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문재인 정부 위기론’ 시리즈 그 세 번째는 ‘서민 정책의 실종’이다. 촛불을 등에 업고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촛불 정권’ 임을 자임했다. 민노총 등 촛불집회를 주도한 세력들이 내미는 ‘촛불 청구서’들을 모두 결제해 줬다. 최저임금 2년 연속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무더기 정규직 전환 등 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진짜 ‘촛불민심’을 헤아렸는지에는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국민연금 개혁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 ▲저출산 고령화 정책 등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뒷전이고 ‘청구서 결제’에만 눈이 멀었다는 것.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참여정부 시즌2’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 ‘시한폭탄’ 국민연금, ‘盧 그림자’ 부동산, ‘오락가락’ 교육... “집토끼도 떠나는 중”
- 실패한 참여정부 시즌2… “‘답습’ 인가 ‘반면교사’인가”


국민연금 개혁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걷어가는 준조세 성격이 짙고, 보험료율은 인상한다고 하는데 현재까지는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지도 않고 있으며, 기금 소진 시기는 앞당겨지고 있다.

文, 참여정부 당시
국민연금 개혁 두 번 실패

따라서 5년마다 한 번씩 국민연금 개편이 시행될 때마다 여론은 국민연금 필요성에 의구심을 내비치며 무용론을 제기한다. 지난 2003년 10월, 집권 첫해였던 참여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는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재정 추계를 해보니 오는 2036년 적자가 나기 시작하고 2047년에는 기금이 고갈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가 컸다. 2004년 5월에는 ‘국민연금의 비밀’이라는 글이 등장해 여론에 불을 질렀다. 결국 법 개정은 무산됐다. 그때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갈등을 통합 관리하는 시민사회수석이었다.

문 대통령은 2007년 4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또다시 부결됐을 때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었다.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험료율을 9%에서 12.9%로 올리는 대신 급여 수준을 60%에서 5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여파로 유 장관은 장관직을 사퇴했다. 그해 7월 참여정부는 보험료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소득대체율을 2008년 50%로 즉시 인하한 뒤 2028년 40%까지 조정했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정치적으로 어려운 작업”이라며 “참여정부가 국민연금으로 힘들 때 그걸 가장 가까이에서 본 게 지금의 문 대통령”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이나 국민연급 개혁 좌절을 지켜봤던 탓일까. 문 대통령은 7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 보고를 받은 뒤 내용은 전면적으로 수정·보완하라고 지시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개혁 초안은 ▲소득대체율을 현행 45%→50%, 보험료율을 현행 9%→13%까지 인상하는 방안 및 소득대체율 현행을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을 12%로 인상하는 방안(노후소득 보장 강화 방안) ▲소득대체율을 2028년 40%로 낮추고 보험료율만 현행(9%)에서 단계적으로 15%까지 올리는 방안(재정 안정화 방안) 등 두 가지다.

이렇듯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개혁 초안엔 보험료율 인상안이 들어가 있었다. 보험료율 인상은 결국 돈을 더 내라는 것으로 인식돼 국민적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문 대통령으로선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전국 성인 1503명을 상대로 한 11월 2주차 주중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보다 1.6%P 내린 53.8%를 기록하며 ‘7주 연속 하락’했다. 구체적으로는 호남과 대구·경북(TK), 충청, 경기·인천, 20대·60대 이상, 무당층, 중도보수층과 진보층에서 하락했다. 지지율은 상승은 부산·울산·경남, 50대·30대, 정의당 지지층에서 나타났다.

이번조사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간 유권자 1만9921명을 상대로 통화를 시도해 응답률 7.5%를 기록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이다. 조사방식은 무선 전화면접과 유무선 자동응답 혼용·임의 전화걸기 방식이 사용됐다. 자세한 결과는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文 정부 부동산 정책,
세금 환수에 초점 ”

상황이 이쯤 되자 참여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절대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민노총이 ‘촛불 청구서’를 앞세우고 정부·여당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집값 폭등 역시 참여정부와 똑 닮아 있다. 문재인 정부의 9.13 부동산 대책 이후 지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이 안정을 되찾은 듯하지만 우려의 시선이 크다.

한 전문가는 “청약시장 열기나 대기 매수세로 볼 때 시장에서 이상 신호가 나오면 집값이 다시 오름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만큼 서울 집값 상승세가 강했고, 반대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약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장은 수요 공급에 따라 작동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집을 많이 짓고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면, 건강한 시장 기능이 알아서 비정상적인 ‘미친 집값’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며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시장의 건강한 시장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보다 투기를 잠재우고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보유세를 강화하면 거래세를 낮춰서 시장을 돌아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했지만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등 거래세를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며 “그러다 보니 초강력 대책에도 불구하고 급매물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자취를 감춰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임기 첫해인 2003년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골자로 하는 10·29 대책을 시작으로 2004년을 제외한 나머지 4년간 12번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행 초기에만 가격 오름세가 꺾였다가 다시 치솟았고 임기 5년간 서울 아파트 값은 56.4%나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사회정책비서관을 지내며 부동산 정책을 입안했던 인물이다. 김 실장은 도시공학과 환경을 전공한 경제 비전문가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총괄했지만 그때마다 집값이 급등했다.

이에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13일 “김수현 실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폭등의 주역인데 문재인 정부에선 사회수석으로 기용돼 부동산 시장을 망치게 했다”며 “집값이 올라 내 집 마련 꿈은 사라졌고 깡통주택 전세도 속출해 부동산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흥적’·‘설익은’ 교육정책
‘정책 엇박자’ 자초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교육 정책 역시 지지층의 이탈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10월 초순 교육계의 가장 큰 화두는 ‘유치원 영어교육’이었다.

10월 4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을 금지한 기존 교육부 입장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통해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특별활동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거센 반발로 3주 만에 이를 뒤집었다.

이번 정책 결정으로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교육계와 전문가들은 비판의 날을 세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진보진영 인사들조차 “정부가 교육정책에 대한 소신과 일관성을 잃었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유아 발달과 공교육 철학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결정으로 교육 현장의 혼란만 부추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3학년생은 방과후 특별활동 시간과 정규 수업시간에 각각 영어를 배울 수 있지만, 초등 1~2학년생은 영어를 배우려면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 시장으로 가야 한다. 결국 소신 없는 교육부의 정책 추진이 ‘정책 엇박자’를 자초한 셈이다.

‘즉흥적’이고 ‘설익은’ 정책으로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진보 성향 교육활동가 S씨는 “여론 존중 덫에 걸린 새 교육부 장관의 교육개혁이 과연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다. 저출산이 진행될수록 인구감소로 국가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의 침체가 지속되는 재앙적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 달 안에 정부가 내놓을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 수정안’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3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18년 재정정책보고서’를 살펴보면 수정안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보고서에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선제적인 사회투자를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내용의 정책 방향이 담겼다.

10년 이상 지속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증대시키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가는 노력이 우선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정책 방향을 바꿔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마련되면 자연스럽게 출산율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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