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책임론’ 재점화… ‘친박계+잔류파 vs 복당파’ ‘진검승부’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자유한국당에 또다시 계파 갈등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친박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백서를 발간하자고 제안하면서부터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2년이 다 돼가는 시점이다. 굳이 이 문제를 지금 다시 거론하는 데는 정략적인 목적이 담겨 있을 게 자명하다. 다음 달 중순 원내대표 경선과 내년 2∼3월 전당대회를 노리고 친박계가 탄핵 재평가 주장을 꺼내 들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친박계가 탄핵 책임론을 제기함으로써 탄핵과 분당 과정에서 생겼던 복당파와 나머지 의원들 사이 해묵은 감정의 골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 결국 ‘친박-비박’의 구도로 당권 탈환이 힘들다는 판단 하에 ‘탄핵 반대파-탄핵 찬성파’ 구도로 라도 당권을 가져오겠다는 계산으로 비친다.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자유한국당의 내홍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


- 계파 전쟁 준비하는 親朴, 황교안 등판 물밑작업 관측
- 비대위-조강특위 ‘불협화음’… ‘반격 빌미’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찬성표를 던지고 탈당했다 돌아온 복당파 의원들이 장악했던 자유한국당 내부 무게추가 탄핵을 반대하고 당을 지켰던 ‘잔류파’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탄핵을 반대하고 당에 잔류했던 중진 의원들이 ‘포문’을 열고 나서면 서다.

“朴 탄핵, 고해성사 있어야...
이정표 없이 미래 얘기 안 돼”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지난달 31일 “탄핵에 대한 고해성사가 있어야 한다”며 포문을 연대 이어 이달 1일에도 “탄핵 백서를 통해 재평가하자”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이날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저희가 대통합을 논의하고 우익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당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던 탄핵에 관해서 그게 없었던 것처럼, 아니면 그걸 몰랐던 것처럼,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확하게 왜 탄핵이 이루어졌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확실한 이정표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 다음 미래를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여러 번 백서를 만들라고 얘기했는데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2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 탄핵 문제를 다시 거론해 봐야 당 지지율 확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당내 우려가 있음에도 친박계가 굳이 이 문제를 다시 테이블에 올리는 데는 분명 정략적인 목적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정치권은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 가운데 최소한 절반 이상이 교체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친박계가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당협위원장 교체 1순위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친박계의 행보가 단순 주도권 다툼이 아닌 차기 보수 주자 선정을 위한 신경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 안팎에서는 다음 달 중순 원내대표 경선과 내년 2∼3월 전당대회를 노리고 친박계가 탄핵 재평가 주장을 꺼내 들었다고 보고 있다.

차기 지도부는 2020년 21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현재 바른정당 복당파 위주의 당 지도부가 다시 당권을 쥘 경우 친박계는 공천 과정에서 학살될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친박계는 당내 비주류로 전락했다. 만약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가 ‘친박계-비박계-잔류파-복당파’ 구도로 치러질 경우 친박계가 살아남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범보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황교안 전 총리가 등판한다 해도 당내 주류 계파인 복당파에 맞서기는 힘들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親朴 “누가 누구를 심판하나”
非朴 “탄핵은 불가피한 선택”

이렇다 보니 친박계가 탄핵과 분당 과정에서 생겼던 ‘탄핵 찬성파-탄핵 반대파’ 사이 내재돼 있는 ‘감정의 골’을 건드려 기존의 자신들의 세력에 더해 탄핵 반대파 전체와 복당파 구도로 당권 경쟁에 임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황교안 전 총리 등판에 앞선 물밑 작업 성격이라는 것.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위기감을 느낀 친박계가 ‘탄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층 일각의 여론을 부채질해 반격을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한 재선 의원 역시 “지금 당 지도부는 대부분 탄핵 때 당을 버리고 나갔던 사람들”이라며 “비대위에서 인적 쇄신론이 나올 때마다 누가 누구를 심판하겠다는 것인지 기가 찬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은 비상대책위원회와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불협화음’이 친박계에 이 같은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본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역사를 보면 혁명에 실패할 경우 반(反) 혁명 세력이 더 강하게 몰아치기 마련”이라며 “비대위와 전원책 전 조강특위 위원의 스텝이 꼬이는 모양새를 보이다 보니 그간 침묵했던 사람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친노계 역시 한때 폐족으로 불리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라며 “친박계 역시 친노계와 마찬가지로 부활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정당했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친박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친박계의 ‘반격’에도 당장은 당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비박계 수장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7일 당 내부에서 제기된 이른바 ‘박근혜 끝장토론’ 제안에 대해 “지금 와서 탄핵이 그르냐 옳으냐 말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고 작심하고 비판했다.

그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 ‘이·통장 지위와 처우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시 탄핵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며 “지금 와서 탄핵 때문에 모든 일이 이렇게 됐다고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면 옳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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