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 뉴욕타임즈는 “북한이 거대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최소한 미사일 기지 16곳에서 미사일 프로그램을 몰래 진행하고 있는 정황이 인공위성 사진 분석결과 확인됐다는 것이다. 중립적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북한이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에서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영구 폐기를 약속하면서 그것이 미사일 프로그램 포기인 것처럼 선전한 것은 거대한 기만행위라고 했다. 북한은 양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챙겼다. 나아가 종전선언 및 대북제재 완화라는 추가 상응조치까지 요구하고 있다.

황해북도 삭간몰 비밀기지는 군사분계선에서 85㎞, 서울에서 135㎞ 떨어져 있다.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기지이다. 삭간몰 기지에는 7개의 긴 땅굴이 있으며, 18대의 이동식미사일 발사차량(TEL)을 수용할 수 있다.

뉴욕타임즈는 삭간몰 비밀기지를 우려했는데, 청와대 대변인은 “삭간몰 기지 미사일은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으로 날아가면 걱정이지만, 한국으로 날아오면 괜찮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한국 사람은 북핵 미사일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살아도 된다는 뜻인가 묻고 싶다.

뉴욕타임즈의 보도는 ‘북한식 비핵화’가 가짜임을 폭로하면서 진짜 비핵화를 압박하고 있는데, 청와대 대변인은 “이미 한·미 정보 당국이 파악했던 내용으로 새로운 게 아니다”라면서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기지 외에 다른 미사일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며 마치 북한 대변인처럼 북한을 감쌌다.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유엔 차원의 인도적 대북 지원까지 저지하는 등 압박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과 비공개 양자회담을 가진 뒤, “미국은 성급하게 제재를 풀었다가 실패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은 약속한 뒤 제재가 완화되면 약속 깨기를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펜스 부통령 언급은 1994년과 2005년 북한이 미국 등과의 핵 협상에서 일부 경제적 지원을 받은 뒤 핵 프로그램 폐기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걸 가리킨다.

하원을 장악한 미국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북한 핵위협 악화를 들어 내년 초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부의 남북관계 과속으로 북한은 기고만장해졌다. 저자세 대북 협상은 결국은 한미동맹을 해치고 북핵 폐기도 어렵게 할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대북 제재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할 때다.

668년 12월, 나당연합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평양성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병력 2만을 주둔시켰다. 설인귀가 안동도호(安東都護)로 임명되었다. 당나라는 백제 멸망 후인 660년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663년에는 문무왕을 계림대도독으로 임명했다. 도독부는 도호부의 통제를 받는 하위기관이다. 안동도호 설인귀가 계림대도독인 문무왕과 웅진도독인 부여융을 부하로 두고 통제하겠다는 것이었다.

당나라의 이 같은 망동은 648년에 체결된 김춘추(태종무열왕)와 이세민(당태종) 사이의 ‘비밀협약’을 일방적으로 짓밟은 배신행위였다. 비밀협약의 내용은 ‘고구려·백제의 멸망 후에 백제 고토 전역과 대동강 이남 고구려 땅을 신라가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문무왕은 신라가 당나라의 속국으로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어 자주권을 회복하여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룩할 것인지 결단해야 했다. 전쟁을 해서 당나라가 패해도 망하진 않지만, 신라가 패하면 멸망당하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선택이었다.

결국 문무왕과 대장군 김유신은 전쟁을 선택했다. 당시 세계 최강의 당제국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건 것이다. 그것은 동북아 국제정세를 읽었기 때문이다. 669년 9월에 실크로드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당과 토번(吐藩, 티베트) 간의 전쟁이 발발했고, 안동도호 설인귀가 휘하 병력을 이끌고 청해(靑海) 방면으로 이동하여 한반도에는 힘의 공백상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무왕은 설오유(薛烏儒)와 고구려 부흥군 고연무(高延武)가 각기 정예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 북방의 요새 오골성(烏骨城)을 선제공격하게 해서 7년 동안의 나당전쟁(670~676)을 승리로 이끌었다. 나당전쟁을 치르면서 문무왕은 당나라와 화전(和戰) 양면작전을 전개했다. 신라군이 이길 때는 계속 전쟁을 감행했고, 신라군이 질 때는 사죄사(謝罪使)를 보내 휴전했다. 평화 구걸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나당전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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