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0억대 횡령·배임 등 1심 실형·벌금 1억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회삿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4300억 원대 배임·횡령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77) 부영그룹 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1인 경영체제로 부영그룹 계열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사업 추진과 투자 결정 등 사실상 전권을 쥐고 있었다. 업계는 1인 경영체제의 부영이 총수 부재로 인한 중요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분간 방어적 경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 보석 결정 유지…“방어권 보장 필요”
검찰 “서민들에게 큰 피해 줬는데 형 가볍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순형)는 13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 혐의 중 420억 원대 횡령·배임 일부만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계열회사들은 모두 비상장회사로 시장의 감시 및 견제 기능 역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장기간 다양한 방식으로 계열회사 자금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거나 경제적 이득 목적으로 미술작품심의위원회 업무를 방해했다”고 봤다.

특히 이 회장이 지난 2004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건에서 회사 자금으로 벌금을 대납하게 한 혐의는 죄질이 나쁘다고 봤다. 당시 이 회장은 매제인 이모 전 광영토건 대표와 공모해 270억 원 상당의 부외자금을 조성하고 그중 120억 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20억 원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종전 형사사건에서 이 사건 주식 양도합의 사실을 참작받아 구속 상태를 면하게 됐음에도 사건이 확정되기도 전에 합의를 뒤집는 부도덕한 행태를 보여 죄질이 불량하고 비난 가능성도 크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단순 이익 추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시장경제 한 축을 담당하는 기업집단 담당 경제주체로 협력업체 구성원 등에게도 밀접한 영항을 미치는 존재”라며 “주요 경영사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주주는 헌법상 권리를 발휘하고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개별 회사나 대기업 주주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도 고려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건전하게 운영함으로써 보호하는 책임도 부담한다”고 지적했다.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 ‘무죄’

하지만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 등 대다수 공소사실은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건설원가를 구성하는 ‘최초 입주자 모집 당시 주택가격’은 ‘실제로 투입된 건축비’를 기초로 산정해야 한다”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실제로 투입된 건축비의 세부 산정요소, 구체적 액수 및 실제로 투입된 건축비가 표준건축비를 하회하는지 여부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증명됐다고 보기에 부족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어 “민사, 행정소송이라면 증명정도를 고려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형사소송법에서는 판단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피고인들의 이익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협력업체에 다른 업체 최저 입찰가를 알려주는 등 입찰을 방해한 혐의 등에 대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회장이 입찰방해행위를 지시 또는 승인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법인세 포탈, 해외 계열회사 자금 횡령, 부영대부파이낸스 부당대출 혐의 등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이런 이유로 이 회장에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보석 결정을 취소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보석이 인용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재판부는 “오늘 선고 결과와 같이 상당 공소사실이 무죄가 나온 것에 비춰보면 방어권행사 기회를 충분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즉각 항소 계획을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2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12년에 벌금 73억 원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서민에게 큰 피해를 준 중대한 범죄혐의 일부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책임에 맞지 않는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며 “나아가 실형 5년을 선고하면서도 구속수감하지 않은 1심 판결은 부당하므로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부영주택 등의 임대아파트 분양 전환 과정에서 불법으로 분양가를 조정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방법 등으로 4300억 원대 배임·횡령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와 함께 법인세 36억2000여만 원 상당을 포탈하고, 일가에서 운영하는 부실계열사 채권을 회수할 목적 등으로 임대주택사업 우량계열사 자금 2300억 원을 부당 지원하거나 조카 회사에 90억 원 상당 일감을 몰아준 혐의도 받고 있다.

부영은 이 회장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총수 공백사태가 불가피하게 됐다. 이 회장이 실형을 선고 받은 만큼 부영그룹의 향후 경영 활동에 차질이 예상된다. 지난 7월 이 회장에 대한 보석 결정이 그대로 유지돼 법정 구속을 면했지만 부영의 경영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송도테마파크·민간임대사업 차질 빚나

당장 이 회장의 공백으로 차질을 빚게 된 것은 송도테마파크 사업이다. 인천시 연수구 둔촌동 911 일대에 49만9000㎡ 부지에 7200억 원이 투입될 송도테마파크 사업은 사업 시행자인 부영주택의 요청으로 실시계획인가 기간이 지난 4월까지 한차례 연장된 바 있다. 하지만 부영은 기간 만료까지 기본계획 등을 인천시에 제출하지 않았다.

인천시는 부영이 사업 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 4월 30일까지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효력 정지(실시계획인가 거부) 판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부영 측은 실시계획인가 거부 처분에 대한 취소 행정소송과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부영은 송도테마파크 조성사업에 대한 확고한 추진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최고 의사 결정자의 부재로 사실상 사업 동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핵심사업인 민간임대사업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지주회사격인 부영을 정점으로 한 부영그룹이 이 회장 혼자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었던 탓에 경영상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영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다만, 회사 내부에서는 법리적인 부분에 대해 변호인단과 상의해서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송도테마파크 사업과 관련해서는 “회사 내부의 문제와 관계없이 원칙대로 사업 추진 의지가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며 “오히려 환경평가 문제 등 외부 변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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