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의 눈물로 만들어진 포스코, 일제시대 피해자는 ‘모르쇠’

사진제공:슈슈

포스코가 일제 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해 재단 기금을 출연해야 한다는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이 나와 시선을 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보상청구 소송에서 포스코가 대일청구자금으로 세워진 만큼 일정 보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이는 일제시대 피해 비용이 포스코의 설립자금이 됐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보다는 윤리적 책임을 묻는 판단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포스코가 이 조정을 받아드릴지는 미지수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포스코측은 보상은커녕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스코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위한 기금을 내야한다는 법원의 결정이 내려졌다. 김모씨 등 강제 징용 피해자와 유족 100명이 2006년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1인당 100만원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화해 권고를 이끌어 낸 것. 서울고등법원 민사5부(재판장 이성호)는 지난 1월 19일 포스코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 강제조정안에는 포스코가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한 공익 재단 기금을 출연하거나 그 자녀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출연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재판부는 “포스코에 대해 법적 책임보다는 기업으로서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검토했다”며 “강제조정 결정이 확정되면 강제 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선조 피값으로 설립된 포항제철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이례적이다. 포스코 설립자금에 대한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포스코의 전신 포항종합제철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제공된 대일 청구권 유·무상 자금 중 단위 사업 기준으로 가장 많은 1억1948만불을 사용해 설립된 기업이다. 재계 일각에서 포스코를 두고 ‘위안부의 눈물’로 지어졌다는 평가를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포스코 설립 당시 창업자 박태준 명예회장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선조들의 피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우리는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국민기업 포스코는 정작 ‘피값’ 보상 문제는 철저히 외면해 왔다. 오히려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과 기술제휴를 맺으면서 피해자들에게 심적 고통을 줬다는 지적이다. 신일본제철은 징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고 가 끝내 목숨까지 앗아갔지만 현재까지 보상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김인성 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포스코는 지난해 4월경 일본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다”면서 “일본의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자선 콘서트까지 열면서 조상들의 피의 대가로 설립된 기업에선 피해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오죽하면 재판장이 포스코 측 변호인에게 ‘포스코의 대외협력부서는에서 피해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도록 하라’고 했는데도 포스코 측은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지난 1월 7일 공판에서 피해자들은 소송이 이사회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결국 피해자들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수년째 법정공방을 벌여도 이사회에 보고조차 되지 않으니 박 명예회장에게 직접 피해상황을 전달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지난 7일 박 명예회장의 집무실을 찾아간 피해자들은 결국 헛걸음을 하고 말았다. 철통경비가 피해자들의 접근을 막았을 뿐더러 박 명예회장도 사무실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90세 되는 중노인이 밤 10시가 되도록 문 밖에 나 앉아 있기 까지 했다. 철강왕으로 통하는 박 명예회장도 피해자 구제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포스코

현재 피해자 측은 재판부의 강제조정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수차례 포스코의 보상을 촉구한 끝에 얻어낸 결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선 2007년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청구권 자금을 지급받는 것을 포스코가 방해한 ‘법적 근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강제조정 결정은 1월 말까지 원·피고측의 이의 제기가 없으면 확정된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환영이 얼마나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포스코측이 “이의제기를 하는 방향으로 구체적 방안을 모색 중이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강제조정은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이라며 “일제시대 피해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냐. 포스코가 모든 이들에게 보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피해자들의 ‘국민기업’ 책임 주장에 대해 “기업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당시 정부로부터 받은 대일청구자금은 모두 상환이 끝났다”고 일축했다.

포스코는 이달 중 이의신청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피해자 측은 “포스코 측에서 신임 회장과 대화를 모색하기로 했던 만큼 강제조정을 거부하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향후 논란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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