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 홈페이지 들여다보기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홈페이지(www.hurdongsoo.pe.kr) · 구자홍 LS그룹 회장 홈페이지(www.johnkoo.pe.kr)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홈페이지(www.leewoongyeul.com)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개인 홈페이지(www.hyundaigroup.com/ceo)

“재벌총수가 궁금하다면 총수의 개인 홈페이지를 봐라”라는 말이 있다. 기업 총수들의 경영철학부터 활동내역이 고스란히 개인 홈페이지에 녹아있는 탓이다. 특히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변 이야기가 시시콜콜하게 담겨있어 해당 회사 직원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빌딩 최고층의 넓은 사무실에 은둔해(?)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재벌총수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봤다.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은둔의 경영자’라는 것은 재벌가에 필수품처럼 여겨졌다. 재벌가에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런 재벌가의 풍토는 크게 변한 상황이다. 오히려 재벌총수들이 앞다퉈 개인 홈페이지(이하 홈피)를 운영하면서 ‘벽 허물기’에 나서고 있다.

사실 재벌총수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2002년 무렵부터 봇물을 이뤘다. 이른바 총수 이미지 홍보 PI(President Identity)라는 것이다. 베일에 싸인 재벌 이야기의 문이 열리자, 재계는 물론 일반인들이 앞다퉈 총수 홈피를 찾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일부 총수들은 개인 사생활까지 세세하게 소개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얻기도 했다. 이런 재벌총수들의 움직임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등으로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 취미, 사생활 공개

홈페이지 관리에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재벌가는 범 LG가를 꼽을 수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2년 문을 연 구본무 LG그룹 회장 홈피는 지난 1월까지 구 회장의 동정이 업데이트돼 있다. 홈피 운영 8년차 답게 다양한 컨텐츠로 꾸며져 있다. 경영활동을 비롯해 ‘구본무 스토리’ 등 구 회장의 경영철학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음식, 노래 등을 담아 가장 관심을 끌었던 ‘알고 싶어요’ 코너는 폐쇄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홈피 역시 꾸준히 관리되고 있다. 허 회장의 칼럼을 비롯해 경영철학, 경영활동 등이 올라 있다. 마지막 업데이트는 지난 2월 18일자. 개인 얘기보다는 경영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지막에 업데이트 된 ‘회장메시지’에서 허동수 회장은 “기존의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갑시다”라고 위기극복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홈피는 여행, 음식, 가족 등 인간적인 이야기가 솔솔하다. 특히 바둑에 대한 구 회장의 애착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구 회장은 “바둑은 부분 전투에서 출발해 반상 전체를 염두하고 둬야 한다”며 “매일 의사결정을 내려야하는 경영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밖에 음식, 와인, Q&A 등 꼼꼼하게 관리한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구 회장은 LG전자에 있을 때도 개인 홈피에 적잖은 신경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별도의 홈피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현대그룹 사이트 ‘CEO 코너’는 사실상 현 회장의 개인홈피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홈피에는 총수로서의 인간적 고뇌, 스파게티를 기막히게 잘 만들지만 한식을 좋아했던 남편 때문에 실력을 뽐낼 기회가 없었던 얘기 등을 만날 수 있다. 현 회장이 남편(고 정몽헌 회장) 대신 기업 경영을 맡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어떤 일에 대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사적인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도 이 홈피를 통해서다. 최근에는 지난해 말 취임 5주년을 맞아 ‘알고싶습니다’ 코너에서 질의응답식으로 소회를 풀어놓아 시선을 끌고 있다. 지난 2월 27일까지 동정을 업데이트 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홈피는 가장 독특하다. 홈피를 비행기에 비유해 블랙박스, 비즈니스클래스, 마이클래스 등의 섹션을 만들었고, 개인 얘기도 아주 세세하게 담았다. 이 회장은 홈페이지 공간에선 자신의 애칭이자 별명인 CVC(Chief Vision Creater)로 통한다. 좌측 하단에 보면 ‘Hey’와 ‘Say’를 만들어 놓은 것도 이색적이다. Hey는 Mr.CVC 에 대한 궁금한 내용을 검색할 수 있는 일종의 검색창이다.

예를 들어 이웅렬 회장의 첫사랑이 언제 인지를 알고 싶다면 ‘첫사랑’이란 단어를 명사 형태로 입력하면 된다.

그러면 “Mr.CVC : 제 와이프가 첫사랑입니다. 쿨~쿨럭”이라는 애교 섞인 답변이 뜬다. 그밖에 ‘My Class’를 클릭하면 그의 리더십과 취미, 주량 등 소소한 인간사가 수록 돼 있다. 마지막 업데이트는 지난 1월 5일 신년사. 업데이트가 다소 부진한 것이 흠이다.


홈피관리 불성실 총수들도

하지만 열심히 홈피를 가꾼 사람들이 있다면 홈피를 방치하거나 폐쇄하는 총수들도 적지 않다. 개인 홈피 유행이 지나자 총수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던 것일까. 최태원 SK 회장의 홈페이지는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2001년 개설된 뒤 2005년까지 운영됐지만 최근 ‘개편작업 중’이라는 안내문만 내걸려 있다. 개인홈페이지를 그룹 홈페이지의 한 코너로 연결해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도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 되는 형편이다. 그 외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2006년 홈피를 열었다가 세인의 관심이 쇄도하면서 곧바로 폐쇄한 바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마케팅 차원에서 회장 홈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추세”라면서도 “하지만 회장이 얼마나 애착을 두느냐에 따라 관리는 천차만별”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