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리더십...이면에는 철저한 관리 야구
힐만, 포스트시즌 직전 재계약 거부 통보...납득하기 힘들다
김성근 전 SK 감독의 전례와 흡사해
2016년 염경엽 "SK가 아니라 그 어떤 팀도 갈 생각이 없다. 다른 팀엔 안 갈 것이다"

1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에서 승리, 우승을 차지한 SK 선수들이 힐만 감독을 행가래 하고 있다. [뉴시스]
1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에서 승리, 우승을 차지한 SK 선수들이 힐만 감독을 행가래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 신희철 기자] 「만약 오늘 SK 와이번스에게 우승소감을 묻는다면 단연코 8년 동안 기다려 주신 야구팬 여러분 고맙습니다! 일 것입니다.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 12일 SK 와이번스가 2018 한국시리즈 우승한 직후 나온 SK의 광고다. 그만큼 극적인 승리를 통한 우승이었고 모두가 손에 땀을 쥔 승부였다. 팬들과 하나 되어 SK 선수들은 기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묵묵히 트레이 힐만 전 SK 감독이 있었다.

 

그런데 우승 확정 다음날인 13일 SK는 전격적으로 신임감독 선임을 발표한다. 염경엽 감독과 3년 계약금 4억, 연봉 7억, 총 25억 원의 계약까지 확정지었다.

 

물론 포스트시즌 직전 힐만 감독이 부모님 부양 문제로 2018시즌 마감 직후 재계약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긴 했다. 그래도 이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우승 직후 일사천리로 신임감독과 계약하고 발표하는 것은 다소 어색하다. 게다가 SK는 오는 15일 문학구장에서 감독 이·취임식까지 한다고 했다. 우승의 기쁨이 최고조인데 힐만은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다. 축배의 잔을 쥐지도 못하고 떠밀려 이임식을 강제 당하는 느낌도 든다.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SK구단은 감독 교체를 이처럼 전광석화로 하는 것일까.

 

SK의 우승감사 광고처럼 팬들에게 함께 해서 고맙다는 마음을, 힐만 감독에게도 조금 나눴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외국인 감독 최초 한국시리즈 우승...최초 한·일 프로야구 우승

 

지난 12일 2018 KBO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SK는 두산에 5-4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시리즈 전적 4승 2패. 이로써 2010년 이후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왕좌에 올랐다.

 

이번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의 SK는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오히려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이기는 힘들 것이란 평도 많았다. 힐만 감독은 외국인 사령탑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동시에 역사상 최초의 한·일 프로야구 동시 우승 감독이 됐다.

 

당초 SK의 우승을 예상한 전문가·팬들은 드물었다. SK는 플레이오프에서 넥센을 상대로 5차전 연장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다.

 

게다가 두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2018시즌 최강 팀이다. 선발투수 린드블럼과 후랭코프라는 원투펀치가 확실했다. 게다가 토종선발 이용찬도 15승을 거뒀다. 그뿐만이 아니다. 팀 타격이 자그마치 0.309로 역대 KBO리그 역사상 1위다. 불펜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최고의 타격, 확실한 원투펀치, 그리고 김재환, 양의지 등 클러치 히터, 안정된 수비력 등을 감안하면 두산의 우승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는 이런 두산을 4승 2패로 꺾었다. 경기 내용적인 면에서도 안타 수만 밀렸지 결정적인 홈런과 장타, 그리고 불펜의 힘에서 시종일관 두산을 앞섰다.

 

◇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리더십...이면에는 철저한 관리 야구

 

물론 SK선수들의 꺾이지 않은 승부욕과 근성이 우승의 가장 큰 요인이지만, 그 뒤를 받치고 있는 힐만의 리더십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힐만의 가장 큰 장점은 소통과 믿음에 있다.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7시즌 부임 첫 해부터 선수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덕 아웃에서 선수들과 힐만의 대화 장면과 스킨십이 유독 많이 포착됐다. 선수들과 장난치는 장면까지 보였다.

 

특히 선수들의 사정을 많이 들어주는 아버지 같은 역할도 많았다. 박종훈은 자기 생각을 감독에게 털어 놓은 경우는 힐만 감독이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에서는 믿음과 관리의 야구를 구사했다. 힐만은 세세한 작전 지시, 경기 개입보다는 선수들과 팀 전체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로서의 감독이었다.

 

그가 뛰어난 매니지먼트였다는 것은 김광현 선수 관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김광현은 지난해인 2017년 수술을 받고 올 시즌 복귀했다. 그런 만큼 힐만은 김광현의 투구 수와 이닝 수를 철저히 관리했다.

 

김광현은 부상복귀 시즌인 올 시즌 25경기에 등판해 11승 8패, 방어율 2.98을 기록했다. 이닝 수는 고작 136이닝이다. 상위권 이닝 이터 선발들이 약 190이닝에서 200이닝을 던지는 점을 감안하면, 김광현은 힐만 감독의 계산된 관리를 받았다. 총 투구 수는 고작 2146개, 한 경기당 평균 이닝은 5.4이닝이었다. 2018시즌 총 투구 수 순위 30위 이용찬이 2237개를 던졌으니, 투구 수도 제대로 관리 받은 것이다.

 

김광현뿐만 아니다. SK의 나머지 선발투수 켈리, 산체스, 박종훈의 소화 이닝 수도 매우 인상적이다. 14승으로 다승 4위를 기록한 박종훈은 159.1이닝을, 12승의 켈리는 158.1이닝, 산체스는 145.1이닝을 소화했다. 팀 내 최다 이닝을 소화한 박종훈이 전체 투수 이닝 순위 15위라는 점에서 무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구원투수 부문에서도 SK 투수들의 이닝 수는 인상적이다. 최고 이닝을 소화한 김태훈이 74이닝으로 전체 구원투수 중 6위, 신재웅이 52이닝으로 전체 30위다. 그 외 투수들은 순위에 없을 정도로 이닝을 나눠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의 2018시즌 투수부문 팀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은 21.96으로 압도적 1위다. 2위인 한화는 19.87, 3위 두산은 19.58을 기록했다. SK 투수 한명 한명을 보면 WAR, 다승, 방어율, 소화 이닝, 세이브 부문 등에서 특출 난 기록을 거둔 선수가 없다. 그런데도 SK 투수 전체 WAR 합산이 10개 팀 중 압도적 1위라는 것은 계획된 관리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홈런을 제외하고 특출 나게 뛰어난 기록을 거둔 선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팀 순위도 2위를 기록했다. 이 또한 힐만 감독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힐만 전 감독은 현대 야구 감독의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지도자일지도 모른다. 또한 현 시대상에 가장 부합하는 지도자일지도 모른다. 소통하고 동기부여를 통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게 만드는 따뜻한 리더십이 각광 받는 시대기 때문이다.

 

◇ 인천시는 명예시민까지 수여...힐만은 SK에 HEAL만 주고 가나

 

14일 인천시는 오는 15일 오후 6시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 행사에서 힐만 전 감독에게 명예 시민증과 메달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힐만 전 감독은 8년 만에 인천 시민들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안겨 준 공로를 인정받아 33번째 인천 명예시민으로 위촉된다.

 

힐만은 “한국과 인천에서의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며 “언젠가 SK 식구들과 인천시민을 만나러 한국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천시는 불과 2년 한국생활을 한 외국인 감독에게 감사의 의미로 명예시민 자격까지 줬다. 이에 비하면 SK 구단의 태도는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최소한 힐만 전 감독에게 재계약 여부는 한번 정도 다시 타진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그러긴커녕, 한국시리즈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날 신임감독과 계약하는 모습은 제3자가 보기에도 의아하다. 힐만 감독 당사자로서는 우승 트로피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신임감독 재계약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우승 감독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갖췄어야 한다.

 

◇ 힐만, 포스트시즌 직전 재계약 거부 통보...납득하기 힘들다

 

이 같은 SK 구단의 전광석화 같은 신임감독 재계약은 마치 짜여 진 각본대로 움직였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게 한다. 누가 혹여나 갑자기 다른 말을 할까 노심초사하며 하루빨리 일을 진행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가장 이상한 점은 힐만이 재계약 거부 발표를 왜 하필 포스트시즌 직전에 했냐는 것이다. 포스트시즌이 끝나고 재계약 거부 통보를 해도 된다. 아니, 포스트시즌이 종료하고 해야 한다. 포스트시즌은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단기전이고 선수들의 초집중이 요구되는 경기다. 작은 사건 하나도 팀 전체의 분위기와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것이 팀의 한해 농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백전노장인 힐만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한 해의 마지막 추수를 앞두고 이런 중대하고 예민한 발표를 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밝히지 않은 내막이 충분히 예상된다. 힐만 감독이 SK가 본인과 재계약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거나, 구단에서 어떤 형태로든 의중을 표시했을 것이다. 구단이 미리 재계약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부모가 아니라 조부모 부양 문제였어도 포스트시즌 전에 이런 경솔한 통보를 할 그가 아니다.

 

더군다나 우승 직후 구단의 태도를 보면 이런 추측은 더 타당해 보인다. 아무리 미리 재계약 거부 발표를 한 힐만 전 감독이지만, 명실 공히 우승을 한 감독이다. 그런 그를 두고 대뜸 다음날 신임감독과 재계약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SK 구단이 이미 염경엽 감독을 내정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 우승 감독에게 삼고초려는커녕 최소한의 의사타진조차 하지 않은 것은 기본적인 예의에도 어긋나는 행위다.

 

◇ 김성근 전 SK 감독의 전례

 

사실 SK는 이번 힐만 전 감독의 재계약 거부와 데자뷰 되는 전례가 이미 있다.

김성근 전 SK 감독 [뉴시스]
김성근 전 SK 감독 [뉴시스]

바로 김성근 전 SK 감독이다. 김 전 감독은 2007시즌부터 SK의 사령탑을 맡았다. 그리고 부임 직후 2007, 2008시즌을 연속으로 제패했다. 이후 SK 구단과 3년의 재계약을 성사한다. 따라서 김 전 감독의 계약 만료는 2011년이 됐다. 그런데 계약 마지막 해인 2011시즌 중, 김 전 감독은 재계약 문제로 프런트와 마찰을 빚었다. 결국 2011년 8월 17일 이번 시즌까지만 하고 SK 감독직을 그만 두겠다고 공개 발언을 한다. 계약 만료 시즌에 스스로 시즌 중 재계약 거부 선언을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8월 18일 SK는 김 전 감독을 경질했다.

 

이 사건은 SK 구단 측과 김성근 전 감독 간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화근의 씨앗은 SK구단의 섣부른 약속이었다. 2006년 말 김성근 전 감독을 영입한 SK는 이만수 코치를 수석코치로 데려오며 2년 후 감독직 약속을 해버렸다. 그런데 김성근의 SK가 2년 연속 우승을 하자 재계약을 하지 않을 명분이 없어져 버렸다. 어찌 보면 구단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로 3년 재계약을 한 것이었다. 그러다 도중에 갈등이 극대화되어 김 전 감독이 먼저 재계약 거부 통보를 했고 이에 구단은 해임으로 응수한 것이다.

 

물론 이번 사건은 힐만 감독과 SK 구단 모두 겉보기엔 마찰 없이 잘 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전 감독과 구단의 전례와 사례가 흡사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근 전 감독도 시즌 도중에, 힐만 감독도 시즌 도중에 재계약 거부 통보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김 전 감독의 경우는 SK가 다음날 즉시 이만수 감독대행을 앉혔고, 힐만의 경우는 우승 즉시 다음날 신임감독과 재계약을 했다. 두 사례에서 다른 점은 한 명은 한국 야구계와 뿌리 깊은 인연이 있는 한국인 감독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 야구계와 아무 인연이 없는 외국인 감독이란 점 뿐이다.

 

당시 박노준 해설위원은 자신의 칼럼에서 이 사건을 두고 구단의 갑질이라고 표현했다. SK구단이라는 갑의 지시에 두 전 감독이 표면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힐만 전 감독에게서도 보이지 않는 갑질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 2016년 염경엽 "SK가 아니라 그 어떤 팀도 갈 생각이 없다. 다른 팀엔 안 갈 것이다"

 

염경엽 신임감독은 2012년 10월 10일,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 3년, 계약금 2억에 연봉 2억씩 총액 8억 조건이었다. 그는 2013시즌부터 사퇴하는 2016시즌까지 매 시즌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4위, 준우승, 4위, 3위를 기록하며 만년 하위권에 맴돌던 넥센을 일약 강팀의 반열에 올려놨다.

 

그런 그가 2016시즌 준플레이오프 4차전 패배 직후, 바로 공식 인터뷰에서 준비해온 글을 읽으며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이 인터뷰실에 들어와 있던 넥센 홍보팀 직원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염 감독은 비난을 면치 못했다. 사퇴 발표시점이 경기에서 패한 직후의 선수들과 다른 코칭 스태프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고, 경기 전부터 사임서를 써두는 등 언제라도 사퇴할 준비를 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행동이 이미 경기력 저하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염경엽 신임 SK 감독 [뉴시스]
염경엽 신임 SK 감독 [뉴시스]

염 감독의 과거 발언은 엠스플 기자와의 인터뷰에 잘 나타나있다.

 

다음은 엠스플 기자와의 인터뷰 발췌문.

 

(중략)

기자 : 이번 자진사퇴를 두고 야구계 일각에선 “염 감독과 SK가 이미 감독 계약에 합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염경엽 :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SK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은 적도, SK에 가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건지 모르겠다. 시즌 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 몹시 힘들었다. 당연히 팀과 선수들에게 미안했고. 특히나 SK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가 걸린 시즌 막판에 그런 소문이 나면서 SK와 김용희 감독님께 진심으로 죄송했다. 나 때문에 팀과 감독님이 흔들린 것 같아 지금도 죄송할 뿐이다.

 

기자 : 그런 소문이 나왔을 때 “차라리 쉬면 쉬었지, SK와 밀약했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SK에 갈 이유도, SK에 폐를 끼칠 마음도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염경엽 : 난 자진사퇴 전까지 ‘넥센맨’이었다. 넥센맨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내 나름대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내가 다른 구단에 가기 위해 시즌 중에 뭔가를 밀약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도 내가 실력이 부족한 감독이란 걸 잘 안다. 하지만, 그런 나도 명예가 있고, 야구관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명예와 야구관에 ‘밀약’과 ‘배신’은 없다. 여기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기자 : 그게 뭔가.

 

염경엽 : SK가 아니라 그 어떤 팀도 갈 생각이 없다. 다른 팀엔 안 갈 것이다.

 

기자 : 음.

 

염경엽 : 그것이 넥센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이장석 대표께서 부족한 내게 감독 자릴 맡겨줬다. 그 감사함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다. 지난 3년 동안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이 대표께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덕분에 넥센에서 많은 걸 배웠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느 팀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1년 먼저 팀을 떠난 만큼 다음해는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 생각한다.

(후략)

 

(출처 : [박동희] 염경엽 “내 야구관에 밀약과 배신은 없다” 엠스플뉴스, 박동희 기자 2016.10.18. 10:32)

 

◇ 외국인 감독의 한계(?)와 구단 갑질의 데자뷰(?)

힐만 전 SK 감독 [뉴시스]
힐만 전 SK 감독 [뉴시스]

예전 롯데의 로이스터 감독의 전례에서도 우리는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봤다. 로이스터 감독은 만년 하위권의 롯데를 ‘노 피어(No fear)’ 정신으로 무장, 부산 야구의 제2전성기를 일으킨 감독이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서의 한계점 때문에 재계약에 실패했지만, 일각에선 한국 야구계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학연, 지연 등 복잡한 내부 파벌 때문에 외국인 감독이 뛰어난 실적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경질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외국인 감독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도 한국 야구계의 기득권으로부터 배척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비단 야구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치는 물론 스포츠, 문화, 예술 등 각 분야마다 파벌과 기득권의 뿌리는 깊다. 이 부분에서 안타까운 점은 하나다. 능력 면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남을 보여준 로이스터와 힐만과 같은 부류가 정치적 싸움에 밀려 능력 발휘하기 힘든 사회는 닫힌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인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물론 힐만 감독의 경우, 파벌과 기득권으로부터 배척 문제보다는 오히려 김성근 전 감독의 사례와 흡사해 보인다. 대기업인 구단은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다. 만약 염경엽 감독의 내정설이 사실이라면, 힐만 전 감독은 짜여진 시나리오의 조연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염경엽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맡은 것 뿐이다.

 

그리고 힐만이 재계약 거부의 '공식적인 사유'로 밝힌 노부모 부양 문제는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 힐만의 노부모는 84세의 아버지, 그리고 치매에 걸린 새어머니다. 친어머니는 이미 힐만이 니혼햄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미국 사회에서 중년을 훌쩍 넘긴 자식이 노부모를 부양하는 모습은 흔치 않다. 더군다나 자식은 일찍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평생 부모와 따로 사는 것이 그들의 문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유교문화권에서나 볼 수 있는 ‘효자 힐만’이라니 무언가 어색해도 많이 어색하다.

 

진실이 무엇이든, SK구단은 극적인 우승을 함께 했던 팬들에게만 감사할 일이 아닌 듯하다. 신임감독과 재계약을 전광석화 같이 체결하기보단,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존재감 없는 지도자 힐만과도 그 감사함을 진심으로 함께 했으면 어떨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SK의 우승 직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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