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이래 20년 된 ‘가정폭력처벌법’, 가정 보호 아닌 피해자 안전과 인권에 초점 맞춰야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최소’ 64명. 지난해 남성 배우자에게 살해당한 피해 여성의 수다. 의처증을 이유로 아내에게 고문 수준의 폭력을 행사한 2000년 ‘인천 폭력남편 사건’부터 전처를 찾아가 살인을 저지른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 등 가정폭력으로 불거진 안타까운 사건사고는 해마다 끊이지 않는다. 가정폭력 사건이 세간에 알려질 때마다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방지책을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가시적인 진척은 미미한 상황이다.  

 

“가정폭력 사회적 범죄
‘부부싸움’ ‘가정불화’ 정도로 인식 말아야”

 

국회에서도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들려온다. 지난 12일 오전 9시 국회 정론관에서 20대 국회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일요서울은 기자회견에 함께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서면으로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백 의원에게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한 배경을 물었다. 백 의원은 2000년 당시 의처증이 심한 폭력 남편이 아내에게 ‘고문’ 수준의 폭력을 행사한 ‘인천 폭력남편 사건’과 지난 10월 발생한 25년 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이 결국 전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1998년 가정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20년이 흘렀지만 이처럼 끔찍한 사건은 되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 의원은 이에 대해 “국가의 형사사법시스템이 유독 가정폭력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신고된 가정폭력 사건의 기소율은 10%에도 못 미치고,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경우에도 45%는 보호처분조차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가정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선도 문제다. 백 의원은 “가정폭력은 사회적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부부싸움’ ‘가정불화’ 정도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라면서 “현재 가정폭력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집중돼 있고,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백 의원이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의 이력과도 관련 있다. 검사 출신인 백 의원은 미투 운동과 관련된 법안을 다수 발의했으며 현재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또한 국회에 ‘몇 안 되는’ 여성 의원이라는 점도 그에게 책임감을 갖게 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이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국회에서도 이러한 요구를 반영해 미투 법안, 데이트폭력 방지 법안 등 여성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하지만 발의안 대다수는 ‘계류’ 상태인 실정이다. 이처럼 여성 관련 법안 진행 속도가 더딘 이유에 대해 지적하자 백 의원은 “내가 발의했던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비동의 간음죄가 논란이 되는 것처럼 여성 관련 법안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동의가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노 민스 노 룰은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했음에도 성관계를 할 경우 이를 강간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법 제도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비동의 간음죄’로 해석된다. 미국 일부 주(州), 캐나다, 유럽 10개국 등에서 이를 기준으로 강간 여부를 판단한다.

백 의원은 “뿐만 아니라 국회에 여성 의원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여성 관련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원인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이 이뤄지면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을까. 이에 관해 백 의원은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 조항을 ‘가정 보호’에서 ‘피해자 안전과 인권’으로 개정함으로써 가정폭력에 대한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계속해서 “가정폭력 사건을 일선에서 담당하는 사법경찰관리는 응급조치, 긴급임시조치, 임시조치 등의 현장 조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또한 가해자를 반드시 격리하고 체포할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피해자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의원은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의 폐지와 가정보호사건으로의 처리 폐지 등 가정폭력이 ‘범죄’임을 분명히 하는 처벌 원칙이 확립될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을 더 이상 사적인 문제나 경미한 문제가 아닌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침해하는 사회적 범죄로 인식하길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