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화재 사태로 본 ‘5G 시대’와 허술한 국가기간통신망 관리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KT아현지사에서 관계자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로 손상된 케이블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KT아현지사에서 관계자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로 손상된 케이블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이통3사가 첫 5G(세대) 이동통신 전파 송출을 일주일 앞둔 지난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서울 일대 유·무선 통신이 두절됐다.

5G 상용화를 앞둔 시점에서 일어난 이번 사태는 통신 재난에 무방비한 ‘IT 강국’의 민낯을 보여줬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와 KT의 미흡한 초기대응으로 국가기간통신망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통신 대란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경고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수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한번 사고가 발생할 경우 위험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5G 상용화 단 일주일 앞두고 충격에 빠진 통신업계
통신 기반 설비 전반 ‘국가적 관리체계’가 재검토돼야

지난 24일 KT 아현국사 화재로 서울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 등 6개구와 경기 고양시 일부 지역의 통신망이 불통되는 대란이 발생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장기간 유무선 통신장애가 빚어진 것은 15년만으로, 이동통신 및 IPTV 불통, 신용카드 접속장애 등으로 인한 손해액 까지 피해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차세대 통신망인 5G 이동통신 상용화를 앞둔 시점에서 발생해 통신업계 전반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994년 동대문 통신구 화재 당시 유선전화와 팩스, 일부 방송 전파 송출 정도가 마비되는 수준에 불과했다면 이번 화재사고는 이제는 통신 장애사고가 단순한 유무선 전화 두절이 아니라 물론 사회·경제 인프라가 한순간 마비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KT는 내달 1일부터 5G 이동통신 전파를 송출한다. LTE를 넘는 5G 시대가 본격 도래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화재사고로 빚어진 대규모 통신장애는 최첨단 기술개발만으로 ‘IT 강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통신 서비스 범위가 단순한 통신 범위를 뛰어넘어 의료, 금융 등 일상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통신사의 통신망도 국가기반시설에 준하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프링클러도 백업·이중화 시스템도 없었다

KT 아현지사는 백업 및 이중화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KT 아현지사는 통신설비가 밀집된 집중 국사다. 지하 통신구에는 전화선 16만8000 회선, 광케이블 220조(전선 세트)가 설치돼 있었지만, 소화기만 비치돼 있었을 뿐 스프링클러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주말 아현지사 상주 직원은 2명에 불과했다. 애초 불이 나더라도 즉각 대응이 어려웠던 구조다.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지사는 지하 통신구에 16만8000회선의 유선 선로가 지나는 통신 집중국사에 해당한다. 유무선 전화 신호는 물론 초고속인터넷·IPTV 등 광케이블 데이터, 카드 결제 정보 등이 이곳을 지난다. 

그럼에도 지하 통신구에는 겨우 소화기 1대만 비치돼 있을 뿐 스프링클러도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리는 허술했지만, 그렇다고 KT가 규정을 위반한 건 아니다. 스프링클러·소화기·화재경보기 등 ‘연소방지설비’ 의무설치 구역이 아니었다. 

혜화·구로 등 KT 메인 국사와 목동 데이터센터 등 핵심시설은 주요 국가기반 시설로 지정돼 매년 정부로부터 안전 점검을 받는다. 하지만 아현 지사의 안전 관리 등급은 A, B, C등급에 이은 D등급인 것으로 전해졌다. 메인 국사를 단순히 이어주는 단순 경유지라는 이유에서다. 이곳이 정부가 아닌 KT가 자체 매뉴얼에 따라 관리돼왔던 이유다.

KT 통신 국사는 총 56개다. 이 가운데 국가가 관리하는 A, B, C 등급(29개)을 제외한 27개 국사는 아현지사 같이 자체 관리하는 D등급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사고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울리히 벡 교수가 경고한 ‘위험 사회’ 전형”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5일 서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장소를 방문해 이같이 말했다. ‘위험 사회’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가 현대사회를 향해 던진 경고다.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수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한번 사고가 발생할 경우 위험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스마트홈 서비스가 보편화 되는 5G 시대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5G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부실한 통신설비 관리는 더욱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5G 시대에는 자율주행차 기술은 물론 IoT, 스마트 홈 서비스 등이 본격화된다. 자동차, 건물, 가전기기 등 모든 것이 네트워크에 연결돼 스스로 작동하는데, 예고 없이 찾아온 통신 장애는 상상을 초월한 대형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통신 기반 설비 전반에 걸친 국가적 관리체계가 재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성목 KT 사장은 “이번처럼 망이 죽었을 때 타사 망을 쓰는 것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며 “다음에 구체화할 수 있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12월 말까지 사업자 간 우회로 확보와 화재방지 시설 확충 등 재발 방지 조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이통3사는 내달 1일 주파수를 송출하며 5G 경쟁에 본격 나설 예정이다. 불과 한 주 앞둔 상황 속 KT아현지사 통신관로 화재로 인해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하면서 KT는 이미지 하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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