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 vs 환자단체 첨예한 갈등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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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 참가한 의료인들이 '오진' 의료인 3인 구속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11일 의사들이 흰 가운을 입고 의료현장이 아닌 거리로 나섰다. 오진으로 인해 환자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의사 3명이 법정구속되자 의사단체가 이에 반발해 대규모 거리 집회를 연 것. 지난 7일에는 환자단체와 의사단체가 같은 시간 같은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로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의사단체가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를 요구하자 환자단체는 살인면허특권면허로 변질시키고 있다고 반발했다. 의사단체는 다시 살인면허라고 표현한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법적대응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이들의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2심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놓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대규모 집회 이은 총파업 예고···2심 재판 결과 주목

지난 20135월 당시 8살이었던 A군은 배가 아파서 경기도 성남의 한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변비와 소화장애에 대한 치료만 한 뒤 A군을 귀가시켰다. A군은 이후 같은 병원에서 열흘 동안 4차례에 걸쳐 진료를 받았는데 매번 변비 치료만 받았다. 그러나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으며 급기야 병원을 옮긴 후 치료를 이어가다 2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문제는 옮긴 병원에서 내린 진단이 변비가 아닌 횡격막 탈장과 혈흉이라는 데 있었다. 결국 첫 번째 병원에서 변비라고 오진을 하면서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게 오진 사망 논란의 골자다. 이에 최근 1심 법원은 A군을 진료했던 의사 3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해 1년 이상의 금고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러자 동료 의사들은 집단 반발하며 총파업을 검토하는 등 논란이 확대됐다. 의사의 오진을 형사처벌 할 경우 어느 의사가 환자를 자신있게 진료할 수 있겠냐고 항변하는 것이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B씨는 의학을 확률게임이라고 한다. 의사들끼리는 선택의 순간에서 확률이 70% 이상만 되면 생각대로 밀고나간다는 얘기를 한다면서 이렇듯 모든 진료와 수술이 다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인데 오진을 했다고 구속을 시키는 것은 의사들의 손발을 묶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전문 변호사 C씨는 의료진의 과실이 사망과 인과관계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는 사안인데 이렇게 법정 구속시킨 것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의료행위 결과를 놓고 의료진 과실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는 문제인 게 사실이다. 의료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상적으로는 의사가 주의의무에 최선을 다했는지 여부가 과실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전국 의사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전국 의사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의사 예비 범죄자 취급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 11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2000여 명(주최 측 추산 1만 명)이 참가한 집회에서 의협 측은 진료의사 3명이 민사책임을 넘어 형사구속까지 되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겨준다면서 판결은 모든 의사들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해 방어진료를 부추기는 불안정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의사와 국민 모두가 안전한 진료환경 속에서 최선의 의술이 행해져 국민건강이 지켜지는 터전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재판부는 “X(엑스레이X rays) 사진에 나타날 정도의 흉수(가슴에 고인 액체)라면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데도 적극적인 원인 규명이나 추가 검사가 없어 업무상 과실과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서 피고인들은 업무상 과실로 한 초등학생의 어린 생명을 구하지 못했고 피고인들 가운데 누구라도 정확하게 진단했더라면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의협은 의사의 오진이 범죄 행위로 인정되고 법정구속까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무엇보다 오진 자체만으로 과실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용산 임시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료거부권 도입, 과실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 요구 의사협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용산 임시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료거부권 도입, 과실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 요구 의사협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살인면허” vs “법정대응

환자단체연합회는 암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 임시회관 앞에서 의사협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충분히 예방 가능했던 의료사고가 의사들의 기본적인 주의의무 위반의 과실로 발생한 경우라면 법정구속도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의협은 적반하장 격으로 환자를 선별하는 진료거부권 도입과 과실에 대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특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어 의사면허를 살인면허로 변질시키는 의협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다고 주장했다.

암시민연대 최성철 대표는 감정에 참여했던 의사나 같은 병원의 영상의학과 전문의 의견도 엑스레이에서는 흉수가 보인다고 했었다면서 흉수는 중증질환의 증상일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추가검사를 하고 감별진단을 해야 하는 것임에도 절차를 전혀 지키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검사결과 확인과 그에 따른 추가 검사가 진행되지 않은 게 적절하지 않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의협 주장대로) 이것이 최선의 진료라고 한다면 확인하지도 않을 수많은 검사를 도대체 왜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면서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다했고, 그런데도 진단이 어려운 희귀 중증질환으로 사망한 것처럼 사실을 날조해서 선동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협회도 같은 날 오전 의사협회 임시회관 7층 대회의실에서 반박성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단체연합회 측이 살인면허라고 표현한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법정대응까지 예고했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환자단체연합회 등이 의사면허를 살인면허라고까지 지칭하고 있다. 의사면허가 살인면허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냐면서 이런 망언이야 말로 명예훼손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한계를 뛰어넘는 악의적 망언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손해배상 소승 등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또 의사 3명이 구속된 것과 관련해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의사들은 치료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명을 살려내지 못하는 환자에 대해 깊은 슬픔과 애도의 마음을 늘 지니고 있다면서 사망한 8세 환자와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 그렇지만 의학적 원칙과는 다른 문제가 있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의료 행위 결과가 형사처벌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과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의료과실의 유무와 경중을 따지는 것은 민사적인 소송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면서 의사는 신이 아닌 인간이다. 업무상 과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순간의 실수로 형사처벌의 위험 속에서 진료해야 한다면 어느 누가 이 나라에서 의사로서 진료실을 지키고 있겠느냐라고 주장했다.

한편 사망한 A군의 유족 측과 의사 3인은 모두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3명의 의사 구속으로 불거진 이번 사태가 전국 의사 대규모 집회와 총파업 예고로까지 번지고 있는 가운데 2심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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