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비중 90% 확대하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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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서울 숙명여고에서 교무부장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자매에게 시험지를 유출해 논란이 된 사건이 불거졌다. 이를 통해 곪아온 현행 교육 입시 제도에 관한 불신이 팽배하는 형국이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사람 처벌 비리 근절 안 돼…구조적 문제”
투명가방끈 “시험·점수로 차별하는 현행 교육제도, 비교육적”

 

숙명여고는 지난 13일 사건의 중심인 쌍둥이 자매의 성적을 0점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숙명여고는 교장 명의의 ‘숙명여고 학생 및 학부모님께’라는 글을 통해 “교육청 및 전문가 자문과 학부모회 임원회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전 교무부장 자녀들의 성적 재산정(0점 처리)를 결정했다”며 “선도위원회를 통해 퇴학 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는 내신 제도의 ‘깜깜이’를 지적하며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더불어 비단 문제가 된 숙명여고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고등학교를 상대로 전수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숙명여고의 발표가 있던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개최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번 사태를 보며 과연 내신관리가 허술한 학교는 비리가 얼마나 심하겠느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며 “이번 계기로 전국 모든 고등학교를 전수조사하고, 이에 대해 강력 처벌하는 것이 분노하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입시를 공정하게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숙명여고 내신 비리와 유사한 사례 전국 고교 전수조사 ▲숙명여고 최근 10년간 내신 비리 전수조사 ▲교수와 자녀가 같은 대학에 다니는 경우 입학 비리에 대한 전수조사 등을 요청하는 문건을 보냈다.

 

운영자 vs 입시 구조
문제는 어디에?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이종배 대표는 일요서울과 진행한 유선 인터뷰에서 “현재 내신 중심의 수시 비중이 80%에 육박한다”면서 “내신 성적이 대학 당락과 직결돼 학생들이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신을 잘 받으려 한다. 그래서 이러한 내신 비리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대학 입학 제도에서 공정한 수능 중심 평가인 정시 비중이 90% 이상 대폭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현행 수시제도는 교과 영역을 다루는 ‘학생부 교과 전형’과 비교과 활동인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나뉜다. 여기서 비교과 활동이란 학생의 동아리, 독서, 자율 활동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평가한다. 그는 비교과 활동 중심의 내신 평가에 대해 강도 높게 일갈했다.

이 대표는 “교사가 모든 학생의 학생부를 관리할 수 없다”며 “학부모가 고액 컨설팅 회사를 통해 학생부에 올릴 내용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며 꼬집었다.
그는 또 다른 병폐로 우수 학생 몰아주기를 짚었다. 이 대표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 뒤 그에게 비교과 영역을 몰아준다”며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우수 학생 집단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만약 우수 학생의 지필고사 성적이 낮을 경우 수행평가 점수를 높여 1등급을 유지해주는 방식으로 편법이 이뤄진다. 그러면서 “이처럼 불법이지만 관행처럼 여겨지는 편법으로 학생부 조작이 이뤄지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숙명여고 사태가 올해 7월에 불거졌는데, 그 이후에도 목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시험지를 유출하는 사건이 있었고 부산에서도 교사 연구실에서 시험지를 훔치는 부정행위가 있었다”면서 “현재 입시 구조라면 앞으로도 내신 비리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숙명여고 논란 이후 교육당국은 교수 연구실 복도 CCTV 설치 등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단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 대표는 내신 중심의 입시 구조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대안책을 통해 개선되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는 “수시 비중이 70~80%인 구조 안에서는 내신 비리를 막기 어렵다”면서 “(오히려 강화된 관리 감독으로 인해) 내신 비리는 적발되기 어렵도록 음성적이고 진화된 방식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재철 대변인은 현재 논란을 두고 “방법론의 문제”라며 “현재 정시 비율 확대 요구는 교육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다. 현재 대학 입학시험에서 수시는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이라고 논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위 ‘깜깜이 전형’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비교과 내신 전형에 대해 “이것은 (교사의) 주관이 개입돼 표준화가 될 수 없다”며 “그러다보니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불신이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러한 내신을 향한 불신이 커진 것은 “(운영) 구조보다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실제 운영하는 부분에서 (병폐가) 많이 나온다”며 “교사가 사명감이나 윤리의식을 갖고 책임과 공정성 있게 내신을 운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이 대표는 “(내신 비리는 입시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내신 비리가 일어났을 때 사람만 처벌해서는 비리가 근절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촘촘한 대학 ‘서열’
내신 비리 만든다

 

내신 비리가 벌어지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대학’ 중심적 사고를 꼽는다. 현행 입시 제도가 대학 진학을 겨냥하는 것과 대학 진학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는 관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공현 활동가는 “중고등학교 교육이 대학교 입시를 목적으로 이뤄지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며 “대학 졸업 여부에 따른 학력이나 학벌로 인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대학이 서열화돼있고, 대학 교육이 특수한 전문 고등교육이라는 개념보다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처럼 인식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 역시 “우리나라는 소질이나 적성을 통한 (학생의) 자아 실현보다 대학교 입시나 입학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대학교 입학만 놓고 보면 수시든 정시든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며 유사한 태도를 나타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처럼 대학 서열이 촘촘한 나라는 어떤 대학을 가느냐에 따라 연봉이 달라진다”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목을 매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신 비리 등의 문제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파생된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현 활동가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현행 교육제도는 시험이나 점수에 따라 나름대로 차별을 하는 게 당연시되는데, 굉장히 비교육적인 일”이라며 “등수를 매기고 서열화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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