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서가 롯데기업 문화

신격호(87) 롯데그룹 회장에게 2009년은 그 어느 해 보다도 감회가 새롭다. 신 회장이 염원하던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건설이 본격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MB정부가 들어서면서 롯데는 두산의 ‘처음처럼’등을 인수, 급성장하고 있다. 한편 롯데는 일본롯데를 모태로 한국에 진출한 기업이다. 일각에선 롯데가 국내 토종기업이 아닌 일본롯데의 계열사쯤으로 여기고 있다. 일본롯데-호텔롯데-롯데쇼핑-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분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숨겨진 성공신화’ 비결과 롯데그룹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본 기업 문화를 살펴본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박봉의 삶이 싫어’ 단돈 83엔을 들고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때 그의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도쿄의 스기나미구 코엔지 거리에 여장을 푼 신 회장은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 이러한 타고난 성실성 덕분에 그는 의식주 해결은 물론 사업자금도 금세 모을 수 있었다.

1948년 6월, 하루는 새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던 신 회장에게 친구가 찾아왔다. ‘껌을 제조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 차 찾은 것이다.

당시 일본에는 소규모 껌 공장이 난립해 있었고, ‘좋은 원료를 사용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 신 회장은 그해 6월 28일 사재를 탈탈 털어 신주쿠 허허벌판에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주식회사 롯데’란 상호는 그가 감명 깊게 읽었던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샤롯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일본서 성공한 진짜 이유

본격적으로 껌 제조 사업에 뛰어든 신 회장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밀항한지 10년째가 되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껌이 날개돋인 듯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롯데그룹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와중에 신 회장은 지금의 아내인 다케모리 하츠코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결혼은 그에게 두 번째 ‘행운’을 안겨줬다. 중국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맞아 중상을 입은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가 다름 아닌 부인 하츠코의 외할아버지였던 것이다.

1945년 9월,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거행된 항복 문서 조인식 때 일왕 히로히토와 함께 정부 대표 자격으로 목발을 짚고 참석한 외상 또한 ‘시게미쓰’였다. 신 회장의 일본이름 또한 ‘시게미쓰 다케오’이다.

이에 고전 연구가들은 신 회장이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이러한 ‘숨겨진 혼맥’이 크게 한몫 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 십 년간 ‘반 일본인’으로 살아온 신 회장에게 마침내 ‘금의환향’할 기회가 생겼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1965년 재일동포 사업가들이 모국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67년 그는 일본에서 벌어들인 엔화를 국내로 들여와 롯데제과를 설립, 오늘날의 한국롯데를 탄생시켰다. 한국롯데의 모(母)기업이 롯데제과라면, 롯데제과의 기본 틀은 일본에 소재한 ‘주식회사 롯데’, 즉 일본롯데인 셈이다.

이처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다. 롯데가 한국에 뿌리를 내린지 올해로 42년.


롯데의 국적은 어디?

그러나 재계는 아직까지도 롯데를 온전한 토종기업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일본계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평이다.

일례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과 연결되어 있는 롯데그룹 본사사옥에는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매우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엘리베이터 안내원이다.

소위 ‘엘리베이터 걸’이라고 불리는 이 직업군은 일본에서부터 비롯돼 1960년대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으나 근대화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롯데그룹 곳곳에 숨어있는 일본기업 문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가령 비상장사의 감사보고서만 해도 미처 ‘일본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롯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나와 있는 롯데닷컴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한자를 잘 알지 못하면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온 천지가 한자범벅이다. 실제로도 ‘은, 는, 이, 가’ 정도의 조사 말고는 모두 한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롯데닷컴뿐 아니라 대부분의 비상장 계열사들이 토씨만 빼고 모두 한자로 감사보고서를 작성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감사보고서를 보고 있자니 흡사 ‘히라가나’를 사용하는 어느 일본기업의 보고서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한글보다 한자가 많은 일본식 감사보고서

그렇다면 온통 한자투성이인 이 감사보고서는 과연 누구를 위해 작성된 것일까.

바로 신격호 회장 등 오너일가를 위한 것이다. 이는 아직도 롯데그룹이 일본계 오너 위주의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을 전반적으로 진두지휘하던 신격호 회장은 사실상 한국롯데는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에게 일본롯데는 장남인 신동주 부사장에게 맡긴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형제 모두 한국어 실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 신동빈 부회장이 한국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부터다. 때문에 신 부회장은 언론으로부터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식석상에서조차 신 부회장은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하루는 기자들이 다섯차례나 질문을 던졌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 심지어 “왜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조차 답을 안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측은 “나서야 할 자리가 아니기 때문”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라고 해명했지만, “한국말을 잘 못해서”라는 것이 다수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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