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도청 문을 열고 들어가 벌인 첫 번째 일은 공무원 명찰 달기였다. 공무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재명이 사전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서 명찰 달기를 한 동안 거부했다. 공무원들이 반발한 것은 초등학생 취급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겠지만, 이재명이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탓도 있었을 것이다. 성남시장일 때도 거침없이 공무원 사회를 뒤흔들어 제압한 것을 봤기에 명찰 달기를 이재명식의 길들이기로 본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청 공무원들은 명찰을 달기로 했고, 경기도 산하기관들까지 확대되는 중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명찰 달기는 이재명이 도지사로 취임하고 겪은 첫 번째 좌절로 봐도 될 것이다. 이재명이 명찰 달기에서 반발에 부딪힌 이유는 명분 앞에 명령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취임과 동시에 실명행정·책임행정을 내세우고 도지사 먼저 가슴에 명찰을 다는 모습을 보였다면 공무원들도 기 싸움에 나서서 저항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이재명은 자의식이 강한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은 대개 자기 확신이 강하고 자기애가 두드러지는 편인데, 이재명은 입지전적인 삶을 산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자기애와 자기 확신이 유독 두드러진다. 공무원 명찰 달기도 자의식과 자기 확신이 강한 이재명이 승리감에 취해 벌어진 흔치 않은 실수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재명은 성남시장일 때도 디테일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이재명은 정책을 이해하고 정치적 성과를 뽑아내는 데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왔다.

이재명은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처럼 일한다. 이재명은 사안을 잘게 쪼개 문제점을 찾고 문제점마다 코멘트를 단 뒤에 나름의 결론이 내려지면 과감하게 대중에게 공개하고 여론의 판결을 청취한다. 사실 정치인들이 일하는 방식은 법조인들과 비슷하다. 정치인들은 다수의 선택을 받고 다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법조인들도 다수설과 소수설 사이에서 오간다. 정치인들이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듯 법조인들도 법전 못지않게 여론에 민감하다.

법조인도 정치인들처럼 여론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는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할 때 국정농단 사실관계 이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광화문에 모인 100만 촛불이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강한 여론이 일면 법조인은 그에 맞춰 법리를 구성하기도 하고 사실관계마저 선별해서 법률을 적용하기도 한다. 법조인은 사건에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엮는 직업이고, 이재명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책을 엮는 일에 탁월한 면모를 보여 왔다.

이재명은 대권후보로 부상하기 전에는 전투형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즐겨 쓰곤 했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재명처럼 각론을 두고 벌어지는 작은 전투에 집착하는 변호사형 정치인은 아니었다. 노무현은 스스로를 변호하는 데 정력을 낭비하기보다 문제의 본질에 깊숙이 들어가 판세를 뒤엎는 데 능했다. 노무현은 이재명과 달리 스스로가 변호사가 아닌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자각한 사람이었다.

유능한 정치인은 각론을 가지고 큰 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각론을 두고 싸울 때도 명분과 승기를 잡는 데 집중한다. 이인제에게 장인의 전력 문제로 공격 받을 때 노무현은 변호사로 변해서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았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차라리 후보의 자리에서 내려올 각오를 다졌다. 이재명이 궁지에 몰린 것은 문파들의 공격 때문도, 김부선·혜경궁 김씨 때문도 아니다. 정치적인 싸움을 해야 할 때 법정 투쟁을 벌인 스스로의 잘못이 가장 크다. 위기를 맞은 이재명의 탈출구는 정치인 이재명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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