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질주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변변한 대권주자를 만들어 내지 못했던 호남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상종가를 치는 중이다. 정동영, 천정배, 박지원 등 쟁쟁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있지만 이낙연 국무총리만큼 안정감과 신뢰감을 함께 주는 정치인은 없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알려진 바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믿음은 노무현 대통령의 문재인 비서실장에 대한 믿은 그 이상이라고 하니 이낙연 국무총리가 범 진보 진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 대권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4일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KTX 세종역 신설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KTX 세종역 설치는 세종시를 선거구로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총선 공약이고, 대다수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도 세종역 설치를 바라는 상황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들과의 흥정은 없다고 표명을 한 것이다. 예전의 이낙연 국무총리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9일 청와대는 경질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후임으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이낙연 국무총리가 강력히 천거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책임총리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멘트였지만, 실제로 자신의 수족 역할을 하던 국무조정실장을 경제부총리로 천거한 것을 보면, 이낙연 국무총리도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이해찬 국무총리에 견줄 만큼 파워를 장착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과거의 서열, 정국을 주도하는 힘, 여당의 대표, 친노 좌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금은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텐데, 현직 국무총리가 자연스럽게 견제를 해주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아직 대권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여의도에는 이미 대권 경쟁이 시작된 것 같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7대 대선에서 폐족이라는 친노그룹을 이끌고 고군분투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3위를 한 쓰라린 기억이 있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면서 권력의 원천이 되는 지역적 배경을 살리기 어려운 충청 출신이라는 한계가 있었으며, 그의 정치적 유연성 역시 다른 정치인에 비해 부족했던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충분히 숙지하는 이해찬 대표는 본인이 다음 대권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킹메이커 역할에 충실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보좌관 출신이자 인기 작가이며, 경상도 출신이라는 강점을 가진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정치 복귀에 손사래를 치는 유시민 이사장을 대권 후보로 상정한 여론조사는 많지 않지만, 10월 초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여권 정치인 선호도 조사에서 11.1%의 선호도를 보여 12.7%의 이낙연 국무총리, 11.5%의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3강 체제를 형성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11일 발표된 리서치뷰의 범진보진영 차기대권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20.5%를 기록, 2위 이하 주자들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적합도를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서 정치권 입문도 하지 않은 황교안 전국무총리는 18.6%를 기록하며 범보수진영 적합도 1위 후보가 되었다.

이런 구도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현 상황은 보수와 진보 진영 전현직 국무총리 3인이 킹이 되기 위해 혹은 킹메이커가 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이해찬 대 이낙연의 대결 구도는 정국에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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