사촌지간이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뒤 1996년 입사했다. 정 상무는 호텔을 경영하면서 자신의 전공을 살렸다. 객실 리노베이션과 인테리어 작업을 주도한 것이다. 호텔에서 사들이는 미술작품과 캘린더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호텔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신세계 명품사업에서 역량을 뽑냈고 4월 새 단장 오픈한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와 음식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상무는 또 조선호텔에 국내 처음으로 비주얼 디자이너를 두는 등 젊고 세련된 이미지로 바꿨다는 평이다.

정 상무의 입사 이후 조선호텔은 사업다각화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2005년 초 베이커리사업부는 조선호텔베이커리로 분사, 이마트 등에 '데이앤데이' 매장을 여는 등 매장 수를 117개로 늘렸다. 하지만 매출 면에서 조선호텔이 호텔신라에 뒤처지고 있는 것이 사실. 지난해 조선호텔은 1110억원의 매출을 올려 1576억원의 매출을 올린 신라호텔에 뒤쳐졌다.

앞으로도 호텔업은 재벌가 딸들의 뜨거운 각축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황을 맞아 호텔업의 성장률이 감소세로 돌아서 이를 돌파하기 경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누가 잘하고 못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앞으로 흥미진진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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