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서 한인 하원의원 배출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한 한인 2명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20년 만에 한인이 그것도 2명이 함께 하원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영 김 후보는 개표가 거의 100% 끝난 상황에서 민주당 후보를 2.6%포인트 차이로 앞서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또 한 사람, 뉴저지주에서 도전장을 던진 앤디 김 후보도 당선이 유력하다. 앤디 김 후보는 공화당 현역 의원에게 뒤지다가 개표 막바지 역전에 성공했다. 동부와 서부,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서 한인 하원의원이 배출될 것이란 낭보에 한인사회는 들썩이고 있다.

 

200만에 달하는 미국 내 한인 사회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지난 6일(현지 시각)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개표 결과 한국계인 영 김(56) 공화당 후보, 앤디 김(36) 민주당 후보가 각각 승리를 거둬 한인 이민 역사상 최초로 두 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동시에 탄생하게 됐다.

지난 7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39선거구에 출마한 영 김 후보는 전체 득표수의 51.3%인 7만6956표를 차지하며 7만3077표(48.7%)를 얻은 길 시스네로스 민주당 후보를 따돌려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앤디 김 후보 역시 연방 하원 선거 뉴저지주 3선거구에서 이날 오후 10시 현재 개표가 99% 완료된 가운데 전체 득표수의 49.8%인 14만8580표를 득표해 14만5958표(48.9%)를 얻은 현역 톰 맥아더 공화당 의원을 약 2600표 차로 앞섰다. 개표가 종료되지 않았지만 남은 곳이 앤디 김 후보 우세지역이어서 당선이 확실시된다. 앤디 김 후보는 개표 초기 맥아더 의원에 35%포인트 이상 뒤지며 낙선 가능성이 컸지만 개표 95%가 넘어서면서 극적 역전에 성공했다.

영 김 후보와 앤디 김 후보의 당선으로 김창준 전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이후 20년 만에 한국계 후보가 하원에 동반 진출하는 기록이 세워졌다.

영 김, 한인 여성 최초의 연방하원의원

영 김 후보는 한인 여성 최초로 연방하원의원에 올랐다.

수백여 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개표 상황을 지켜본 영 김 후보는 접전을 펼치긴 했지만 초반부터 한 번도 뒤집히지 않고 상대 후보를 리드하다가 당선을 확정지었다.

예비선거 이후 다섯 달의 접전 끝에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된 영 김 후보는 지지자, 한인 교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영 김 후보는 “열렬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인 사회에 깊이 감사한다”고 밝히고 “한인들의 정치력을 신장시키는 것은 물론 한미 관계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영 김 후보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3세 때인 1975년 가족과 함께 미국령 괌으로 건너가 중고교를 다녔다.

성인이 되면서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 입학해 미국으로 이주, 졸업 후 금융기관에서 재무분석가로 일했다.

이후 스포츠 의류업체에서 경험을 쌓고, 숙녀복 브랜드로 발을 넓혀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당시 매장에 직접 쇼룸을 만들고 어깨 너머로 디자인도 배웠다고 한다.

네 아이를 키우며 주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영 김 후보는 남편 찰스를 통해 정계에 첫 발을 디뎠다.

오렌지카운티 비영리기구에서 일한 남편은 한미위원회를 만들고 친한파 에드 로이스 의원과 자주 식사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로이스 의원이 남편을 통해 영 김 후보에게 보좌관 자리를 제안했다. 남편이 적극 천거했고 사업가 출신의 주부였던 영 김 후보는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주 상원의원이던 로이스가 연방 하원의원이 된 이후 영 김 후보는 21년이나 그를 보좌했다.

워싱턴DC에서는 한미의원연맹 일을 도우면서 한국 정계에도 인맥을 넓혔다.

라디오서울 등에서 방송일도 하면서 캘리포니아 한인사회에도 얼굴을 알렸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정치에 도전한 건 2014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 현역 샤론 쿼크 실바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주 의회에 진출한다.

코리언 아메리칸 여성으로 공화당 출신의 주 의원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이었다. 그러나 2년 뒤 리턴매치에서는 실바에게 석패했다.

영 김 후보는 이후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집행관) 선거를 준비했다. 2017년만 해도 모든 게 카운티 슈퍼바이저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로이스가 전격 은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바통을 이어받아 연방 하원으로 진로를 바꿨다. 지난 6월 정글 프라이머리로 불리는 예비선거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해 본선에 올랐다.

영 김 후보의 정책은 기본적으로는 공화당 주류와 궤를 같이한다. 감세 정책과 오바마케어 폐지, 성소수자(LGBT) 관련 법안에 대한 입장이 그렇다.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복잡하다. 스스로 자랑스러운 이민자임을 자처하는 그는 불법체류 이민 청년들을 구제하는 다카(DACA)에는 찬성한다.

트럼프식 무관용 정책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또 캘리포니아의 피난처 도시법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에서 소수 인종 출신 정치인은 흔히 ‘두 선거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지역구는 물론 교민 사회까지 챙겨야 한다. 때론 모국(母國) 정부의 대미(對美) 통로 역할도 한다. 영 김 후보도 로이스의 보좌관 시절 미 한인 사회의 중앙 정계 창구가 되기도 했고, 위안부 결의안 채택과 독도 문제에도 관여했다. 영 김 후보는 북한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남편 찰스 김은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아는 이민 1.5세대의 숙명 아니겠느냐”고 했다.

영 김 후보의 당선은 미국 사회에서 ‘더블 마이너리티(소수 인종, 여성)’를 극복했다는 의미도 있다.

앤디 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지 선언

뉴저지 3선거구에서 3선에 도전하는 현역 톰 맥아더 후보(공화)와 맞붙은 앤디 김 후보는 ‘한인 최초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앤디 김 후보는 선거 초반엔 한인 이민자 가정 출신의 중동 전문가라는 경력 때문에 ‘워싱턴 엘리트’, ‘아웃사이더(이방인)’라는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렸으나 9월 말 이후 ‘반(反)트럼프 정서’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부각되며 전세를 뒤집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지를 선언하고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함께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당선 확률이 앞섰지만 ‘트럼프 바람’을 앞세운 ‘트럼프 지지파’ 현역 의원 맥아더 후보의 반격이 만만치 않아 박빙의 승부였다. 정치 신인인 앤디 김 후보는 지역구를 발로 뛰며 토종 뉴저지 출신의 ‘저지 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와 헬스케어 대책을 물고 늘어졌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 이민’ 정책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자녀 2명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나는 가족과 이웃, 나를 키워준 커뮤니티, 나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선사한 뉴저지주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출마의 변을 밝히기도 했다.

앤디 김 후보는 스스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뤘다고 자부하는 이민 2세대로서 자신과 같은 이민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도 줄곧 이민 1세대인 부모님에 이어 자신 역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며 자신의 가족사를 소개해 왔다.

앤디 김 후보의 아버지 김정한(69)씨는 소아마비를 앓는 고아 출신이면서도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거쳐 유전공학박사로 자리를 잡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가난한 시골에서 성장한 어머니 역시 간호사로서 뉴저지주에서 수천 명의 환자를 돌본 것으로 전해졌다.

앤디 김 후보는 부모님의 헌신적 노력으로 뉴저지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시카고대를 졸업했다.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동 전문가로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몸담았다.

2009년 9월 이라크 전문가로서 국무부에 첫발을 디딘 뒤 2011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의 전략 참모를 지냈다.

2013년부터 2015년 2월까지는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각각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특히 2013년에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 국가’(IS) 전문가로서 오바마 행정부의 IS에 대한 폭격과 인도주의 지원을 담당하는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앤디 김 후보는 남북문제에도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연방하원에는 중국계, 일본계 등 아시아계 의원들은 있지만 한인 의원은 오래도록 없어 한인 사회의 정치력 신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영 김 후보와 앤디 김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한인 사회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편 영 김 후보와 함께 첫 한인 여성 의원을 꿈꿨던 검사 출신의 한인 2세 정치인 펄 김 후보는 펜실베이니아 5선거구에 출마했으나 35% 득표에 그쳐, 65% 득표를 얻은 민주당 메리 게이스캔런 후보에게 분루를 삼켰다.

그런가 하면 버지니아 연방 하원 8지구에서는 올해 26살의 약관 청년 토마스 오 후보가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해 지역 한인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대로 민주당 돈 바이어 현역 의원에게 76% 대 23%로 참패해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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