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으로서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합니다...중략...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적폐청산’과 ‘통합’을 기치로 국민 선택을 받았던 문 대통령 임기가 어느덧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파격과 소통으로 대변되는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과거 정권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정권 초반부터 계속된 여소야대 국면에서 협치 부재로 인해 정국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국정 책임자로서 야당을 설득해내지 못했다는 책임은 곧 문재인 정부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문재인 정부위기론’ 그 1탄으로 ‘협치의 위기’에 빠져 남북관계부터 개혁.민생법안까지 흔들리고 있는 문 정부의 위기를 진단해 봤다.

 

- 인사청문·여야 평양방문·판문점선언 등 협치 실패 ‘수두룩’
- 여당은 靑 ‘출장소’ 전락 .‘개혁·민생·남북·경제’관련 법안 ‘표류’


야당과의 협치 중요성은 작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제기됐다. 여소야대 정국에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야당을 정책 결정의 한 축으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문재인 정부가 최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에 문 대통령 역시 취임사에서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다”며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지난 11월 15일 예산정국에 벌어진 국회 파행은 ‘협치 부재’에 따른 곪고 곪았던 상처가 불거진 대표적인 사건이 됐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국회에서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 임명을 제고하고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했지만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거부하면서 정기 국회 보이콧에 들어갔다.

청와대발 ‘협치 정신 실종’ 사례 4가지 보니..

상당한 정치적 위험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470조라는 수퍼 예산을 다룰 정기국회를 보이콧한 것은   그동안 누적된 청와대의 협치 정신 실종을 질타하기 위함이다.

야당이 민심 이반의 후폭풍을 감안하면서까지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장관급에 임명된 인사가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 장관을 포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등 7명을 ‘협치 실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여당의 2중대’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는 민주평화당마저도 인사혼선과 관련해 청와대를 비판하고 나섰다. 15일 본회의에 참석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는 이날 청와대를 겨냥해 “스스로 정한 인사 7대 배제기준에 해당된 의혹들이 있는데도 인사를 강행한다는 것은 협치를 위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장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반드시 임명할 이유가 있다면 청와대가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사 강행을 비판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이날 본회에 불참한 원인으로 청와대를 지목한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7월 ‘협치 내각’ 구상을 불쑥 꺼내들 때도 야당의 반발을 샀다. 문 대통령이 개각에서 야권 인사를 내각에 포함하는 협치 내각을 구성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아무 조율이 없었고 결국 공론화된 협치는 ‘공론’(空論)이 되고 말았다.

비슷한 경우는 지난 9월에  또 발생했다. 평양정상회담에 앞서 청와대가 대통령의 북한 방문에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 동행을 공식 제안했다 거절당한 적이 있다. 당시 제안 과정만 해도 일방적이었다. 야당과는 아무런 사전 협의가 없었다. 협치의 기본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책임론이 일었다.

또한 야당에선 문 대통령이 10월 23일 국무회의를 열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 비준안을 심의 의결한 것을 협치부재의 예로 꼽고 있다. 이 비준안은 10월 29일에 관보에 게재, 공포되어 효력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비준안은 국회 동의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당에서는 위헌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은 헌법상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헌법 60조가 규정한 국회 조약체결권과는 무관하고, 군사합의서는 남북관계법(제21조3항)에서 규정한 재정적 부담이 크지 않고 입법사항도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국회를 연이어 무시하자 야당들은 판문점 선언과 관련된 예산안이 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올라오자 ‘깜깜이 예산’이라며 합의를 안해주고 있다. 외통위를 통과해야 법사위를 통해 본회의에 상정되는 데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판문점 선언 국회비준안과 별개로 평양 정상회담 비준동의안도 국회에 제출됐지만 마찬가지 신세다. 청와대의 국회및 야당 무시가 계속되다 보니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에 대한 논의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국회 법안발의를 통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법안 19건을 발의했지만 해당 상임위에 계류된 채 표류하고 있다. 남북합의서에 대한 법적 효력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비롯해 남북 간 언어교류 활성화를 위한 겨레말 큰사전남북공동편찬 사업을 지원하는 법안, 스포츠와 문화 교류 확대를 위한 내용을 담은 법안 등 비정치적 분야에 대한 입법적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협치의 부재’는 개혁법안뿐만 아니라 민생.경제 법안들에 대해서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장 11월15일 국회가 파행되면서 이날 처리하기로 했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등 90건의 법안이 기약 없이 방치된 상황이다.

협치 실종으로 유탄맞는 개혁·민생·경제 법안들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에 대한 수술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검경수사권 조정뿐만 아니라 공수처 설치,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양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야당을 무시하는 국정운영 방식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며 “국회를 무력화하고자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가 있었고 집권당인 민주당은 청와대 출장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가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라도 나서서 야당과 협상하고 달래야 하는데 역부족인 모습이다. 이해찬 대표 역시 당 대표 취임 초만 해도 “야당과 최고 수준의 협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10월 10.4공동선언 기념행사에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녘 동포도 힘을 합쳐 보수 타파 운동에…”라고 연설한 다음날 이 대표는 북한 관계자들과 만나 “우리가 정권을 빼앗기면 또 못하기 때문에 제가 살아 있는 한 절대 안 뺏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대선 기간 ‘보수궤멸론’을 앞세운 바 있어 한국당은 ‘한통속끼리의 만남’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난 민주당 창당기념일에는 “앞으로 한 열 번은 더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른바 ‘20년 집권론’에서 진화한 ‘50년 집권론’을 주장해 보수 야당을 자극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본연의 집권 여당으로서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게 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국회가 파행된 15일 예산소위를 가동해 예산안 감액·증액 심사를 시작해야 했다. 그렇지만 여야 이견으로 소위를 구성조차 못했다.

또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국회 일정 보이콧으로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 비리유치원 근절 법안(박용진 3법) 등 국민 청원이 높은 법안 심사도 미뤄졌다. 결국 임기 초 70~80%를 넘나들던 대통령 국민 지지도는 계속 하락해 5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인사 혼선과 여소야대 국면에서 협치 부재로 인한 정국 불안의 한계성을 출범한 지 18개월이 지나도록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2020년 4월에 치러지는 총선 때까지 국정운영에 커다란 부담으로 남을 수 있고 자칫 총선에서 재차 여소야대 국면이 될 경우 ‘정권 위기론’마저 나올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진단이다.

대야 협치 부재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

야당의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이 무엇보다 국정 책임자로서 야당을 설득해 내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곧 협치 실종이자 정권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며 “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협의체 역시 중단된 이유도 ‘야당이 발목잡기’로 인식해선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야당을 정책 결정의 한 축으로 흡수하는 데 실패하고 국정 동력 약화를 초래한 자신들의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야 집권 여당다운 모습이다”며 “집권 1년 차를 넘어 2년 차를 달리고 있는 문 대통령이 본격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 대야 협치 구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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