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리선권 위원장의 ‘냉면 목구멍’ 막말과 반말지거리는 리의 개인적인 나쁜 버르장머리로 그치지 않는다. 북한이 남한에 점령군처럼 군림한다는 것을 반영하며 남한이 북한 밑에 깔려있음을 엿보게 한다. 그러한 뒤집힌 작태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대변인’ ‘김정은의 메신저’ ‘북한의 외무장관’이란 국내외 논평을 통해서도 시사된다. 북한이 점령군처럼 행세하는 한 남한은 북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시작된 남북 대화는 북의 의도대로 끌려 다니면서 어느새 비핵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대신 북의 요구대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관 재개. 5.24 대북제재 해제, 인도적 대북지원 재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 촉구 등 대북 퍼주기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집권 시절 북한에 퍼주고 비위 맞춰주며 끌려다니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리선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남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옥류관’ 냉면 식사 중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갑네까”로 면박을 주었다. 대기업 총수들이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지 않은데 대한 불만 토로였다. 뿐만 아니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0월 ‘10.4 선언’ 11주년 행사 날 행사 장소에 2-3분 늦게 나타나자 리선권은 “단장부터 앞장서야지 말이야”라며 반말로 훈계했다. 한편 조 장관은 회담 도중 리에게 “말씀 주신 대로 역지사지하면서 문제 풀어간다면...평양 공동선언을 철저하게 이행해 나갈 수 있다.”며 리를 상관 모시듯 했다. 남이 북에 깔려 있음을 실증한 굴종적 대화 장면이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전의 남북관계는 대등했었다. 내가 남북적십자 본회담 대표로 1985년 5월, 8월, 12월 서울·평양 회담에 나섰을 땐 도리어 북측은 공손했다. 북한측 수행원은 나에게 “남조선 잘사는 것 압네다.”라며 남한 경제 발전에 주눅든 듯 고분고분했다. 그 때도 북한은 우리 대표들을 대동강변의 ‘옥류관’ 냉면으로 안내했다. 냉면 맛은 서울의 평양냉면이나 그게 그거 같았다. 다만 냉면 그릇이 놋쇠였고 가늘게 썬 게란 부침과 붉은 실고추가 얹혀 있어 맛깔나 보였다. 그러나 냉면 먹을 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라고 소리친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없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4억5000만 달러와 5000만달러어치의 물품을 불법으로 바치고 정상회담을 구걸하면서부터 북측의 태도는 공손에서 점령군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2000년 12월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의 단장으로 서울에 온 장재언 북한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당시 장충식 한적총재의 월간조선 인터뷰 기사를 트집잡으며 “장충식 한적총재는 죄에 죽고 올바르게 재생해야 한다”며 죄인에게 호통치듯 했다.

장재언과 리선권의 안하무인 격 폭언은 남한이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어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실상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김정일에게 퍼주고 비위 맞춰주며 2차 정상회담을 구걸하는 등 절절매는 형국이었다. 장재언은 김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굽실대자 기고만장해져 점령군처럼 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8년 후 리선권도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대변인’ ‘외무장관’ ‘메신저’로 하대(下待) 받자 오만방자해진 것이다.

북한이 점령군처럼 남북관계를 지배하는 한 비핵화 담판은 한 치도 진전될 수 없고 북측에 의한 ‘목구멍’ 수모 또한 피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실패한 국가 독재자 김정은의 ‘대변인’으로 간주된다는 건 국가적 수치이다. 문 대통령은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공한 국가 지도자답게 김정은 측의 못된 버릇을 바로잡으며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 여기에 북핵 폐기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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