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적용’ 도마 위로···“정부‧국회 직무유기, 사회적 타살이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하고 있다. 이날 화재로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뉴시스]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하고 있다. 이날 화재로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세종병원, 인천 세일전자 화재에 이어 최근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까지. 화재로 인한 대형 인명피해가 잇따르면서 건축물 화재안전 관련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화재안전법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소급적용이 안되면서 유명무실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 일요서울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화재안전법을 짚어봤다.

규제 강화, 신축 건축물에만 적용돼”···정부, 법령 개정 검토

최근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와 소방청,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재 건축물의 화재안전기준은 건축법소방 관련 법령으로 이원화돼 있다.

부산 해운대 우신골드스위트 오피스텔 화재,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건축법관련 규정 강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건축법은 피난구조와 마감재료 등에 초점을 맞춰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건축물의 물리적 구조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다. 화재 발생 시 연소 확대 방지와 외부로 피난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피난로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소방 관련 법령은 주로 소방설비에 관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건축물 조성 후 화재 사전 예방과 사후 대응책 모색을 위한 스프링클러피난 기구유도등 설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주요 법령으로는 소방기본법’, ‘소방시설공사업법’,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험물 안전관리법등이 있다.

대규모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규제도 강화됐지만 기존 건축물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로 떠오른다. 바로 화재안전 관련법 소급적용 부분이다.

스프링클러법

제정 촉구도

강화된 규제는 신축 건축물에는 가능하지만 기존 건축물에는 적용이 어렵다. 기존 건축물은 규제의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닌 권고대상이다.

실제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됐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현행 기준으로 가연성 외장재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해당 건축물은 법령 개정 전에 지어진 건축물로 건축 당시 가연성 외장재 사용 금지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 9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에서도 화재안전 관련법 소급적용이 도마에 올랐다.

고시원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관련법 상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소방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지하층 150이상이거나 창문이 없는 층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국일고시원은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지난 14일 안전사회시민연대, 노년유니온 등 15개 시민단체는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참사는 국회와 정부의 직무유기와 국민 무관심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모든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예외 없는 스프링클러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국무총리실 그리고 국회는 제천 참사, 밀양 참사, 이전의 고시원 참사에서 스프링클러가 없거나 작동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걸 생생히 목격하고도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국일고시원은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일고시원은 고시원으로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 2009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소방서에서 받은 필증만 있으면 고시원 등록을 하지 않아도 영업이 가능했다. 국일고시원은 기타 사무소로 등록돼 있어 국가안전점검대진단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건축물 화재 발생

증가 추세인데

관련법 소급적용 논란 속에 건축물 화재 발생은 지난 2013년 이후 증가추세다. 연도별로는 201325662, 201425821, 201526303, 201627298, 지난해 27714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생한 건축물 화재건수는 전체 화재건수의 62.7%를 차지하고 있다. 건축물 화재로 인한 피해는 사망자 281, 부상자 1519, 재산피해 4457억 원이었다. 건축물 화재는 차량화재, 선박화재, 임야화재 등 여러 화재 유형 중 인명재산피해 규모가 가장 크다.

건축물 용도별로는 단독주택이 6422건으로 화재발생 건수가 가장 많았다. 이어 공동주택 4869, 음식점 2838, 공장시설 2628, 창고시설 1696건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화재안전 관련법 소급적용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나섰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대형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신축 건축물에만 적용되고 있다면서 관련법 소급적용 등으로 기존 건축물의 방화성능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고시원, PC방 등 다중이용시설의 스프링클러 설치는 법이 제정되기 이전이면 적용받지 못한다법 제정 이전부터 영업한 건물이라고 해서 의무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도 최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소방시설이나 비상구 등에 대해선 오래된 건물이라도 새로 바뀐 소방 규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결국 소급 적용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일고시원 화재를 두고 해당 법령 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총리는 지난 겨울 제천 스포츠센터와 밀양 병원 화재 이후, 정부는 화재안전 특별대책을 발표했고, 국민생명지키기 3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화재 예방을 위해서 노력해왔지만 화재 참사가 또 발생했다큰 인명피해가 난 뒤에야 문제점을 찾고, 대책을 만드는 식으로는 이번 같은 후진국형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시원 화재 피해자들은) 주로 일용직 근로자나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취약계층으로, 이번에도 재난이 약자를 공격했다주택이 아닌 고시원 같은 곳에 사는 분이 전국에서 37만 명 가까이 된다. 이번 같은 참사가 언제 어디서 또 일어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해 7월부터 내년 말까지 계속되는 화재안전 특별조사에서는 노후 고시원과 숙박업소, 쪽방, 비닐하우스 등 취약계층 거주시설을 우선 점검하도록 조사 대상과 내용을 보완해주면 좋겠다. 그 이행 과정도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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