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나서는 재벌 총수들 들여다보기

정몽구 현대 ·기아 자동차그룹 회장 · 구본무 LG그룹 회장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 조양호 한진그룹 부회장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 최태원 SK그룹 회장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

글로벌 경기 불황에 재벌 총수들이 세계 각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경영 시대다. 경기가 불안한 상황에 내수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세계 각지로 시장을 확장시키겠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 배경에는 ‘겨뤄 볼 만 하다’는 자신감도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을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세계로 나서는 것일까. 글로벌 경영에 나선 재벌 총수들의 계획을 들여다봤다.

2009년 재계의 화두는 단연 ‘글로벌’이다. 세계를 무대로 살아남지 못하면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등을 떠미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올해 재벌 총수의 행보는 유독 바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해외 현장 경영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희망 본 정몽구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올해 최대 관심사는 바로 해외시장 성공여부다. 그는 지난 1월 2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글로벌 시장 판매 확대’를 강조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 총매출에서 해외 부문 비중은 지난해 70%에 달해 글로벌 성적표가 그룹의 존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 회장 글로벌 전략의 배경에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미국 자동차 ‘빅3’의 몰락이 있다. 지난해 전례 없는 경기 한파가 자동차 업계를 엄습하면서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이는 현대·기아차에 있어선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정 회장의 복안이다. 지난해 자동차 판매율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매년 4% 안팎을 오르내리던 글로벌 자동차 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6.2%를 기록하며 내려앉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산업수요 감소 속에서도 현대·기아차는 판매량이 각각 6.8%, 2.1% 늘었다.

특히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 시장 판매량이 14% 정도 줄었지만, 중국과 인도 시장 판매량이 각각 27.1%와 49.6% 급성장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기아차 역시 지난해 미국·중국·서유럽을 제외한 ‘기타 시장’에서 지난해 40만2000대를 팔았다. 전년에 비해 24.1%가 늘어난 성적이다.

정 회장이 공격적 글로벌 경영을 선언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정 회장은 2월 3일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유럽현지법인을 둘러보는 숨가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최태원 회장 글로벌 경영 독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글로벌 경영’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최 회장의 신성장동력은 글로벌 사업뿐이라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그룹 주력사인 SK에너지와 SK텔레콤은 더 이상 내수만 바라보며 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최 회장은 두 회사를 포함한 SK그룹이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활로를 찾고 있다.

이미 SK는 지난해 그룹 전체로 40조원에 육박하는 수출실적을 올려 내수기업이라는 편견을 깬 바 있다.

현재 최 회장은 중국 현지화와 중남미의 페루 등 해외 에너지 자원 사업에 심혈을 쏟고 있다. 업계는 그의 독특한 해외 현지화 전략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신흥시장국인 중국 진출전략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다.

최태원 회장은 차이나 인사이더를 ‘중국 내의 대표기업이나 글로벌 메이저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이라고 정의한다. 중국을 제2의 내수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SK그룹의 서린동 사옥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내 모니터에 중국어 회화가 나오는데, ‘차이나 인사이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SK그룹은 2000년 1월부터 베이징TV를 통해 ‘SK 좡위안방(壯元榜)’이란 퀴즈 프로그램을 매주 주말마다 내보내고 있다. SK가 1973년부터 30여년간 국내에서 장수를 누리고 있는 ‘장학퀴즈’를 중국에서 현지화 시킨 것. 중국의 인재양성기업이란 이미지를 심기 위해 10년 이상을 내다본 장기 투자전략이었다. SK 좡위안방에 나가 퀴즈를 푸는 학생들은 중국 학생들의 선망이 될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SK는 설명했다.


세계 재패 나선 구본무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2009년 최고 목표 중 하나는 글로벌 시장 제패다. 그의 이런 야망은 작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푸틴(Putin) 총리와 만나면서 한층 굳어졌다. 한국 기업으로 유일하게 초청받은 그의 목적은 푸틴 총리와 상호 친선을 다지고 러시아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것. 이미 주력 계열사인 LG상사는 극동의 에너지 보고인 사하공화국 종합개발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향후 구 회장은 글로벌 시장 매출과 점유율 확대를 위해 올해 신시장 창출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동·아프리카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이 지역에서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중동 산유국들의 오일 머니가 아직 상당한데다, 아프리카 지역도 미개척지가 많아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가 되기 위해 미래를 담보할 원천기술과 새 성장동력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과 김반석 LG화학 부회장도 이런 구 회장의 요구에 발맞춰 세계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남 부회장은 작년 9월 이후 인도와 중국·브라질 등 신흥성장 시장을 찾았고, 김 부회장은 중국·대만·러시아를 정조준하고 있다. 그는 이달 중순 미국 GM사에 리튬이온 폴리머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구 회장이 신년사에서 강조했듯 최근의 경제위기를 오히려 글로벌 톱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다.


중앙아시아 개척 나선 조양호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1월 29일 하얏트리젠시인천호텔에서 임원 세미나에서 중앙 아시아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조 회장은 “1998년과 1999년 큰 위기를 맞았지만 변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 오늘날의 대한항공으로 성장했듯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세계 최고 항공사로서 우뚝 서자”고 말했다. 또 “줄어드는 국내 시장을 대신해 중국과 동남아 등 해외 시장 개척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실제 조 회장은 현재 중국과 중앙아시아 개척에 총력을 쏟고 있다. 그는 지난달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나보이 국제공항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중앙아시아 물류 허브 구축이 그의 목표다. 조 회장은 천진에 화물터미널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에 준공될 예정인 톈진 화물 터미널이 13억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조 회장은 올해가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저가항공사 몰락처럼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은 최근 수년간 난립 양상을 보였던 물류업체들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올해 목표를 ‘안정적인 성장을 통한 글로벌 리딩 물류기업으로서 경쟁력 강화’로 삼고 기업 체질 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 위기 대응력 강화와 수익성 제고, 미래성장 동력 확충, 글로벌 경쟁력 제고 등을 중점적인 과제로 설정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해외 공략 나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은 올해 창사 30주년을 맞는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30년간 국내에서 쌓은 유통 노하우를 이젠 해외시장 공략에 활용할 계획이다. 신 회장 역시 사사 발간 기념사를 통해 “지난 30년간 롯데쇼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많은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지만, 이제 글로벌 무한경쟁이라는 새로운 출발선 위에 있다”며 “이제 롯데쇼핑은 국내를 넘어 보다 원대하게 펼쳐진 세계 시장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쇼핑은 지난 2006년 국내와 영국 런던 동시 상장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한 길을 열었다. 업계 최초로 2007년 9월엔 러시아 모스크바에 롯데백화점 해외점포 1호점을 오픈했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올림픽 기간에 2호점을 열었다.

롯데마트 역시 2007년 12월에 중국 마크로 8개점에 이어 지난해엔 인도네시아 마크로 19개점을 인수하며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베트남 호찌민 시에 베트남 1호점을 개설해, 현재 해외 3개국에서 28개점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앞으로도 브릭스(VRICs: 베트남 러시아 인도 중국) 위주로 해외진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백화점의 경우 이미 진출해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주요 도시가 대상이지만 인도와 베트남에도 주재원을 파견해 백화점 오픈을 위한 사전 조사와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유통업의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으로 판단하고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 톈진 선양 칭다오 광저우 항저우 청두 우한 등 주요 대도시를 후보군에 올려놓았다.

신 회장은 또 러시아 모스크바 추가 출점은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추가 백화점 출점 도시로 검토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하노이를 중심으로 출점을 검토 중이고, 지난해 현지 법인을 설립한 인도의 경우 뉴델리 뭄바이 방갈로르 등 인구 1000만명 이상 대도시를 중심으로 출점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진출 나선 정용진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지난해 중국 내 8개 신규 점포 개점 행사에 모조리 참석하는 등 중국시장 공략을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 정 부회장은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가 향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느냐를 판가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한다.

신세계에게 있어 2009년은 각별할 전망이다. 신세계그룹도 오는 3월 문을 여는 부산 센텀시티점과 영등포점 리뉴얼(8월 개점), 이마트 10개점 등 백화점과 이마트 다점포 사업에 총 1조원을 쏟아 붓기로 했다.

이마트의 경우 중국 다점포 사업의 수위를 한 단계 높인다는 전략이다. 지난 1월15일 중국 19호점인 무뚜점(쑤저우) 개점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화동지역 8개, 화북지역 3개 등 총 12개 점포를 신규 개설할 예정이다. 정 부회장은 나아가 2012년까지 중국에 이마트를 70개까지 만들 계획이다.

특히 신세계는 정부의 잡쉐어링(일자리나눔) 정책에 적극 협조한다는 방침 아래 유통인력을 공격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경기 침체로 다른 기업들이 잇달아 채용을 줄이는 것과 달리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공격적인 행보인 셈이다. 채용 규모는 무려 1만5000명. 경쟁사 롯데쇼핑 6500명이나 현대백화점 1000명에 두 배 이상 앞서는 인원이다.

재계 전문가들은 재벌 총수의 이와 같은 ‘글로벌 경영’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무엇보다 전세계에서 공인받은 ‘글로벌 스탠더드’도입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재계 전문가는 “국내에서 만족할 뿐이 아니라 넓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 위기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흔들리는 것은 국내 기업에겐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